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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유람기, 알프스 산행기 5-②] 베른, 인터라켄, 아레강협곡, 아델보덴, 레만호, 몽트뢰

by 이희용

 

제2부 “꿈에도 그리던 하이디 만나러 고고고”

■ 패키지 둘째날(6월 2일) – 카메라 앵글을 들이대는 곳마다 그림엽서
취리히-베른-인터라켄-아레슐르흐트(아레강협곡)-아델보덴(뷰사이트)

오늘부터 이제부터 본격적인 여행입니다. 첫 행선지는 스위스의 수도 베른입니다. 수도라고 해도 그리 크지는 않아 인구가 13만여 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스위스는 26개의 칸톤(주)으로 이뤄진 연방국인데 미국이나 독일보다 훨씬 분권형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은 대통령이 누군지, 장관이 누군지, 국회의원이 누군지 별 관심이 없고 동네 의원만 잘 뽑으면 나라가 잘 돌아간다고 여긴다고 합니다.

장미공원의 길을 따라가자 저 멀리 아레강이 감돌아 흐르고 베른 시가지가 보입니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고 하네요. 이곳의 규모가 좀 크다뿐이지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하회마을과 비슷한 형상입니다. 1970년대 우리나라에 요들송을 보급한 김홍철이 불렀던 “아름다운 베르네/ 맑은 시냇물이 넘쳐 흐르네~”의 그 베른이랍니다. 그런데 빙하가 녹은 물이 석회함 지대를 흘러내려 ‘맑은 물’은 아닙니다.

베른 시내 모습. 오른쪽 물은 아레강인데 석회암이 녹아서 푸른 색을 띠고 있다.

 

베른의 어원은 곰(영어로 Bear)이랍니다. 도시 탄생의 전설에 곰 이야기가 나옵니다. 도심 한가운데 곰을 키우는 우리도 있고 곳곳에 곰 장식이 눈에 띕니다. 독일의 베를린도 곰의 도시여서 베를린영화제 수상자들에게 황금곰상이나 은곰상을 줍니다. 제가 올해(2017년) 1월에 갔던 스페인 마드리드의 상징도 곰입니다.

아인슈타인이 살았다는 아인슈타인하우스, ‘꽃할배’에 등장한 대형 시계탑, 종교개혁 후 교회로 탈바꿈한 대성당 등을 둘러봅니다. 성당 안에도 들어가 보고 첨탑 전망대에도 올라가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은 없는 모양입니다.

가이드가 종교개혁에 관해 간명하게 설명합니다. “종교개혁은 루터만 한 게 아니라 츠빙글리와 칼뱅 등 여러 사람이 한 겁니다. 종교개혁이 가장 잘한 것은 신부만 읽을 수 있던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 등으로 번역하고 당시 보급된 인쇄술을 통해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게 한 겁니다. 종교개혁이 가장 잘못한 것은 성당의 조각을 파괴하고 벽화를 석회로 덮어 위대한 예술품들을 파괴한 겁니다. 성당 안에 들어가도 볼 게 없습니다.” 비전문가 가이드답게 500년 전 종교개혁을 너무 단순화한 설명이지만 그래도 핵심 가운데 중요한 두 가지를 짚기는 했습니다.

베른 거리에서 인상적인 것은 깃발입니다. 스위스 깃발, 칸톤 깃발, 동네 깃발, 직능조합(길드) 깃발 등이 가는 곳마다 펄럭입니다. 우리도 가이드의 깃발을 따라 졸졸 따라다니는 전형적인 패키지여행을 즐깁니다.

 

인터라켄은 우리로 따지면 설악산 입구의 속초 같은 곳

점심은 인터라켄으로 가서 먹습니다. 인터라켄은 융프라우 여행의 관문으로 우리로 따지면 설악산 입구의 속초와도 같은 곳이지요. 두 호수 사이에 있는 마을(영어로 Inter Lake)이란 뜻으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이곳 한식당에서 2만5천 원짜리 설렁탕을 먹습니다. 김치를 더 달라고 하면 추가 요금을 받습니다. 스위스가 국민소득이 높고 EU 가입국이 아니어서 물가가 비싸다고는 하지만 이건 좀 심했습니다.

