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콩코드기 첫 시험비행 성공

1969년 3월 2일,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개발한 콩코드기가 시험비행에 성공함으로써 세계 민간 항공사에 새로운 기념비가 세워졌다. 이날 콩코드기는 프랑스 툴루즈에서 이륙한 뒤 29분 간 프랑스 상공을 날다 안착함으로써 민간 여객기의 초음속 비행시대를 열었다. 시험비행 7개월만인 10월 1일 여객기로는 세계최초로 음속비행에 성공하고, 1970년 11월 4일에는 마하 2를 넘어서는 시속 2155km의 광속으로 53분간 순항하는 기록을 세웠다.

프랑스어로 ‘화합’을 뜻하는 콩코드기는 프랑스 드골 대통령의 제안으로 개발되었다. 하지만 초기부터 과도한 투자비용과 불투명한 수익성 등으로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양국은 개발 초기에 140억 달러라는 거액을 투입했으나 대당 가격이 190억 달러로 치솟고, 초음속에도 불구하고 낮은 연비 때문에 구입하려는 회사가 없어 골머리를 앓았다. 때문에 300대 생산을 예상했던 당초 기대와 달리 겨우 20대만 생산했고 그나마 상업비행에 성공한 것은 14대 뿐이었다. 대서양을 왕복하는 요금도 1만 2000달러나 되어 일반인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1976년 1월 21일부터 상업운행을 시작함으로써 민간 항공여행의 초음속 시대를 화려하게 연 콩코드는 대서양 거리를 7시간에서 3시간으로 단축하는 놀라운 성능을 보였다. 25년 간 가장 안전했던 콩코드에 위기가 닥쳐온 것은 2000년 7월 25일, 이륙 직후 추락해 승객과 승무원 109명과 추락현장에 있던 주민 3명 등 모두 112명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를 겪으면서였다. 이 사고로 운항이 1년이나 중단된 데다 2001년 9․11테러까지 겹쳐 항공승객이 줄어들면서 콩코드의 퇴역이 앞당겨졌다. 기술적 문제도 적지 않았다. 음속돌파에 따른 소음을 최소화할 기술을 개발하지 못했고 연료소비에 비한 비행거리도 다른 항공기에 비해 짧았다. 결국 마침내 2003년 10월 23일 마지막 승객을 태우고 런던을 출발해 뉴욕에 도착하는 고별 비행을 한 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잘못된 판단을 뜻하는 ‘콩코드 패러시(Concorde Fallacy)’도 콩코드의 실패에서 비롯되었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