역사속 오늘

북한 천리마운동 본격 시작

1958년 3월 3일부터 4일 간 열린 북한 제1차 노동당 대표자회의는 ‘반(反)종파사건’을 마무리하고 제1차 인민경제5개년계획(1957∼1961)을 중간 점검하는 자리였다. 천리마운동 의 본격적인 시작도 이때 결정되었다. ‘반종파사건’이란 1953년∼1955년까지 중공업 우선투자 노선을 둘러싸고 불거졌던 당내 갈등이 1956년 8월에 폭발한 북한 내 권력싸움이다. 연안파․소련파 등 반대파들은 이때 반당 종파분자로 몰려 대부분 숙청당했다. 비판세력을 일소하고 김일성 중심의 단일지도체제가 확립된 것도 이 사건 후부터였다.

천리마운동은 김일성이 1956년 12월 당 중앙위 전체회의에서 자력갱생을 강조한 뒤 강선제강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천리마를 탄 기세로 달리자”며 제안한 것이 시초였다.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는 전설속의 말이다. 당시 북한은 김일성이 1956년 6월부터 50여일 간 소련과 동구권 등을 순방하며 원조를 요청했으나 성과를 얻지못해 부득이 홀로서기를 감내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김일성은 반종파사건으로 정치안정을 꾀하고, 천리마운동으로 자본과 물자, 기술부족을 해결하려했다.

천리마운동은 인민들의 자발적인 역량을 총동원해 대중의 증산의욕을 북돋기위한 경제적 목적도 컸지만, 사상고양을 통한 혁명노선 강화도 못지않게 중요했다. 그러나 점차 운동 열기가 시들해지고 실적경쟁에 따른 위화감 표출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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