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이야기

에드윈 파월 허블, 우주팽창론 증명

↑ 에드윈 파월 허블

 

인류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증명

에드윈 파월 허블(1889∼1953)은 우리 은하계가 우주의 전부가 아니라 단지 수십억 개의 이름 모를 은하의 하나라는 사실을 밝혀낸 20세기의 대표 천문학자다. 또한 150억 년 전 엄청난 대폭발로 우주가 탄생했다는 이른바 ‘대폭발 이론’의 출발점이 된 ‘우주 팽창론’의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 인물이기도 하다. 허블은 미국 미주리주 마시필드에서 태어났다. 1906년 입학한 시카고대와 1910년 유학한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귀국해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러나 내면에 잠자고 있던 천문학을 향한 열정을 주체하지 못해 1914년 천문학에 입문했다. 당시 천문학계에서는 성운(흐릿한 구름 모습을 하고 위치나 모양이 변하지 않는 천체) 연구가 활기를 띠고 있었다. 허블은 1915년 시카고대학 부속 천문대인 여키스천문대에서 지름 61㎝의 반사망원경으로 밤하늘을 관측했다. 그는 자신이 ‘희미한 성운’이라고 명명한 흐릿한 물체를 사진으로 찍고 이를 분석한 끝에 1917년 시카고대에서 천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허블의 인생에 중요한 전기가 된 것은 1919년 9월 캘리포니아 패서디나 부근에 있는 윌슨산 천문대의 연구원이 되면서였다. 허블은 그곳에 있는 세계 최대 크기의 후커 반사망원경(지름 2.5m)으로 수많은 성운을 관찰했으나 성운이 우리 은하계의 일부인지, 은하 밖의 독립된 은하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것은 다른 천문학자도 마찬가지였다.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토론회가 1920년 4월 26일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서 열렸다. 우리 은하가 성운을 비롯한 전 우주를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한 윌슨산 천문대는 할로 섀플리를 토론자로 내세웠다. 반대로 성운이 우리 은하 밖에 있는 독립된 은하라고 생각한 측은 히버 커티스를 보냈다. 양측은 천문학의 대논쟁으로 불린 토론회에서 M31로 불리는 안드로메다 성운이 우리 은하 밖에 있는지 안에 있는지를 두고 공방을 벌였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허블은 대논쟁을 지켜본 후 안드로메다 성운(M31)을 집중적으로 관측했다. 그가 특히 주목한 것은 세페이드 변광성이었다. 이 변광성은 밝기가 일정하지 않고 주기적으로 변하는 독특한 별로, 지구에서 특정한 별까지의 거리를 재는 데 이정표 역할을 했다. 이것이 가능하도록 한 선구자는 청각 장애가 있는 헨리에타 스완 레빗이라는 여성이었다.

 

우리 은하, ‘안드로메다 은하’ 발견 후 우주의 중심에서 끌어내려져

레빗은 1892년 래드클리프대를 졸업한 후 하버드대 천문대에서 근무했다. 업무는 천체를 찍은 사진 건판을 비교·분석하는 일이었다. 레빗은 상당히 많은 세페이드 변광성을 발견했는데, 이 별들의 사진을 살피던 중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변광성의 고유 밝기와 광도 변화 주기 사이의 상관관계를 발견한 것이다. 결론은 별의 고유 밝기가 밝을수록 광도 변화 주기가 길어진다는 사실이었다. 레빗은 연구 결과를 1908년 하버드대 천문대 천문학연감에 발표했다. 레빗이 발견한 세페이드 변광성의 광도-주기 관계는 천문학 사상 최초의 ‘표준 촛불’이 되었고, 머지않아 인류로 하여금 심우주 은하들까지의 거리를 알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한 과학 저술가가 말했듯 레빗의 발견이 “천문학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대발견”이 되려면 넘어야 할 2개의 산이 있었다. 첫 번째 산은 별의 고유 밝기를 계산하는 것이다. 그때까지 레빗은 변광성들의 상대적인 밝기는 알아도 절대적인 고유 밝기는 알지 못했다. 이 문제는 1913년 덴마크 천문학자 에즈나 헤르츠스프룽이 해결했다. 그는 레빗의 주기-광도 법칙을 적용해 고유 밝기를 구했다.

두 번째 넘어야 할 산은 별까지의 거리를 구하는 것이다. 레빗의 발견으로 어떤 변광성이 다른 변광성보다 멀거나 가까이 있다는 것은 증명할 수 있지만 특정한 변광성까지의 실제 거리는 알 수 없었다. 따라서 단 한 개라도 변광성까지의 거리를 알 수만 있다면 레빗의 측정 방법을 적용해 모든 세페이드 변광성까지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게 된다. 다행히 섀플리 등 몇몇 천문학자가 특정한 세페이드 변광성까지의 실제 거리를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의 은하수는 지름이 30만 광년이었다. 1광년은 빛이 초속 30만㎞의 속도로 1년 동안 나아가는 거리로 대략 9조 4,670억㎞이다.

