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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오름 가봐수까 ⑯] 한라산 중턱 사라오름… 산행길 밋밋하고 지루하지만 막상 올라가면 산정호수에 탄성 절로 나오고 터진 조망에 가슴 후련해져

↑ 사라오름 산정호수

 

by 김지지

 

2~3년 전부터 제주 오름을 연재 중이다. 서울에 살면서 1년에 한 두 차례씩 제주에 갈 때는 만사 제쳐두고 오름만 오른다. 사라오름은 제주 전역의 수백개 오름 중에서 한라산 백록담 다음으로 높은 곳(1325m)에 있다. 게다가 크고 멋진 산정 분화구도 있다. 그런데도 사라오름과는 인연이 없어 한 번도 다녀오지 못했다. 오름 연재 전, 한라산 백록담에 오를 때 왕복 1시간 정도만 투자하면 되는데도 산행이 힘들어진다는 이유로 사라오름을 피해갔다.

하지만 오름을 연재하는 마당에 제주의 대표적인 오름인 사라오름을 마냥 늦출 수도 없다. 어느덧 15곳 오름을 소개했으니 오히려 많이 늦은 셈이다. 작심하고 아내와 함께 사라오름에 오른 것은 2022년 3월 31일이다. 한라산 산행길은 언제나 그러하듯 밋밋하고 지루했다. 하지만 사라오름 산정 분화구와 전망대 조망은 기대 이상이었다. 괜히 명승 제83호가 아니다.

위에서 내려다본 사라오름 분화구(출처 비짓제주)

 

■사라오름은

 

제주 전역에는 오름이 360여개나 된다. 이 중 원형 분화구는 53개인데 그중 물이 고이는 산정화구호(또는 습지)는 8개다. 사라오름도 산정화구호 중 하나다. 분화구는 둘레가 250m, 지름이 100m 내외의 산정호수 형태를 갖추고 있다. 다만 규모에 비해 수심이 얕아 비가 오면 호수 가득 물이 차고 물이 마르면 적갈색 화산석 부스러기를 뜻하는 송이(스코리아) 바닥이 드러날 때가 많다.

사라오름이 특히 인상적인 시기는 여름 장마철과 겨울 폭설기다. 장마철에 이곳을 찾으면 분화구 가득 물을 품고 있는 신비로운 사라오름을 만나볼 수 있다. 물이 차올라 분화구 옆 데크길이 잠기면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려 건너야 할 정도다. 겨울의 화구호는 거대한 아이스링크장을 방불케 한다. 1300m 고지의 꽁꽁 언 호수와 그 위를 덮은 적설의 모습이 장관이어서 등산 매니아들이 많이 찾는다. 겨울철 상고대가 환상적이어서 ‘하늘호수’로 불리기도 한다.

사라오름의 들머리는 한라산 등정의 2개 코스 중 하나인 성판악 탐방안내소다. 사라오름까지는 왕복 12.8㎞로 4~5시간 걸린다. 오름치고는 거리가 길고 시간도 많이 걸려 지레 겁먹기 쉽지만, 경사가 완만하고 길을 잘 닦아 놓아 누구나 쉽게 다녀올 수 있다. 산행이 수월하다는 것은 산행객들 대부분이 운동화 차림인 데서 알 수 있다.

사라오름 겨울(출처 비짓제주)

 

■예악과 주차

 

한라산에 올라본 사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혹시 몰라 부연한다면 한라산국립공원 인터넷 탐방예약시스템(visithalla.jeju.go.kr)에 접속·예약해야 사라오름에 오를 수 있다. 한라산 등정 코스 중 성판악 코스는 하루 1000명, 관음사 코스는 하루 500명으로 탐방 인원을 제한한다. 성판악 코스의 문제는 주차공간이다. 70여대만 주차할 수 있어 아침 일찍 서두르지 않으면 만차(滿車)를 피할 수 없다. 그렇다고 성판악 주변 갓길에 주차할 수도 없다.

이런 경우 성판악 탐방안내소에서 안내하는 대체 공간이 있다. 성판악에서 제주시 방향으로 7~8개 버스정류장을 지난 곳에 있는 제주국제대 환승정류장이다. 이곳에 주차한 후 281번 버스를 타고 성판악으로 가면 된다. 버스 배차 간격도 10~15분 정도여서 주차할 만하다. 그런데 제주국제대 환승정류장보다 더 가깝고 멋진 주차공간이 있다. 제주국제대와 성판악 중간에 있는 꽤 넓은 마방목지 주차장(용강동)이다. 이곳에서 성판악까지 버스로 이동하는데 10분이 채 안걸린다. 사방이 온통 초록인데다 한적하고 깔끔하다. 한라산 정상도 멀리 보인다.

마방목지

 

■사라오름 산정호수 오름길

사라오름과 백록담 산행 지도

 

▲성판악 탐방안내소~사라오름

예약시간(오전 5시~8시)에 맞춰 오전 7시 50분 성판악 주차장에 도착했으나 예상대로 이미 만차여서 당황하지 않고 바로 용강동 마방목지로 이동했다. 평일이어서 너른 주차장에는 차량 3대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다. 주차장 앞 도로 건너편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니 두 정류장 만에 성판악이다. 코스와 거리는, 성판악 탐방안내소 →(4.1㎞)← 속밭대피소 →(1.7㎞)← 사라오름 입구 →(0.6㎞)← 사라오름 분화구 →(5.8㎞)← 성판악 탐방안내소다. 오름 정상까지 거리가 6.4㎞이므로 왕복으로 계산하면 12.8㎞다. 백록담 정상까지는 사라오름에서 3.8㎞를 더하면 되므로 9.6㎞다. 성판악의 해발고도는 750m이고, 사라오름은 1325m이므로 고도는 575m만 높이면 된다. 생각하기 따라서 575m가 높아보일 수도 있겠으나 6.4㎞를 걸으면서 높혀가는 고도여서 크게 무리는 없다.

