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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오름 가봐수까 ⑬] 바리메 오름과 족은바리메… 원시림같은 울창한 숲과 막힘없는 조망으로 SNS에서 입소문 타고 있는 명소

↑ 바리메오름 정상에서 바라본 큰노꼬메오름(왼쪽)과 한라산 분화구벽. 그 옆으로 보름달이 떠 있다.

 

by 김지지

 

■바리메 오름은

 

바리메는 승려들이 공양할 때 사용하는 식기를 뜻하는 발우(바리때)에서 유래

한라산 서쪽에서 최고 인기 오름은 애월읍의 노꼬메오름이다. 족은노꼬메와 궷물오름까지 거느려 더욱 인기가 많다. 그런데 노꼬메에서 인접한 곳에 의외로 멋진 오름이 있으니 이름하여 바리메 오름이다. 바리메는 분화구가 승려들이 공양(식사)할 때 사용하는 식기를 뜻하는 발우(바리때)와 닮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제주도 여성들의 밥그릇인 바리에서 따왔다는 설명도 있다. 바리메에서 ‘메’는 뫼의 변형이다.

바리메 오름 분화구

 

바리메 오름은 큰바리메와 족은(작은)바리메로 구별된다. 그런데 바리메는 애월읍 어음리에 속해 있고, 족은바리메는 애월읍 상가리에 속한다. 이를테면 두 오름의 경계가 마을의 경계도 겸하고 있는 셈이다. 큰바리메 해발은 763m이고 비고(실제 높이)는 213m다. 제주 서부권 최고 오름으로 인정받는 인근의 큰노꼬메 오름 비고(234m) 보다는 약간 낮지만 큰노꼬메가 제주도 말발굽 오름 중 비고가 가장 높다는 점에서 결코 낮지 않다. 족은바리메 앞 안내판에 따르면 족은바리메 해발은 726m이고 비고는 126m다. 이상하다. 두 오름은 들머리 해발 고도가 같으므로 정상 해발 고도에서 뺀 숫자 37m(763-726)가 바로 비고 차이여야 하는데 87m(213~126)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나라 전국의 산이든 오름이든 엉터리 숫자가 많다.

큰바리메 분화구(굼부리)는 한라산 백록담처럼 전형적인 분화구 모습이다. 둘레는 130m이고 깊이는 78m다. 분화구를 가운데 두고 능선을 한 바퀴 돌고 내려오는데 대략 1시간 쯤 걸린다. 큰바리메의 매력은 다양한 수종과 울창한 숲 그리고 막힘없는 조망이다.

바리메 오름과 주변 오름 지도

 

족은바리메는 SNS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는 명소

족은바리메도 나름 인기 요소를 갖추고 있다. 2019년 방영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tvN)’ 초반부에 등장하는 울창한 숲이 족은바리메에서 촬영한 장소라고 알려진 것이 인기의 시작이다. 이후 한 연예인 커플의 웨딩화보 촬영으로 알려지면서 지금은 젊은이들 SNS에서 나름 명소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과 화산탄에 뿌리 내리고 자라는 나무들이 어울려 있어 약간 과장하면 원시림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쓰러진 나무에서 파릇파릇하게 자라는 이파리들도 인상적이고, 바위에 기생해 사는 이끼와 바위도 태고의 자연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큰바리메에 비해 찾는 사람이 적어 정비가 잘 되어있진 않은데 바꿔말하면 인공적 요소가 적어 자연 그대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곳은 숲이 깊어 봄이면 고사리를 채취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멧돼지가 출몰한다니 주의가 필요하다.

족은바리메 (출처 비짓 제주)

 

이렇게 멋진 곳인데도 그 진가를 알지 못한 채, 그저 노꼬메와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4월말 어느날 늦은 오후에 아내와 함께 별 기대없이 바리메 문을 노크했으니 미안할 따름이다.

 

■오르고 걷고 바라보고

 

원시림 느낌을 주는 깊 옆 울창한 숲과 짙은 그늘이 인상적

바리메 오름 들머리는 도로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다. 주차장이자 들머리는 1117번 지방도로(산록서로)를 타고 가다가 목장 표석 옆 시멘트포장 농로를 따라 2㎞ 정도 들어간 곳에 있다. 농로 입구는 과거 서부산업도로로 불리던 1135번 지방도로(평화로)와 연결된 1117번 도로를 타고 한라산 방향으로 가다보면 약 1.2㎞ 떨어진 지점에 있다. 내비게이션에서 ‘바리메 주차장’을 검색하면 알아서 잘 안내해준다. 농로가 1차선이어서 탐방객이 많은 날에는 마주오는 차량을 피하느라 지체될 수도 있다.

