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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가야산] 옥문봉~가야봉 능선… 두 번째 오르니 비로소 진경(眞境)이 보이더군요. 기대 그 이상의 산행지랍니다

↑ 옥양봉 정상. 뒤로 석문봉~가야봉 능선이 길게 펼쳐있다.

 

by 김지지

 

☞ 내맘대로 평점(★5개 만점). 등산요소 ★★★ 관광요소 ★★★

 

☞ 코스와 거리 : 총 8㎞

     남연군묘 삼거리(들머리) → 옥양봉 → 석문봉 → 가야봉 → 원점회귀

☞ 산행 시간(휴식 포함) : 5~6시간

 

2021년 7월 10일의 산행지는 충남 덕산도립공원 내 가야산이다. 동행자는 고교 동창인 남수 선근 정형 종서 종훈 태훈 이렇게 여섯이다. 덕산도립공원은 충남 예산군 덕산면의 대부분 지역을 포괄한다. 산으로 한정하면 수덕사를 품고 있는 덕숭산과 남연군묘가 있는 가야산으로 나뉜다.

석문봉에서 기념촬영한 친구들

 

■가야산은

 

가야산의 대표 봉우리는 3개다. 산 아래에서 바라볼 때 왼쪽부터 가야봉(678m), 석문봉(653m), 옥양봉(621m) 순이다. 왼쪽 가야봉이나 오른쪽 옥양봉으로 올라가 능선을 타고 반대 방향 봉우리로 이동해 그곳에서 하산하는 게 일반적이다. 전형적인 부챗살 원점회귀 코스다. 드물게는 가운데 석문봉으로 직등해 옥양폭포를 지나 능선을 올라탄 후 가야봉이나 옥양봉에서 하산한다.

산행 들머리는 남연군묘 삼거리다. 주차장에서 0.5㎞ 위에 있다. 현지 안내판 지도상으로 거리를 살펴보면, 남연군묘 삼거리에서 옥양봉은 2.2㎞, 석문봉은 2.8㎞, 가야봉은 3.0㎞다. 구체적으로는 ▲남연군묘 삼거리에서 오른쪽 길로 올라가 관음전 계곡~쉬흔길바위를 거쳐 옥양봉에 오른 후 능선을 따라 남쪽의 석문봉이나 가야봉으로 향하는 코스 ▲삼거리에서 오른쪽 길로 올라가 옥양폭포를 경유해 석문봉으로 직등하는 코스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올라가 상가저수지~쉼터를 거쳐 능선에 오른 후 석문봉과 옥양봉으로 이동하는 코스로 나뉜다. 능선을 따라 3개 봉을 모두 올라가는데 5~6시간 걸린다.

가야산 지도

 

가야봉, 석문봉, 옥양봉은 예산군과 서산시 경계여서 서산에서도 오를 수 있다. 서산 쪽으로는 위 3개 봉우리와 일락산(521m), 수정봉(453m), 상왕산(307m) 등을 잇는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다. 백제시대 마애석불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서산마애삼존불상(국보제84호)을 비롯 보원사지, 개심사, 일락사 등도 가야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일락사 주차장(들머리)에서 일락산 지나 석문봉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우리 산행은

 

▲남연군묘 삼거리(들머리)~옥양봉

우리는 남연군묘 삼거리에서 오른쪽 옥양봉으로 올라가 능선을 타고 석문봉~가야봉을 거쳐 원점회귀한다. 능선 거리는 2.8㎞이고 전체 산행 거리는 8㎞다. 주차장까지 거리를 포함하면 대충 9㎞다.

오전 9시 47분 남연군묘 삼거리를 지나 옥양봉으로 향한다. 3개 코스 중 거리가 가장 짧고 순하다. 초반은 완만한 숲길이다. 임도처럼 넓다. 30분 정도 올라가니 산 중턱의 관음전으로 짐을 실어나르는 레일이 산을 향해 길게 뻗어있다. 레일 왼쪽길로 꺾어지면 옥양봉까지 0.65㎞ 남았다는 안내목이 나오는데 그때부터가 급경사다.

산 중턱 관음전으로 짐을 실어나르는 레일(왼쪽)과 급경사길

 

가파른 길을 15분 정도 올라가니 갈림길이다. 왼쪽이 등산로이고 오른쪽이 100m 들어간 곳에 있는 관음전이다. 그런데 관음전 방향을 가리키는 안내판이 없어 대부분 그냥 지나친다. 사실 안내판이 없다는 것은 딱히 추천할만한 곳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래도 호기심에 들어서니 왜 안내판이 없는지 수긍하게 된다. 낡고 허름한 슬레이트 살림집과 그 옆 작은 관음전이 어수선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관음전 바로 앞에 조망터가 있으나 위로 올라갈수록 더 멋진 조망이 있을 터이니 조망 때문에 굳이 관음전으로 갈 필요는 없다. 다만 해마다 마을 주민들이 관음전에서 산신제를 지낸다고 하니 마을 주민들로서는 나름 의미가 있는 곳이다.

