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박스

[인천농민 신형준의 ‘세상 바투보기’] 수능 성적으로만 신입생 뽑자는 정시 주장에 반대하는 이유는… ‘결과’는 공정할지 몰라도 ‘결과에 이르는 과정’이 공정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지요

↑ 입시업체의 대학입시 설명회

 

현행 수시가 복잡한 것은 사실… 제도가 복잡할수록 ‘외부 전문가’ 끼어들 틈 생겨

최근 홍준표 국민의힘 대통령 예비후보가 ‘공정성’을 이야기하면서 대입 전형을 수능 성적으로만 결정하자고 주장했다. 수시를 없애고 정시로만 뽑자는 이야기다. 솔직히 현행 수시가 복잡한 것은 사실이다. 학생부 교과(고교 내신 성적을 위주로 보는 것)가 있고, 학생부 종합(고교 내신 성적에, 학생의 학내 활동을 종합해서 보는 것)이 있고, 논술이 있고…. 여기에 학생부 교과니 종합이니 역시 학교마다 학교장 추천이다, 자기소개서(=자소서)다 뭐다 해서 조금씩 방식이 다르다.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다. 제도가 복잡할수록 ‘외부 전문가’가 끼어들 틈이 생긴다. 그것이 입시 관계자가 됐든, 학부모가 됐든 말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대입 사건 역시 이런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본다. 조 전 장관 딸의 스펙을 만드는 과정에서, ‘특정 유전자와 영아의 특정 질병과의 상관관계’라는 논문에 조 전 장관 딸이 제1저자로 참여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논문은 쉽게 말하면, ‘특정 질병(허혈성 저산소뇌병증)을 가지고 태어난 영아에게는 특정 유전자(eNOS 유전자)에 결함이 있다’는 내용이다. 기실 이 논문은 ‘임상에서 오랫동안 특정 질병(허혈성 저산소뇌병증)을 관찰한 뒤 이것이 어떤 유전자 때문에 발생하는 병일까’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한 사람이라면 쓸 수 있는 글이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도대체 어떤 임상경험을 했다고 이런 고민을 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똑똑한 고교생이라면 대학이 아니라, 바로 의대 대학원이나 생물학과 박사 후 과정(포스닥)에 가야했을 것이다.

학생부 종합 전형에서 부정 등 문제점이 이렇게 심각하니 1980년대~1990년대 초반까지의 방식이었던 수능(당시는 학력고사라고 불렸다)으로 100% 뽑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공정성, 좋다. 그래서 수능 100%로 하자는 주장이 요즘 적지 않은 이들에게서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수능 성적 좋았던 곳은 하나같이 사교육열 높은 곳

그런데, 수능 100%를 주장하기에 앞서 ‘지역별 성적 차이’에 대해 생각했으면 한다. 요즘은 ‘지역 격차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게 된다’는 이유로 발표를 안하지만,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각 고등학교별 수능 2등급(상위 11% 이내 성적) 이상 비율’을 발표한 적이 있다. 각 자치구별로도 ‘수능 과목별 2등급 이상자 비율’을 발표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10여 년 전쯤 서울에서 영어 1등급 비율(상위 4% 이내 학생)이 가장 높았던 곳은 어느 구였을까? 강남구였다. 수험생의 13% 정도가 1등급이었다. 그럼 가장 낮은 곳은? 금천구였다. 금천구는 항상 1%가 안 됐다. 더 솔직히 말하면 0.6% 정도였다. 이리 된 이유는 간단하다. 국어나 수학은 ebs를 통해 가난한 학생이 이를 악물고 공부하면 그나마 따라갈 수 있는데(물론 쉽지는 않다), 영어는 ‘영어권 국가에서 살다 오거나, 영어 말하기와 듣기에 익숙한 환경에 처했던 학생’을 이길 수 없는 거다. 어학이란 게 원래 그렇지 않나?

‘부모(혹은 조부모)의 재력이나 지적 환경이 성적에 거의 그대로 반영되는 과목’ 1순위로 영어가 항상 꼽히니 좌파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우파 정부에서도 이를 그냥 두고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영어를 절대 평가로 바꾼 것은 이런 까닭이었다. 수능에서 영어 변별력을 줄이려는 것이었다.

한데 영어에 비해 낮더라도 국어나 수학은 어땠을까? 앞서 말했듯, 수능 2등급 이상자 발표를 하면 항상 서울 강남구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2등급 이상 비율이 15% 이상에 달했다. 그 뒤를 서초구 양천구 등이 따랐다. 서울의 평균 수준 고교의 2등급 이상자 비율은 4%대였다. 내 아해(아이)가 고교 1학년 때까지 다녔던 경기도 김포의 어느 고등학교는 아예 2등급 이상자 비율을 발표하지도 못했다. 1% 대도 안되기 때문이었다. 성적이 좋았던 곳은 하나같이 사교육열이 높은 곳이다. 잘 사는 지역이라는 뜻이다.

