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고종, 홍범14조 선언

1895년 1월 7일, 고종이 종묘에서 ‘홍범14조’를 선포했다. ‘홍범(洪範)’은 중국 서경(書經) 주서(周書) 홍범편에 나오는 말로 ‘천하를 다스리는 큰 원리’를 뜻한다. 근대적인 내각제도 확립, 문벌폐지와 능력에 따른 인재등용 등 14개조로 구성된 홍범14조는 조선이 자주독립국가임을 내외에 공포하고 근대적 개혁의지를 성문화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선포과정과 내용에 일본의 간섭과 의도가 짙게 배어있어 자주성을 의심받았다.

선포 전 이노우에 주한일본공사가 ‘내정개혁 강령20조’를 고종에게 제시하며 실시를 요구하자 친일연립내각이 일본인들의 자문을 받아 ‘홍범14조’를 제정, 고종에게 선포를 권고했기 때문이다. 특히 ‘청에 의존하지 않고 자주독립의 기초를 세운다’는 제1조는 일본의 의도가 명백하게 드러난 대목이다. 그럼에도 홍범14조는 우리나라 최초의 헌법적 성격을 띠었고, 근대사법(司法)의 대원칙을 천명(13조)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왕실호칭에도 큰 변화가 생겨 고려 충렬왕 이래 오랫동안 사용하지 못했던 짐(朕)·폐하 등의 용어가 다시 살아났고, 사후에 명성황후로 추존된 민비도 호칭이 한 단계 승격됐다.

이처럼 ‘홍범14조’는 조선이 근대사회로 나가기 위해 갖추어야 할 겉모습을 담고 있었으나 개혁을 뒷받침해야 할 민중이 소외되고 일본에만 의지해 개혁을 추진하려 했다는 점에서 일본에 예속되는 결과를 낳았고 민족의 자존심마저 버리는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중국 신해혁명 지도자들은 ‘홍범14조’를 실패로 규정, 전철을 밟지 말자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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