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박스

63억㎞의 우주 대장정 떠난 美 소행성 탐사선 ‘루시’는 20년간 ‘최초 이브’ 자리를 지켰던 원인(猿人) 화석에서 따온 이름

↑ 루시 화석(왼쪽)과 미 클리블랜드 박물관에서 상상해 만든 루시 조형물

 

by 김지지

 

미 항공우주국(NASA)의 소행성 탐사선 ‘루시’가 태양계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10월 16일 우주로 떠났다. ‘행성 고고학 탐사선’이라 불리는 루시는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우주발사장에서 아틀라스5호 로켓에 실려 발사됐다. 앞으로 12년간 목성까지 날아가면서 소행성 8개를 탐사할 예정이다. 이동 거리가 총 63억㎞에 이르는 대장정이다.

소행성을 탐사하는 루시 상상도

 

루시라는 이름은 1974년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320만년 전 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화석의 애칭에서 땄다. 당시 발굴단이 자주 듣던 비틀스 노래가 ‘다이아몬드와 함께 하늘에 있는 루시(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였다고 한다. 인류의 조상 화석인 루시처럼 탐사선도 태양계의 기원과 진화 과정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길 바라는 의미가 담긴 것이다. 루시가 어떻게 발견되고 어떤 화석인지를 알아본다.

 

■‘루시’ 화석 발견 후, 세계 모든 교재에 인류의 조상으로 등재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은 아니지만 인류의 특질을 지닌 최고(最古) 원인(猿人)

1969년 프랑스의 젊은 지질학자 모리스 타이에브가 에티오피아의 하다르 계곡에서 코끼리뼈와 코뿔소·돼지의 화석 등을 발견했다. 하다르 계곡은 타이에브가 고대 호수에 대한 증거를 찾기 위해 에티오피아의 아와시 계곡을 뒤지다가 계곡 북동쪽 끝에서 발견한 계곡이다. 코끼리뼈들을 파리로 가져가 연대를 측정했다. 300만 년이나 된 오래된 화석이었다. 그때까지 발견된 ‘호미니드’ 화석 중 300만 년 전 것은 없었기 때문에 타이에브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국의 고생물학자 도널드 조핸슨에게 도움을 청했다. 호미니드는 현생인류 즉 ‘호모 사피엔스’의 직접적 조상은 아니지만 인간의 특징을 많이 지닌 수백만 년 전의 초기 원인(猿人)을 말한다.

도널드 조핸슨

 

조핸슨은 1972년 4월 타이에브와 함께 하다르 지역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1973년 10월 넓적다리뼈의 아래쪽 끝 부분을 발견했다. 주변을 살펴보니 무릎관절에서 나온 둥근관절돌기도 보였다. 두 조각을 맞춰보니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조핸슨은 그 뼈가 원숭이의 무릎뼈일 것으로 추정하면서도 혹시 원인의 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지역의 한 무덤에서 사람의 넓적다리뼈를 파내 비교하니 같은 모양이었다.

조핸슨은 넓적다리뼈를 가지고 미국의 한 생물인류학자를 찾아갔다. 학자는 뼈의 주인공은 호미니드이고 키는 107㎝ 정도로 침팬지보다 가벼운 암컷이며 직립보행을 했음을 알려주었다. 연대 측정 결과 300만~350만년 전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 순간 조핸슨의 머릿속에 새로운 의문이 생겼다. 이 넓적다리뼈로 걸었던 호미니드는 인간의 직계조상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호모’였을까? 아니면 남아프리카·케냐·탄자니아 등지에서 발견된, 인간의 혈통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거리가 있으면서도 인간에 가까운 원인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였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이 뼈대의 주인공은 ‘호모’가 아니라 ‘오스트랄로피테쿠스’였다.

