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박스

[연인과 부부 ⑳] 김기창·박래현은 국내 첫 유명 부부화가… 학력도 변변치 않은 청각상실의 가난뱅이(김기창)와 일본까지 유학 다녀온 부잣집 인텔리(박래현)의 운명적 만남

↑ 김기창이 그린 자화상(왼쪽, 1956년)과 아내 박래현의 초상화(1976년)

 

☞ [연인과 부부] 시리즈 전체가 궁금하다면 클릭!!

 

by 김지지

 

김기창(1913~2001)은 청각장애를 딛고 전통 회화를 현대 감각으로 계승·발전시킨 한국화의 거장이었다. 구상과 추상, 동양화와 서양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유롭고 해학적인 화풍을 선보였다. 아내 박래현(1920~1976)은 일본과 미국의 미술계를 10여 년간 경험한 우리 미술계의 대표적인 여성 화가였다. 그런데도 ‘화가 박래현’ 보다는 청각장애자 김기창의 입과 귀가 되어 격려하고 도와준 ‘김기창의 아내’로 한동안 기억되었다. 하지만 우리 여성계 화단에서 박래현의 이름 석자를 빼놓을 순 없다.

두 사람이 1943년 처음 만났을 때, 학력과 집안의 경제력은 대조적이었다. 김기창은 학력도 변변치 않은 청각상실의 가난뱅이였고 박래현은 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 대학까지 유학을 다녀온 인텔리였다. 김기창은 두 사람의 성격을 이렇게 비교했다. 김기창 자신은 온순하나 급하고, 박래현은 동정심이 많아 눈물을 자주 흘리면서도 성격이 예민해 다소 신경질적이었다.

김기창 박래현 부부

 

■결혼 전 박래현의 삶

박래현(1920~1976)은 평남 진남포에서 태어났다. 호남평야에 넓은 땅을 갖고 있는 아버지가 대지주의 꿈을 꾸고 전북 군산으로 이주할 때 박래현 나이는 6살이었다. 이후 군산은 박래현의 두 번째 고향이 된다. 생활은 풍족했다. 군산과 전주에서 보통학교(초등학교)와 여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경성여자사범학교를 졸업했다.

박래현이 화가의 꿈을 꾼 것은 사범학교 시절이었다. 경성여자사범학교 재학 중 조선미술전람회(선전 혹은 조선미전) 추천작가로 활동하던 일본인 미술교사의 권유가 진로에 영향을 미쳤다. 이후 미술교사에게 수채화와 동양화를 교습받으면서 꿈을 구체화했다. 박래현은 사범학교 졸업 후 보통학교 교사로 2년 간 재직한 뒤 1940년 일본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에 입학했다. 4학년이던 1943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한 ‘단장’(종이에 채색, 131×154㎝)이 특선에다 총독상까지 받아 촉망받는 화가로 이름을 올렸다. 1944년에는 선전에서 ‘대원녀’로 무감사 입선했다. 1946년 6월 3일에는 동화백화점 화랑에서 첫 개인전시회를 1주일간 열었다.

일본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 당시 박래현

 

#김기창 #박래현 #화가 #미술 #청각장애 #김은호 #친일 #조선미술전람회 #예수의생애

 

☞ 전문(全文)을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