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박스

日 ‘경영의 신’으로 불린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 별세

↑ 이나모리 가즈오 (출처 교세라 홈페이지)

 

by 김지지

 

‘일본의 살아있는 경영의 신(神)’으로 불리는 교세라의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이 2022년 8월 24일 향년 90세로 별세했다. 이나모리 회장은 20대 나이에 창업해 종업원 8만여 명, 매출 1조8000억엔대(약 18조원) 기업으로 키웠고, 파산 직전의 일본항공(JAL)에 무보수 최고경영자로 취임해 3년 만에 되살린 인물이다.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3대 기업가’로 꼽혀

일본 기업 ‘교세라’는 오늘날 전 세계에 200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직원 8만 명 규모의 글로벌 기업이다. 특히 세라믹 분야에서는 세계 시장의 70%를 점유할 정도로 탄탄하다. 물론 기업 규모로만 치면 교세라보다 훨씬 큰 기업은 일본에 많다. 그런데도 교세라를 창업한 이나모리 가즈오(1932~2022)는 마쓰시타전기를 창업한 마쓰시타 고노스케, 혼다자동차를 창업한 혼다 소이치로와 함께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3대 기업가’로 꼽힌다. 그에게는 늘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이끈 부품산업 창업자의 교범”, “일본 벤처기업의 대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씨 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우장춘 박사의 네 번째 사위이기도 하다.

이나모리는 교세라를 창업하기 전까지는 낙방 인생이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6학년 때 결핵을 앓았다. 삼촌들이 결핵으로 사망한 것을 떠올리며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으나 철학과 종교 관련 책을 읽고 병을 치료하며 마음의 안식을 얻었다. 이나모리는 병치레가 잦아 공부에 몰두하지 못했다. 결국 중학교 시험도 두 번이나 떨어졌다. 가고시마현립대 공학부를 졸업한 후에도 입사시험에 번번이 낙방하다가 1955년 어렵게 교토의 절연체 제조기업인 쇼후공업에 입사했다. 이나모리가 입사했을 때, 회사는 사실상 법정관리나 다름없을 만큼 경영 상태가 좋지 않았다. 직장 동료들이 떠나가고 월급이 밀렸지만 이나모리는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최첨단 세라믹 제조기술을 터득했다.

그러다가 1959년 4월 지인들의 권유와 출자로 자본금 300만엔의 ‘교토세라믹’을 창업, 사업가의 길을 걸었다. 창업에는 그의 인간성에 매료된 7명의 직장 선후배와 동료가 동참했다. 교토세라믹은 창업 초기 마쓰시타전기로부터 세라믹 콘덴서를 수주하긴 했으나, 다른 기업들로부터는 지명도가 없는 벤처기업이라는 이유로 외면을 당했다. 이나모리는 “미국에 물건을 팔면 일본의 대기업도 찾아올 것”이라며 미국 시장을 개척했다. 그 결과 1965년 미국의 TI사가 아폴로 우주선에 사용되는 부품을 구매하고, 1966년 까다롭기로 유명한 IBM 표준에 합격해 IC용 집적회로용 기판 2,500만 개를 수주했다. 이나모리가 내놓은 신제품의 반응은 뜨거웠다. 때마침 반도체산업 붐이 일어나면서 교토세라믹은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1973년 오일 쇼크로 수주가 격감할 때도 교토세라믹에는 일시적으로 임금 동결은 있었지만 감원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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