화장실 요금도 보통 다른 유럽에서는 50센트(600원)가 보통인데 인터라켄에서는 2프랑(2천300원)이나 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가이드가 무료 화장실을 틈틈이 가르쳐주고, 관광지에는 비교적 무료 화장실이 많은 덕분에 볼일 보는 데 돈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돈이 덜 드는 것도 있습니다. 스위스는 수질이 좋아 욕실의 수돗물을 그냥 마셔도 되고 도시 곳곳에 설치된 분수의 물을 받아 마셔도 된다고 합니다. 아무데서나 에비앙이나 볼빅이 콸콸 나온다는 거죠. 그래서인지 호텔 방마다 서비스로 주는 생수병이 없더군요. 물병이 필요해서 첫날 버스에서 생수를 몇 병 샀을 뿐 그 뒤로도 물을 사 마실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레슐르흐트. 베른 시를 관통하는 아레강의 상류 협곡이다.

 

점심을 먹고 아레슐르흐트로 가 아레강 협곡을 구경합니다. 물이 석회석을 깎아 만든 경치가 일품입니다. 비좁은 틈새 위로 파란 하늘이 보이고 아래로는 녹색의 물이 빠른 속도로 흘러갑니다. 가끔 폭포도 떨어집니다. 유람을 마치고 기념품 가게에서 태성이가 감자 깎는 칼을 삽니다. 가격이 적당하고 어느 집에서나 필요한 물건이이서 선물하기 좋다며 제게도 권합니다. 그 말이 그럴듯해 저도 우산과 함께 감자칼을 샀습니다. 버스에 오르니 가이드가 비싸게 샀다고 말하더군요. 실제로 조금 후에 들른 인터라켄 기념품점에서는 몇백 원 싸게 팔아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물건을 마음먹었을 때 사야지 이것저것 따져보고 사려다가 정작 마음에 드는 물건을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해외여행 갈 때 누가 물건을 사면 앞뒤 따져보지도 않고 무조건 “잘 샀다” “싸게 샀다”고 격려해주지요. 그래야 산 사람의 불안감이 덜어지거든요.

 

아델보덴 숙소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바깥 경치 환상적

버스는 셜록 홈스가 최후를 맞았던 마이링겐 시내를 지나갑니다. 우리 일행은 버스를 탄 채 주마간산격으로 훑어봅니다. 곳곳에 셜록 홈스 이름을 딴 식당과 호텔 간판이 보입니다. 셜록 홈스 박물관도 있다고 합니다. 순수문학 작가를 꿈꿨고 추리작가로 성공한 뒤에도 그 꿈을 버리지 않은 코난 도일은 셜록 홈스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설에서 주인공 셜록 홈스를 죽입니다. 이곳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악당 모리어티 교수와 혈투를 벌이다 함께 떨어져 죽는 것으로 마무리했지요. 그러나 코난 도일의 시도는 실패합니다. 홈스를 살려내라는 팬들의 요구가 빗발친 것이지요. 항의 편지와 방문 공세를 견디다 못한 도일은 홈스가 죽다 살아난 것으로 이야기를 바꿔 셜록 홈스 시리즈를 재개합니다. 따라서 엄밀히 따지면 마이링겐이 홈스가 최후를 맞은 곳이 아닌데도 이곳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팔아 셜록 홈스를 좋아하는 관광객을 끌어들입니다.

보람찬 하루 관광 일정을 마치고 숙소가 있는 아델보덴으로 향합니다. 차창으로 보이는 경치가 환상적입니다. 흰 눈을 뒤집어쓴 설산이 줄지어 있고 아래로는 초록 융단을 깔아놓은 듯 예쁜 초원과 언덕이 펼쳐집니다. 아무 데나 카메라 앵글을 들이대도 그림엽서고 액자 속 그림입니다. 연봉 사이로 융프라우가 웅장하게 솟아 있습니다. 우리는 일주일 뒤 그곳을 오를 예정이지만 다른 패키지 일행은 먼발치로만 보고 가야 합니다.

빙하가 만들어낸 폭포. 베른에서 인터라켄으로 가는 길에서 촬영했다.

 

가이드가 이렇게 설명합니다. “가까이 있는 산은 높아 보여도 실제로는 안 높고 멀리 보이는 산이 더 높습니다. 그 높이를 어떻게 아는지 아세요? 나무가 없으면 수목 성장 한계선인 2,000m를 넘는 산이고, 만년설이 덮여 있으면 3,000m를 넘는 산입니다. 지금 6월인데도 눈이 있으면 3,000m를 넘는 산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버스가 산길을 올라갑니다. 고도계의 숫자가 계속 높아지다가 네 자리 숫자로 바뀝니다. 산이 높아질수록 골이 깊어지고 하늘은 좁아집니다. 스키와 온천으로 이름난 아델보덴에 도착했습니다. 우리가 묵을 숙소 뷰사이트는 스위스의 오두막집 샬레 풍으로 지어졌습니다. 방에도 다락방이 붙어 있습니다. 경치가 정말 끝내줍니다.