성판악 탐방안내소

 

초입에서 인상적인 것은 굴거리나무가 꽤 많다는 것이다. 굴거리나무는 다른 나무들이 여전히 갈색에서 벗어나지 못한 3월말인데도 윤기나는 초록빛을 띠고 있다. 생소한 이름 이어서 알아보니 햇빛을 받으면 광택이 나는 너른 입의 상록활엽수다. 추위에 강해 눈이 한라산을 가득 덮어도 푸르름을 잃지 않은채 겨울을 난다고 한다. 아는만큼 보인다더니 다음날 윗세오름 영실로 올라가는데 그동안 내 눈엔 보이지 않던 굴거리나무들이 이제는 알은체 한다.

산행길은 제주도 용암의 거친 돌길이다. 다행히 굵은 각목, 널빤지, 야자수 매트를 돌길 위에 깔아놓아 발이 덜 피곤하다. 덕분에 시선을 바닥이 아니라 주변 숲으로 돌릴 수 있어 좋다. 초입부터 나무마다 이름이 매달려 있다. 올라갈 땐 일일이 외우며 올라갔으나 내려올 때 보니 이름을 다 잊었다. 나무와 꽃 이름은 그게 그거 같아 언제나 어렵다. 초입에서 1시간 정도 지나니 조릿대 군락지가 펼쳐진다. 조릿대는 분명 산림에는 좋지 않다. 그러나 나무와 풀들이 갈색으로 변한 2~3월 황량한 계절에도 초록빛을 띠고 있어 시각적으로는 눈을 편안하게 해준다.

사라오름 올라가는 길

 

한라산 등정길은 여전히 밋밋하고 단조롭고 지루하다. 길 양옆은 나무만 무성하다. 한라산과 비교해 설악산이나 지리산은 기암괴석, 고목과 거목, 계곡 등이 산행길에 변화를 주어지루할 틈이 없다. 초입에서 1시간 20분 정도 올라가니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있는 삼나무 군락지다. ‘속밭’으로 불리는 일대는 1970년대 이전까지는 소와 말을 방목한 마을 목장의 넓은 초원지대였다. 당시는 털진달래, 꽝꽝나무 등이 많아 ‘한라정원’이라 불렸다는데 지금은 예전 모습은 사라지고 삼나무와 소나무만 우거져 있다.

속밭에서 10분 정도 올라가니 속밭대피소다. 초입에서 4.1㎞ 거리다. 길가에 드문드문 세워놓은 한라산 탐방로 안내도에는 속밭 대피소를 지난 샘터에서 사라오름 입구까지 산행 난이도가 ‘어려움’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여전히 경사가 완만해 힘들지 않다. 사라오름 입구에 도착하니 초입에서 2시간 20분 정도 걸렸다.

속밭. 삼나무가 쭉쭉 뻗어있다.

 

▲사라오름과 전망대

사라오름 입구에서 분화구까지는 0.6㎞ 거리에 살짝 급경사다. 하지만 구간이 짧고 데크 계단이어서 힘들지 않게 오른다. 고개를 넘어서니 놀라운 풍경이 펼쳐진다. 1300m 고지에 이렇게 멋진 산정호수가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탄성이 절로 터져나온다. 사라오름은 상상했던 것보다 거대했다. 2~3일 전 비가 내린 덕분에 분화구에 물이 가득한 전형적인 산정화구호 모습이다. 한 탐방객이 “지금 백록담 올라가도 그렇다”고 말해주어 올라가볼까 하다가 오늘의 목적지인 사라오름에만 충실하기로 해 포기했다.

사라오름 산정호수

 

호수 왼쪽으로 난 데크길을 따라 걸어가 끝지점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남쪽 서귀포를 향해 시원하게 열린 데크 전망대가 조망과 쉼터를 제공한다. 사라오름 분화구는 숲에 가려 보이지 않으나 멀리 한라산 정상이 올려다 보이고 서귀포 앞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전망대 위치가 한라산 중턱이어서 조망 스케일도 엄청나다. 한창을 쉬면서 놀다가 먹다가 내려갔다.

사라오름 전망대. 저 멀리가 한라산 정상이다.

 

하산길은 언제나 등산길보다 지루하다. 그 나무가 그 나무이고 그 지형이 그 지형이다. 다행히 예전에 비하면 내리막길이 많이 편해졌다. 예전엔 울퉁불퉁했는데 지금은 길을 잘 닦아놓았다. 그래도 이 길이 싫으면 눈이 쌓인 겨울에 올라와야 한다. 오르고 내려가는 길이 지루하지만 막상 올라가면 조망은 최고다. 한번쯤은 올라가지 않을 수 없다. 성판악으로 다시 내려가니 총 6시간 걸렸다. 잘 먹고 잘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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