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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오름 가봐수까 ⑮] 산방산과 산방굴사… 고지가 저기인데 오를 수 없어 안타까운 곳

↑ 용머리해안 부근에서 바라본 산방산 모습

 

by 김지지

 

■산방산은

제주도의 랜드마크는 크게 세 곳이다. 한라산이 당연히 첫째이고 그 다음이 동쪽의 성산일출봉과 서남쪽의 산방산이다. 이 가운데 산방산은 제주도 남쪽 바다를 지척에 둔 안덕면 사계리·덕수리 일대 평야지대에 거대 암벽과 암봉으로 우뚝 솟아 있다. 서귀포 어디서든 종(鐘) 모양의 우뚝 솟은 산이 보인다면 무조건 산방산이다. 서귀포가 아니더라도 한라산의 남쪽과 서쪽이든 비교적 높은 오름에 오르면 어디서든 보인다. 해발고도는 395m이지만 비고는 340m나 된다. 한라산 자락에 산방산보다 해발고도가 높은 오름이 허다해도 한라산을 제외하면 산방산보다 비고가 높은 오름은 없다. 천연기념물이면서 대한민국 명승이다.

산방산은 산 아래 용머리해안, 서귀포 앞바다의 범섬·섶섬 등과 함께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체다. 약 80만년 전 화산폭발 후 생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당연히 분화구가 있어야 하는데 없다. 이에 대해 지질학에서는 점성이 강한 조면암질 마그마가 분출해 지금의 종 모양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한다. 즉 80만년 전 뜨거운 조면암질 용암이 대지를 뚫고 올라왔는데 점성이 강해 멀리 흘러가지 못하고 분화구 주변에 꾸역꾸역 쌓여 솟은 형태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촛농이 흘러나와 굳은 모양을 연상하면 된다.

용머리해안(아래)과 산방산(출처 용머리해안-산방산 지질트레일)

 

천연기념물이면서 대한민국 명승

산비탈의 거칠고 험한 암벽은 쌓여있던 용암이 오랜 세월 바닷바람을 맞아 깎이고 패면서 형성된 흔적이다. 그래서 바다를 마주한 남쪽 비탈이 북쪽 비탈보다 더 가파르다. 실제로 산방산은 바라보는 지점마다 그 모양이 다르다. 산방산 북쪽 안덕면 덕수리에서 바라보면 그저 평범한 산 같지만, 동남쪽 화순해수욕장에서 바라보면 우직한 산으로 보인다. 남쪽 용머리 해안에서 바라보면 바위절벽이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처럼 보인다. 사실 이 절벽 바위는 수직 돌기둥 모양으로 갈라진 주상절리다.

산방산에는 한라산과 엮여있는 전설이 있다. 산방산이 우뚝하고 한라산이 움푹 파였기 때문에 생긴 전설인데 제주도 사람들은 두 산의 정상을 보고 산방산을 한라산 백록담에 얹으면 딱 맞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전설에 따르면, 먼 옛날 한 사냥꾼이 한라산에서 사냥을 하다가 활을 잘못 쏴서 옥황상제의 엉덩이를 건드렸다. 격분한 옥황상제가 홧김에 한라산 정상의 암봉을 뽑아서 던졌는데, 그 암봉이 날아와 꽂힌 곳이 산방산이고 암봉이 뽑힌 자리가 백록담이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산방산과 백록담의 둘레가 얼추 비슷하고 두 곳 모두 조면암질로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다만 결정적 차이는 있다. 산방산과 한라산의 생성시기가 다르다는 점이다. 암석 연대 측정 결과 백록담은 약 2만 살이고, 산방산은 80만 살이다.