조핸슨이 ‘루시’ 화석을 발견한 에티오피아 하다르 지역

 

비틀스의 노래에서 ‘루시’ 이름 따와

1974년 11월 조핸슨 탐사대는 또다시 부근에서 팔뼈 부분, 작은 머리뼈의 뒷부분, 넓적다리뼈 부분, 등뼈, 골반뼈 부분, 갈비뼈들을 발견하는 개가를 올렸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뼈대들이 한 사람의 몸에서 나왔다는 사실이었다. 그 개체가 발견된 지층을 칼륨·아르곤 연대측정법으로 측정해보니 330만 년 전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후 계속된 작업을 통해 몇백 개의 뼛조각을 추가로 발견했다. 이렇게 발견한 뼈는 사람의 뼈 가운데 20~40%나 되었다. 이처럼 많은 원시 개채의 뼈대가 발견된 적은 그때까지 없었다. 사자(死者)가 평온하게 죽음을 맞았기 때문인지 뼈대 상태도 좋았다. 평화롭게 죽고 모래와 진흙에 덮인 뒤 퇴적하는 흙더미에 짓눌려 화석으로 변했다가 330만 년이 지나 폭우에 쓸려 땅 위로 드러난 것이다.

화석의 두뇌는 작았지만 직립보행을 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골반으로 보아 뼈의 주인공은 여성이었고 팔이 긴 것으로 보아 나무타기를 잘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키는 120㎝로 작았으며 사랑니가 다 자라고 닳은 흔적으로 보아 성인임을 알 수 있었다. 척추가 변형된 것은 관절염이나 다른 뼈질환을 앓았을 것으로 추정하게 했다.

조핸슨 탐사대는 어느날 발굴 캠프에서 밤새도록 맥주를 마셨다. 마침 그때 카세트 테이프에서 1967년 떠나간 소녀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비틀스의 노래 ‘다이아몬드와 함께 하늘에 있는 루시(lucy in the sky with diamonds)’가 들려왔다. 순간 330만 년 전 여성에게 ‘루시’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이후에도 그곳에서 뼈는 계속 발견되었고 뼈를 모두 모아보니 적어도 13명은 되는 집단의 뼈임을 알 수 있었다. 나중에 ‘최초의 가족’으로 불리게 될 집단 역시 루시와 같은 종임이 밝혀짐으로써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라는 학명을 얻게 되었다.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노래가 수록된 비틀스 음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1967년)

 

2000년에는 에티오피아 디키아 지역에서 발견된 3살짜리 여자 아기도 루시와 같은 종으로 확인되어 ‘셀람’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셀람 유골은 보존상태가 거의 완벽한 두개골과 윗몸통, 팔다리 주요 부위 등을 토대로 2006년 복원되었다. 루시는 1992년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 즉 ‘아르디’라는 고대원인 유골이 발견되어 440만 년 전에도 인간에 가까운 원인이 존재했음이 드러날 때까지 20년 동안 인류의 특질을 지닌 최초의 원인(猿人)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20년 동안 루시는 ‘최초의 이브’ 자리를 지켰으며, 세계의 모든 교재에 인류의 조상으로 등재되었다.

 

■‘루시’ 이후 화석 ‘아르디’, ‘밀레니엄맨’, ‘투마이’

 

1974년 발견된 ‘루시’는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은 아니다. 하지만 루시는 당시까지 발견된 호미니드 중 인류의 특질을 지닌 최고(最古)의 원인(猿人)이라는 점과 역대 어느 호미니드 화석보다 가장 많은 뼈가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1992년 12월 팀 화이트(미국)와 스와 겐(일본) 등으로 구성된 탐사대가 에티오피아 아라미스에서 원숭이가 포함된 동물 화석 몇 개를 찾아냈다. 그 곳은 루시가 발견된 아와시 계곡에서 불과 70여㎞ 떨어진 곳으로, 퇴적층의 연대가 400만 년도 더 된 곳이었다. 탐사대는 그곳에서 또다시 몇 개의 이빨, 팔뼈 하나, 머리 뼈 일부, 턱뼈를 찾아냈다. 그들은 그것이 호미니드임을 직감으로 알아차렸다.