밖으로 산책을 다녀온 뒤 저녁을 먹으러 호텔 식당으로 모였습니다. 스위스산 송아지 요리라고 해서 스테이크가 나오나 기대했는데 얇게 저민 고기에 소스를 뿌린, 고기덮밥 같은 식사가 나왔습니다. 맛은 그런 대로 괜찮습니다. 식당 분위기와 창밖 경치가 매력적이어서 와인도 두 병 주문해 건배를 합니다. 와인을 따라주는데 서로 더 달라며 보채니 하이디풍으로 차려입은 여종업원이 웃음을 터뜨립니다.

공기도 맑고 풍경도 좋습니다. 이곳은 위도가 높은 데다 서머타임까지 적용돼 9시가 넘어도 밖이 훤합니다. 전망은 좋은데 술을 마시려면 컴컴한 게 더 나은 것 같기도 합니다.

밤에는 한 곳에 모여 공항에서 구입한 양주 듀워(Dewar)를 땄습니다. 영어 철자를 어떻게 읽는지 몰라 ‘디워’라고 하니 누가 심형래가 만든 영화 제목 아니냐고 합니다. 갑표가 끼어듭니다. “정종처럼 데워 마시라고 ‘데워’라고 쓴 거 아냐?” 모두 배꼽을 잡고 뒤집어집니다.

레만호를 배경으로 찰칵
■ 셋째날(6월 3일) : 왜 나만 코골이의 주범이 돼 기피인물로 찍힌 걸까
아델보덴-츠바이지멘-그뤼에르-브베이-몽트뢰

 

일출을 보려고 일찍 일어났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아직은 시차 때문에 잠이 빨리 깹니다. 하늘이 훤해졌는데도 붉은 기운은 보이지 않습니다. 높은 산이 가로막혀 우리가 기대하는 일출 모습이 연출되지 않습니다. 정작 산허리 옆으로 해가 나타났을 때는 눈이 부셔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지경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여기서 며칠 더 묵고 싶은데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아침을 먹고 츠바이지멘역으로 갑니다. 열차를 기다리기 전에 제가 문제를 하나 냅니다. ‘스위스’처럼 앞뒤가 똑같은 세 글자 단어를 하나씩 말해보라는 거죠. 갑표가 가장 먼저 ‘보노보’라고 합니다. 제가 무슨 말인지 의아해하니 침팬지와 비슷한 원숭이 종류라는군요. 허걱! 문제를 낸 사람이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을 말하다니. 동규는 치과의사답게 ‘이갈이’를 댑니다. 이것 역시 제가 생각 못한 단어였죠.

오늘은 새로운 사례를 많이 건질 듯해서 기대가 큽니다. 그러나 웬걸. 그 다음부터는 허당입니다. 태성이가 ‘우병우’를 말했다가 퇴짜를 맞고 겨우 ‘기러기’를 말했을 뿐입니다. 누가 ‘좌향좌’를 말했지만 논란의 소지가 있는 단어죠. ‘기레기’를 말하는 친구도 있더군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한 번 생각해보세요. 어떤 단어가 있나. 우리 일행이 스위스를 떠나는 날 대목에서 몇 가지 더 말씀드릴게요.

이곳에서 몽트본역까지 파노라마 열차를 탑니다. 창 밖 풍경이 잘 보이도록 천정 옆 모서리 쪽에도 면을 만들어 창을 끼웠습니다. 여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치즈로 유명한 그뤼에르로 갑니다. 언덕길을 오르니 아담한 광장에 오래된 건물이 둘러쳐진 중세풍 마을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조금 올라가면 고성이 나오는데 중간에 안 어울리게도 에일리언 박물관이 있습니다. 입장료를 받는 고성은 들어가지 않고 주변을 빙 도는데 내려다보는 경치가 예쁩니다.

그 다음 차례는 치즈 공장입니다. 일정표에 적힌 대로 치즈 만들기 체험을 하게 하는 대신 치즈를 만드는 과정을 영상과 유리창 너머로 보게 해줍니다. 시식용 치즈도 나눠주고 치즈도 파는데, 가이드가 “아직 돌아갈 날이 많은데 지금 치즈를 사면 녹을 수 있다. 치즈를 사서 가져가고 싶으면 비행기 타기 직전에 사라”고 충고합니다. 이곳은 아직 가이드와 기념품점, 특산품점과 관광객 돈 빼먹기 묵계가 안 이뤄진 모양입니다. 어제 인터라켄에서도 한 기념품점의 할인쿠폰을 주기는 했으나 양떼 몰아서 집어넣듯이 특정 가게로 안내하지는 않더군요.