광명사 입구에서 올려다본 산방산

 

▲올라갈 수 없는 산방산 정상

현재 산방산 정상은 오를 수 없다. 안전사고가 잦고 희귀식물 훼손이 심해 서귀포 앞 문섬·범섬·섶섬 등과 함께 2012년부터 출입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출입 통제 기간은 2021년 12월까지였다. 해서 2022년 통제가 풀릴 날을 학수고대했으나 서귀포시가 통제 기간을 다시 10년 연장하는 바람에 나의 꿈은 또다시 10년 후로 미루어졌다. 결국 통제가 시작된 2012년 이전에 산방산에 올라간 사람들의 글을 읽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산방산 들머리는 산방산 북쪽 안덕면 덕수리 보덕사다. 다른 쪽보다 상대적으로 경사가 덜 하고 깎아지른 절벽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비고가 340m나 되고 가파른 암벽 구간이 있어 정상까지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이곳에도 일제시대의 흔적이 잔해로 남아있다. 북쪽사면 7부 능선 쯤(해발 270m)에 일본군이 제주도민을 동원해 바위를 뚫어 만든 진지동굴이다. 너비가 1.6m, 높이가 1.8m인 동굴이 산방산을 관통한다고 한다. 9부 능선에도 미완성의 동굴진지가 있다.

정상에는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대형 바위가 있다. 그 위에 앉아있으면 신선처럼 세상이 내려다보인다고 해서 신선이 앉는 의자라는 뜻의 ‘선인탑(仙仁榻)’이나 ‘선대’로 불린다. 선인탑에서는 산방산 아래 화순 마을은 물론 푸른 바다 한가운데 있는 형제섬과 송악산 건너편 가파도와 마라도 등이 발아래 펼쳐진다. 동쪽 서귀포에서 서쪽 모슬포까지도 한 눈에 조망된다.

산방굴사 올라가는 길에 내려다본 용머리오름. 그 앞의 섬이 형제섬이다.

 

▲산방굴사에 올라가보니

산방굴사는 산방산 남서쪽 기슭 해발 200m 지점에 있는 자연 석굴의 절이다. 방처럼 생긴 굴이라고 해서 이름이 산방굴사(山房窟寺)다. 산방산이라는 이름도 이 동굴에서 비롯되었다. 산방굴사는 초입의 다른 절들과 달리 입장료(1000원)를 받는다. 반듯반듯한 급경사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는데 입구에서부터 10분 정도 걸린다. 탐방로 중턱에서 보면 용머리해안과 형제섬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굴 높이는 5m, 깊이는 10m나 되어 널찍하다. 동굴 안쪽에 모신 부처님이 남쪽 바다를 보고 앉아 있다. 암벽 천장에서 맑은 물방울이 떨어지는데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고려 말 혜일 스님이 이곳에서 정진하다 입적하고 조선 후기 초의선사가 제주도로 귀양 온 추사 김정희를 찾아와 추사와 교유하며 이 굴에서 수도했다고 전해진다.

산방굴사

 

산방굴사는 제주 영주십경 중 하나일 정도로 조망이 좋다고 한다. 영주는 제주도의 옛 지명이고 영주십경은 제주도에서 경관이 빼어난 곳 10곳이다. 성산일출(제1경), 정방폭포 여름을 뜻하는 정방하폭(제4경), 영실의 기이한 바위를 뜻하는 영실기암(제7경)도 영주십경이다. 그런데 지금의 산방굴사는 숲에 가려 조망이 좋진 않다. 더구나 굴 안의 인공 시설물들이 조잡해 경건한 사찰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결국 불교신자나 호기심이 발동한 일반인이라면 산방굴사까지 올라가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혹여 조망 때문이라면 올라갈 필요가 없다.

 

▲산방산 남쪽 아래 3개 사찰

산기슭에도 종파가 다른 사찰이 3개 있다. 산방산을 바라보면 왼쪽부터 광명사(일붕선교종), 산방사(태고종), 보문사(원효종) 순서다. 넓지 않은 땅에 세 사찰이 붙어있어 경쟁이 치열한 속제의 상점이나 가게를 보는 듯 하다. 다행인 것은 이곳 조망이 산 중턱의 산방굴사보다는 낫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는 산방굴사 탐방로가 산방사와 보문사가 연결되어 있어 이 두 곳만 둘러보고 내려가는데 왼쪽 치우친 곳의 광명사도 둘러보면 좋을 것 같다. 여염집처럼 규모는 작아도 장식이 특이해 눈길을 끈다. 입구에서부터 세련되게 조각한 12지신상과 이국적 느낌의 화려한 모습의 부처상이 줄지어 있다. 사찰 안에는 관음상이 황금색을 하고 있는데 엄청 화려하다. 광명사에서는 바로 위 기암 절벽도 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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