경사는 위로 올라갈수록 더욱 가팔라진다. 경사와 비례해 힘이 더 들고 땀도 더 난다. 작년 7월 이맘 때 충북 영동 천태산에 올라갔을 때처럼 현기증에 가슴이 조여오는 느낌이다. 결국 선근이 뒤에서 날 케어하고 태훈이 내 배낭을 짊어진다. 조심조심 쉬엄쉬엄 올라간다.

11시, 마침내 상가리와 내포평야를 내려다볼 수 있는 첫 조망터다. 가까이는 상가저수지, 멀리는 옥계저수지 그 중간에 자리잡은 주차장까지 훤하다. 나뭇잎 사이로 저 멀리 가야봉도 눈에 들어온다. 11시 20분 또 다른 조망터인 쉬흔길바위다. 쉬흔길은 50길이라는 충청도 사투리로 ‘매우 높다’ ‘매우 깊다’는 뜻이다. 그래서 충청도에서는 매우 높고 우람한 바위를 가리켜 쉬흔길바위라고 한다. 그렇다면 약간의 거리를 두고 쉬흔길바위의 전체 위용을 바라봐야 하는데 그런 장소가 없다는 건 아쉬운 대목이다.

쉬흔길바위 조망터

 

▲옥양봉~석문봉

11시 35분 마침내 옥양봉(621m) 정상이다. 2시간 정도 걸렸다. 남쪽으로 석문봉~가야봉~원효봉 능선길이 뱀꼬리처럼 길게 늘어서 있다. 동쪽으로는 서원산(473m)과 능선이 보이고 그 뒤로 예산의 내포평야가 넓게 펼쳐있다. 내포(內浦)는 충남 예산 가야산 주변에 있는 열 고을을 칭한다. 홍주, 결성, 해미, 서산, 태안, 덕산, 예산, 신창, 면천, 당진 같은 마을이 그 내포다. 큰 바다가 내포를 만나면 뭍으로 파고들어 ‘육지 속 바다’가 된다. 그래서 ‘내포(內浦)’다. 내포평야는 특히 예산군과 당진시에 걸쳐 넓게 발달되어 있어 예당평야라고도 한다.

옥양봉 정상에서 내려다본 상가리 주변 풍경. 사진 속 저수지는 상가저수지(근거리)와 옥계저수지다. 그 너머에 내포평야가 시원하게 펼쳐있다.

 

조선의 인문지리학자 이중환은 ‘택리지’(1751년)에서 ‘충청도는 내포를 제일 좋은 곳으로 친다. 가야산을 중심으로 하여 서쪽은 큰 바다요, 북쪽은 큰 만이고, 동쪽은 큰 평야, 남쪽은 그 지맥이 이어지는 바, 가야산 둘레 10개 고을을 총칭하여 내포’라고 했다. 충청도 하면 내포지방이 중심이고, 그중 가야산을 최고로 친다는 뜻이다.

옥양봉에는 사실상 고사목이나 다름없는 소나무와 정상석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서로 의지한 채 벗삼아 마주하고 있다. 고사목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니 석문봉 가야봉 원효봉 순으로 길게 펼쳐진 배경이 멋지다. 석문봉으로 가는 능선길은 약간의 경사만 있을 뿐 전반적으로 평탄하다. 능선이라면 햇빛에 그대로 노출될 것 같지만 이곳의 흙길 능선은 사실상 숲터널이어서 그럴 일은 없다. 서해와 상가리 계곡 양쪽에서 경쟁하듯이 바람이 불어와 시원하다. 걱정했던 폭염은 기우였다.

옥양봉에서 바라본 석문봉 가야봉 원효봉(우측부터)

 

도립공원답게 안전시설과 안내판이 잘 설치되어 있다. 등산로 초입에 짓고 있는 현대식 화장실도 두 곳이나 된다. 1년 전 겨울에 올라왔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충남 공무원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그때 함께 가야산에 올랐던 선근이가 “가야산이 이렇게 멋진 산인지 몰랐다”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참고로 가야산도 ‘100대 명산’이다. 다만 ‘100대 명산’을 정한 산림청, 블랙야크, 월간산, 한국의산하 중 블랙야크와 한국의산하 만 100대 명산으로 지정했다. 석문봉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안내판이 북쪽의 일락산과 일락사를 가리키고 있다.

석문봉 정상. 그 뒤로 보이는 곳은 서산시다.

 

▲석문봉~가야봉

석문봉(658m)에 도착하니 12시 25분이다. 석문봉 바로 아래에 한 산악회가 돌을 쌓아 만든 ‘백두대간 종주기념탑’이 있다. 나름 멋은 있으나 백두대간이 아닌 곳에 왜 ‘종주기념탑’을 만들었는지 이유는 모르겠다. 석문봉 역시 사방이 시원하게 열려있다. 남쪽으로는 가야봉과 원효봉, 북쪽으로는 일락산과 옥양봉이 있다. 서쪽으로는 서산의 산수저수지를 지나 서해의 천수만이 육지 쪽으로 쑥 들어와 조성된 간월호가 길게 이어져 있다. 사자바위는 석문봉 바로 옆에 있다. 정말 사자 얼굴처럼 생긴 사자바위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가야봉 방향으로 좀더 진행한 곳에 우뚝 솟아있는 암봉에서 바라봐야 한다.