점심 메뉴는 스위스 전통음식인 퐁듀와 라클렛입니다. 퐁듀는 와인을 넣어 끓인 치즈 용액(이렇게 쓰니 무슨 화학 용어 같군요. 근데 국물이라고 하니 어색하고)에 긴 포크로 빵 조각을 찍어 ‘퐁’ 빠뜨린 ‘뒤’ 먹는 것이고, 라클렛은 불에 녹인 치즈를 감자에 발라 먹는 겁니다. 저를 포함해 친구들 표정이 떨떠름합니다. 짜고 코리한 냄새가 심하게 풍겨 마음에 안 드는 눈치입니다. 맥주도 별 맛이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전 괜찮던데.

 

전설적인 록그룹 퀸의 리더 프레디 머큐리의 동상을 레만호에서 만나다니

다음 행선지는 레만호변의 브베이입니다. 네슬레 본사가 있고 식품박물관이 있어 그 유명한 대형 포크가 꽂혀 있는 곳이지요. 찰리 채플린이 만년을 이곳에서 보내 그의 조각 등신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채플린을 등신(병신)처럼 만들었다는 줄 알았는데 와서 보니 아니네”라고 제가 실없는 농담을 던집니다. 레만호 반대편은 프랑스입니다. 이곳은 불어를 씁니다. 다들 영화 ‘레만호에 지다’를 입에 올리는데 정작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친구는 하나도 없더군요. 나중에 확인해 보니 1979년 KBS로 방송된 이영하-정애리 주연의 특집 드라마였습니다.

레만호

 

레만호를 따라 동쪽으로 더 가니 몽트뢰가 나옵니다. 유명한 시옹성이 있는 곳이지요. ‘뭉쳐야 뜬다’에서는 파노라마로 촬영하는 동안 한 인물이 순간 이동을 해 사진 양쪽에 나오도록 찍었던 장소입니다. 성 안에는 들어가지 않고 주변에서 사진만 찍습니다. 저가 패키지의 한계가 곳곳에서 나타나지만 그렇게 아쉽지는 않습니다.

몽트뢰 시내로 가니 전설적인 록그룹 퀸의 리더 프레디 머큐리의 동상이 있습니다. 오른손을 높이 치켜들고 왼손으로는 마이크가 꽂힌 스탠드를 쥔 모습입니다. “위 아 더 챔피언”을 부르는 건지 “위 윌 위 윌 락 유”를 외치는지 모르겠지만 인상적인 모습입니다. 우리나라도 대중예술인들의 동상을 더 많이 만들면 좋겠습니다. 저마다 머큐리의 모습을 흉내 내며 찍으려 하는데 폭우가 내려 비를 피하러 갑니다.

저녁 메뉴는 일식입니다. 중식과 일식을 함께 파는 식당에 앉았습니다. 생선초밥과 튀김과 우동 등이 나옵니다. 저녁 식사 후 로잔으로 가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본부를 들를 예정이었다는데 비가 와서 그냥 숙소로 들어갑니다.

프레디 머큐리의 동상 옆에서 같은 포즈를 취한 필자

 

사실상 오늘밤 처음으로 보조침대의 주인공을 가리는 사다리 타기가 펼쳐집니다. 태성이가 보조침대에 당첨됐고 저와 동규가 함께 3인실에 배정됐습니다. 이틀 내리 양주를 마셨으니 오늘은 중국 술을 마시자고 합니다. 40도짜리 위스키를 마시다가 60도짜리 수정방을 입에 털어넣으니 화공약품을 마신 듯 식도를 거쳐 위장까지 짜르르한 느낌이 전해집니다.

전 잘 때 코를 좀 고는 편이어서 거금 4만 원을 들여 코골이 방지약을 사갔습니다. 그런데 이날까지 사용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태성이는 이튿날 아침 평가를 부탁하자 “너보다 동규가 코를 더 골더라. 넌 좀 잠꼬대를 하긴 하지만”이라고 말합니다. 전날 자보니 현근이도 코를 골던데 왜 저만 코골이의 주범이 돼 기피인물로 찍혔던 거죠? 억울합니다. <계속>

몽트뢰의 시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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