농로 진입 후, 내비가 안내해주는 대로 목적지(주차장)만 생각하고 운전하는데 언뜻언뜻 보이는 주변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기념샷을 찍으려고 화려하고 개성있는 복장을 한 젊은 남녀들이 눈에 많이 띠는 것도 풍경 때문이다. 잠시 차를 멈추고 주변을 구경하고 싶다는 충동이 꿈틀거렸으나 시간에 쫓기는 늦은 오후여서 포기했다.

오후 6시 15분 도착한 주차장은 충분히 넓고 화장실은 깔끔하다. 문제는 큰바리메에 올라 능선을 한 바퀴 돌고 내려오는 시간을 가늠할 수 없고, 어두워지면 사진을 찍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었다. 올라갈까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2쌍의 중년 부부가 이거저거 따지지 않고 오르는 것을 보고 우리도 등정을 결심했다. 숲길 입구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마치 초록의 동굴로 들어가는 것처럼 숲 사이에 조그만 출입구가 나 있다. 능선까지 오름길은 흙길이거나 침목 계단길이다. 깔끔하다. 인상적인 것은 마치 원시림같은 느낌을 주는 깊 양옆의 울창한 숲과 짙은 그늘이다.

오름길

 

능선에 오르니 안내판이 “오르느라 수고했다”며 친절하게 맞는다. 우리는 급하게 올라 15분 걸렸지만 보통은 20분 정도는 잡아야 한다. 안내판은 왼쪽이 정상이라고 안내하면서 분화구 바깥을 도는 전체 둘레가 826m임을 알려준다. 숲 사이를 지나는 능선길은 아늑하고 편안하다. 이국적이기까지 한데 다른 계절도 이런 모습일지는 자신하지 못한다. 이리저리 휘어지면서도 굵고 크게 자라는 나무들은 허물 벗긴 뱀처럼 맨질맨질하다. 때는 바야흐로 초록의 전성기인 4월 말이다. 연초록의 향연을 오름에서도 만끽한다.

이곳 경험자에 따르면 5월에는 때죽나무 아래로 작은 흰 꽃이 통째로 많이 떨어진다고 한다. 6월에도 꽃잎이 4개인 큼직한 흰 꽃이 떨어지는데 산딸나무란다. 그 계절에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거의 모든 숲이 흰색 옷을 입는다고 하니 궁금할 따름이다.

능선길

 

정상에 서면 변화무쌍한 풍경이 사방으로 펼쳐져

능선길 안내판에서 왼쪽으로 5분 정도 오르니 사방의 변화무쌍한 풍경을 볼 수 있는 정상이다. 동쪽으로는 멀리 한라산이 보이고, 서남쪽으로는 마치 종을 엎어놓은 듯한 산방산이 삐죽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오른쪽 앞으로는 엘리시안 제주cc가 초록을 뽐내고 있고 그 왼쪽으로는 역시 초록의 목장 초지가 아주 넓게 펼쳐있다. 주차장에서 멀지 않은 그 초지에 나름 괜찮은 포토존이 있다고 하니 하산 후 다녀오면 좋겠다.

정상에서 바라본 남쪽 조망. 오른쪽 골프장 건너 오름은 왼쪽부터 폭낭오름, 괴오름, 북돌아진오름이고 그 뒤가 산방산이다.

 

정상을 지나 반대쪽 능선으로 내려가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또 다른 조망처가 나온다. 정상 조망보다 다양하고 멋지다. 제주도 서부권이 다 보이는데 특히 서쪽 새별오름과 그 뒤 이달봉과 이달이촛대봉들이 바다를 향해 줄달음치는 모습이다. 동쪽으로는 큰노꼬메 분화구 모습이 뚜렷하다. 그 오른쪽으로는 멀리 평원을 지나 한라산 정상의 분화구벽(부악)이 마치 자기가 제주도의 지배자인 양 천하를 호령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늠름하고 위엄이 살아있다. 해가 기울어 한라산 부악이 선명치 않은 게 아쉬웠으나 대신 두둥실 보름달이 한라산 부악 옆으로 크게 떠오르니 망외소득이다. 이곳에서는 정상에서 보이지 않던 분화구 안도 잘 보이고 벤치도 있어 쉬어가기에 좋다. 철쭉도 여기저기 한창이다. 선홍빛에 깨끗하고 싱싱하다.

바리메오름에서 바라본 새별오름. 그 뒤가 이달이오름과 이달이촛대봉이다.

 

7시 20분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어느덧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 어둑어둑하다. 시간에 쫓겨 족은바리메에 오르지 못하고 능선에서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게 아쉽다. 하지만 그 아쉬움은 또 찾아오라는 바리메의 깊은 뜻일테니 조만간 또 다녀와야겠다. 시간을 충분히 갖고.

족은바리메 (출처 비짓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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