바야흐로 2개의 산을 넘었으니 레빗이 밝힌 표준 촛불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허블이 안드로메다 성운을 관측하다가 새로운 세페이드 변광성을 발견한 것은 1923년 10월이었다. 허블은 그 세페이드 변광성의 밝기 변화를 수십 번 측정한 뒤 레빗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고유 밝기와 겉보기 밝기를 비교한 후 거리를 추정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세페이드 변광성을 포함하고 있는 안드로메다 성운까지의 거리가 지구에서 약 93만 광년이나 된 것이다. 그런데 93만 광년의 거리는 섀플리가 추정한 은하계 최대 범위(30만 광년)의 3배나 되었다. 이것은 그 변광성이 우리 은하계가 아닌 다른 은하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우리 은하 밖에 존재하는 새로운 은하 즉 ‘안드로메다 은하’가 발견됨으로써 우리 은하는 우주의 중심에서 끌어내려지고, 우리 은하가 우주의 전부인 줄 알고 있던 인류는 은하 뒤에 또 무수한 은하가 줄지어 있는 대우주에 직면하게 되었다. 나중에 우리 은하는 수십 억 개의 은하 중 하나라는 것과 각각의 은하는 수십 억 개의 별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도 밝혀져 우주의 크기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확대되었다.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안드로메다 성운까지의 정확한 거리는 230만 광년이다.

허블의 발견은 밤하늘에서 빛나는 모든 것이 우리 은하 안에 속해 있다고 믿고 있던 인류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갑자기 우리 태양계는 작은 웅덩이로 축소되고, 지구상에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빛을 주는 태양은 우주라는 드넓은 바닷가의 모래 한 알갱이에 지나지 않은 것이 되었다.

 

“은하가 우리로부터 멀어지는 속도는 그 은하까지의 거리에 비례한다”

허블은 다음 단계로 우리 은하계 바깥에 있는 여러 은하의 움직이는 속도와 거리를 집요하게 측정했다. 그때까지 알려진 사실은 미국 로웰천문대의 베스토 슬라이퍼가 1910년대에 ‘적색 편이’(빛 스펙트럼의 중심이 붉은 파장 쪽으로 이동하는 현상)를 이용해 은하들이 멀어지는 속도를 측정한 정도였다. 당시 슬라이퍼는 빛을 내는 광원이 자신에게 가까워질 때 빛의 스펙트럼이 청색 쪽으로 이동하는 청색 편이가 나타나고 멀어지면 빛의 스펙트럼이 적색 쪽으로 이동하는 적색 편이가 나타난다는 이른바 ‘도플러 효과’에 근거해 속도를 측정했다. 즉 빛의 색깔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통해 천체의 속도를 구한 것이다.

슬라이퍼는 1912년 하늘 전체에 고루 분포하는 나선은하들의 속도를 측정했는데, 그중 대부분의 은하가 우리 은하로부터 초속 수백~수천㎞의 속도로 멀어지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1920년대 초까지 슬라이퍼는 40개 성운의 속도를 측정했고 동일한 결과를 얻었다. 다만 자신의 발견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지 못해 우주팽창으로 연결시키지는 못했다.

허블은 자신이 그 미스터리를 풀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꼈다. 허블은 수십 개 은하의 속도와 거리를 측정했다. 그 결과 은하가 멀어지는 속도가 지구에서의 거리에 비례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즉 어떤 은하가 다른 은하보다 2배 멀리 떨어져 있다면 이 은하는 대략 2배의 속도로 멀어졌다. 허블은 1929년 “은하가 우리로부터 멀어지는 속도는 그 은하까지의 거리에 비례한다”는 그 유명한 ‘허블의 법칙’을 끌어냈다.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빠른 속도로 멀어진다는 ‘허블의 법칙’은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우주의 어느 지점에서 보더라도 멀리 떨어진 천체일수록 더 빨리 멀어지는 것처럼 보인다는 이 법칙 내용은 간단해 보이지만 법칙이 내포하는 의미는 심대했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면 우주는 한 점에서 출발했을 것이고, 약 150억 년 전 ‘무’의 상태에서 엄청난 대폭발로 우주가 탄생했다는 ‘빅뱅론’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1931년 2월 4일 윌슨산 천문대의 작은 도서관에 기자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이 자리에서 아인슈타인은 1917년 우주는 팽창하지도 수축하지도 않는다고 자신이 발표했던 ‘정적 우주론’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선언했다. 아인슈타인은 우주 팽창설은 우리가 과거를 향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은하들이 지금보다 가깝게 모여 있었음을 뜻하고 결국 우주가 무한히 작고 밀도가 높았던 ‘빅뱅’이라는 시기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빅뱅 연구의 과제는 다른 학자들이 몫이었다. 조지 가모, 아노 펜지어스, 로버트 윌슨이 그 주인공들이다.

허블은 1948년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하면서 대중적 인물로 떠올랐고, 천문학자들보다는 영화배우나 작가들과의 교분을 즐겼다. 64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팔로마산의 세계 최대인 508㎝ 망원경에서 연구하는 행운도 누렸다. 명예는 사후에도 주어졌다. 1990년에 발사된 거대한 우주 망원경에 허블이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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