탐사대는 아주 원시적인 젖니어금니를 통해 그 화석이 루시의 종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보다 더 오래되고 더 원시적인 종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탐사대는 1993년 12월 그곳에서 한 개체의 이빨 10개를 더 발견했다. 1년 전부터 발견된 화석을 모두 모아보니 아래턱, 이빨, 왼쪽 팔뼈 등 모두 17조각이나 되었다. 정밀조사 결과, 화석은 침팬지도 아니고 아파렌시스(루시)도 아닌 새로운 종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화이트는 이 화석이 인류의 조상과 유인원 사이에 존재하는 ‘잃어버린 사슬’로 추정했다. 440만 년이나 된 화석에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라미두스’라는 학명이 부여되고 나무 위가 아니라 땅 위에 사는 유인원이라는 뜻으로 ‘아르디피테쿠스’(약칭 아르디)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아르디는 원시적인 젖니어금니와 직립보행의 증거가 될 수 있는 특징을 갖추고 있어 유인원과 사람의 특징을 모두 지닌 것으로 발표되었다. 손은 멸종된 원숭이와 비슷하지만 강한 어금니와 유연한 손가락은 물건을 세게 쥘 수 있었다. 아르디의 발견은 학계에서 인류와 침팬지의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인류가 초기에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보여주는 타임 캡슐 같은 존재로 인정받았다. 아르디의 모습은 47명의 과학자가 십수 년 동안 복원작업을 벌인 끝에 2009년 10월 과학잡지인 ‘사이언스’에 공개되었다. 아르디는 어금니가 완전한 것으로 미루어 다 자란 성인 여성이었다. 키는 120㎝, 몸무게는 54kg 정도였다. 팔은 길고 다리는 짧았으며 직립보행을 했다.

‘아르디’ 화석(사이언스 2009년 10월 2일자 게재)과 상상 복원도

 

새로운 호미니드 발견할 때마다 ‘잃어버린 사슬’ 주장

아르디는 이처럼 루시를 ‘최초의 호미니드’ 자리에서 쫓아냈으나 아르디 역시 2000년 ‘밀레니엄맨’이 발견됨에 따라 최초의 권좌를 지키지 못하고 물러났다. 밀레니엄맨은 영국의 지질학자 마틴 픽퍼드와 프랑스의 고생물학자 브리지트 세뉘에 의해 2000년 11월 케냐 투겐 구릉지에서 발견되었다. 화석은 턱뼈 파편과 위팔뼈 그리고 직립보행의 증거인 왼쪽 넓적다리뼈의 윗부분 등 13개나 되었다. 그 화석들이 발견된 곳은 연대가 565만 년으로 추정되는 현무암층 밑이었다. 따라서 화석의 연대는 약 600만 년 전으로 추정되었다. 그때까지 발견된 인류 가족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개체의 화석이 발견된 것이다. 학명은 ‘오로린 투게넨시스’로 붙여졌다.

밀레니엄맨이 차지하고 있던 ‘최초의 호미니드’ 자리를 빼앗은 것은 2001년 발견된 ‘투마이’였다. 원형이 거의 보존된 두개골과 아래턱, 치아 화석 등으로 구성된 투마이는 2001년 프랑스의 지질학자 미셸 브뤼네의 탐사대에 의해 차드 북부 주라브 사막에서 발견되었다. 이빨과 머리뼈에서 인간다운 특징이 나타났으며 직립보행의 흔적이 있었다. 그들은 화석의 머리뼈가 600만 년보다 더 이전에 살았던 호미니드라는 사실을 알고는 차드 대통령에게 작명을 요청했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투마이였다. 투마이의 발견 사실은 2002년 7월 ‘알려진 최초의 호미니드’라는 제목의 기사로 네이처지에 소개되었다. 학명은 ‘사헬란트 로푸스 차덴시스’라고 지어졌다.

‘투마이’ 두개골

 

화석을 발견한 미셸 브뤼네는 투마이의 두개골 용량과 몸의 크기는 침팬지와 유사하고 송곳니가 짧고 무딘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인간과 침팬지의 진화과정에서 그때까지 발견되지 않아 공백으로 남아 있던 ‘잃어버린 고리’임에 틀림없다고 역설했다. 또한 투마이는 인간과 침팬지의 특징을 동시에 갖고 있는 공동조상으로 봐야 하며 여기에서부터 인간과 침팬지로 분화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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