 

수능은 철저한 사교육 싸움… 어릴 적부터 사교육 받은 학생 이길 수가 없는 구조

수능은 철저한 사교육 싸움이다. 수능 점수를 잘 딸 수 있도록 어릴 적부터 교육받은 학생을 이길 수가 없는 구조이다. 때문에 수능 점수만으로 대학을 가게 된다면, ‘결과’ 자체는 공정할지 몰라도, ‘결과에 이르는 과정’이 공정하다고 볼 수는 없다.

고백하자면, 내 아해는 고1 때 고교를 자퇴했다. 내신 점수와 모의고사 점수 차이가 너무 컸기에, 도저히 학생부 중심의 수시로는 좋은 대학을 가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정시로 갈 것이라면, 정시 교육에 가장 적합한 학원으로 가자는 게 내 생각이었고, 아해 역시 내 의견을 따랐다. 그렇게 2013년~2014년 한 달 평균 200만 원 이상을 써 가면서 서울 양천구 목동의 종합학원을 다녔다. 수능 성적은 아해가 애초 목표했던 대학을 가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수능을 마친 뒤 아해가 한때 다녔던 고교의 재학생들과 이야기를 했는데, 아해 성적과 같은 성적을 맞은 친구는 그 학교에서 단 한 명도 없었다. 내 아해가 워낙 똑똑해서 이런 결과를 얻은 것일까? 천만에. 내 아해는 ‘사교육의 혜택’을 받은 것일 뿐이다.

지금도 아해와 내가 대학 입시에서 동의하는 부분은 그 한 가지이다. “정시로만 대학을 뽑는다면, 서울 대치동의 독주를 막을 수가 없다. 정시는 일정 비율로 유지하되, 고교 간 격차를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고교 내신 성적으로만 뽑는(=학생부 교과) 비율을 높여야 한다. 그래서 대치동 특정고의 내신 1.5와 경북 독도고등학교 내신 1.5를 동등하게 취급해야 한다. 그래야 지방이 살고, 지방에서도 인재를 키울 수 있다.”

 

과정 자체가 불평등한데 결과만 공정하다고 공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수능 100%로 대입을 결정하자고? 그것이 ‘결과적 공정’을 보장한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과정 자체가 불평등한데 결과만 공정하다고 공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사교육의 폐해를 이야기하는 사람을 숱하게 보았다. 하지만 그들 역시 돈만 있으면 자신의 아해를 특목고에 보내거나 서울 8학군에 보내려고 한다. 교육부 장관이나 교육감을 했던(혹은 하고 있는) 이도 그랬고, 제가 아는 숱한 정치인이 그랬다. 자녀를 특목고에 보내거나, 서울 8학군에 보내는 것을 욕하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수능 100%로 제도를 변화시키면 결과적으로 득을 보는 것은 ‘그들’이라는 것을 지적하고플 뿐이다.

수능 100% 전형이 공정해 보인다면 그것은 결과로만 볼 때뿐이다. 수능 100% 전형으로 하게 될 때 경북이나 강원의 어느 두메산골, 전남 어느 섬에 사는 학생이 속칭 스카이를 가게 될 확률은 0%에 수렴하게 될 것이다. 조국 전 장관의 경우처럼, ‘외부인’이 전형에 끼어들 가능성이 높은 학생부 종합은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 그 폐지된 비율은 고교 내신만으로, 각 고교별 격차를 인정하지 않는 ‘학생부 교과’로 채워야 한다.

수능 100% 전형, 즉 정시의 비율을 얼마로 할지는 ‘치열한 공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결정해야 할 것이다. 다만 정시 비율이 40% 이상이 되면, 여전히 대치동 독주는 이어질 것이다. 대치동 학생들의 경우, 학생부 교과를 노렸다가 안 되면 정시로 바꾸면 되니까. 아쉽게도 현 정부는 조국 사태 이후 정시 비율을 40% 혹은 그 이상으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이러니 대치동이나 강남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내 아해 때는 상위권 대학의 정시 비율이 30% 혹은 그 미만이었다. 다만 아해 때는 학생부 종합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었다. 외관상 공정하게 보인다고, 정말로 공정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바투보기’는
가까이에서 정밀하게 바라본다‘는 뜻이다. 고유어 ‘바투(두 대상이나 물체의 사이가 썩 가깝게)’와 ’보기‘를 합친 필자의 造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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