사자바위. 뒤는 석문봉이다.

 

사자바위를 지나 적당한 능선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오늘도 태훈이 바리바리 먹을 것을 싸왔다. 등산할 때 친구들의 점심과 간식과 과일을 홀로 싸오는 것이 취미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태훈의 음식 준비는 친구들 사이에 화젯거리다. 능선에는 숲과 그늘과 바람과 조망을 모두 갖춘 곳이 많다. 그래서 식사 장소도 많다.

능선길에는 소원바위와 거북바위도 있다. 1년 전 겨울에는 거북바위만 안내판이 있고 사자바위와 소원바위에는 없어 당시 산행기에서 그것을 지적했는데 그 사이 2개 바위에도 깔끔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능선길에는 이름 없는 바위도 있다. 2개 바위 사진을 찍고 나서 친구들에게 뭘 닮았느냐고 물어보니 고릴라와 뱀 아가리를 닮았다고 한다. 고릴라는 선뜻 와 닿지 않았으나 뱀 아가리는 그럴 듯 했다.

왼쪽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소원바위, 거북바위, 뱀아가리바위, 고릴라바위. 위 두 바위는 공식바위이고 아래 두 바위는 친구들이 지은 이름이다.

 

능선을 지나 데크계단을 오르니 오후 1시 35분 마침내 가야산 정상인 가야봉(678m)이다. 앞서 지나왔던 석문봉~옥양봉 능선길이 길게 이어져 있다. 능선길이 부드럽게 구불구불 이어져 있어 바라만 보아도 편안하다. 오르고 내려야 하는 낙타등이 아닌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정상석이 2개 있는데 한 정상석에 ‘가야산 금북정맥’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참고로 가야봉은 한반도 13정맥의 하나인 금북정맥의 한 봉우리다. 금북정맥은 경기도 안성시 칠장산에서 태안반도의 안흥진까지 금강의 서북쪽을 지나는 산줄기의 옛 이름이다. 길이는 약 240㎞이다. 가야산에서 금북정백이 지나가는 봉우리는 가야봉, 석문봉, 일락산이다. 옥양봉과 원효봉은 제외다.

가야봉 정상

 

▲하산

가야봉에서 들머리였던 남연군묘 방향으로 내려가는데 급경사다. 가야산 지도에도 이 구간이 가장 난코스로 표시되어 있다. 1년 전 겨울 올라왔을 때 겨울인데도 땀을 삐질삐질 흘렸던 것은 기억이 나는데 이렇게까지 급경사인지는 몰랐다. 그래도 돌계단을 잘 깔아놓아 크게 힘들지는 않다. 선두를 맡은 남수의 당초 계획은 지도상 순해 보이는 헬기장을 경유해 하산하는 것이었는데 가야봉 아래에서 갈라지는 헬기장 방향이 다시 오름길인 것을 보더니 포기하고 바로 급경사 하산길을 택한다. 천하의 남수도 이제는 편한길만 좋는다. 가야봉에서 하산길은 0.7㎞만 급경사이고 그후부터는 완만한 숲길이다.

여름산의 백미는 알탕이다. 알탕은 사전에는 없는 단어지만 팬티를 입거나 벗은 상태에서 계곡에 전신을 담가 땀을 식히는 행위를 말한다. 물론 산객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알탕을 즐긴다. 알탕을 가장 즐기는 친구는 종서다. 오늘도 종서가 알탕 장소를 찾는데 열심히더니 기어코 찾아낸다. 계곡으로 내려가 인적이 없는 상류로 올라가니 수량은 많지 않지만 적당히 땀에 젖은 몸을 씻을 수 있는 장소가 보인다. 종서 덕분에 가야산에서도 알탕을 즐겼다. 오후 3시 30분 상가저수지다. 대충 6시간 걸렸다.

가야산의 세 봉우리

 

■남연군묘와 남은들상여

 

이곳까지 왔으니 남연군묘를 들러야 하는데 모두가 시큰둥하다. 남연군묘와 나름 관련이 있는 인근 보덕사까지 가보자는 말에는 아예 입을 닫는다. 남연군묘는 오늘 산행의 끝 지점에 있다. 묘 옆에 남은들상여 보호각이 있다. 남연군은 대원군의 부친이다.

풍수를 논하지 않아도, 남연군묘 풍경은 압도적이다. 땅에서 보면 아늑하고 하늘에서 보면 웅장하다. 산줄기가 끝나는 언덕에 나무를 다 베고 묘를 썼으니, 언덕 전체가 왕릉처럼 보인다. 봉분 뒤로는 석문봉을 중심으로 가야산 줄기가 에워싸고 있고 양옆으로 ‘좌청룡 우백호’에 해당하는 산줄기가 날아갈 듯이 버티고 섰다. 봉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거대한 원형극장의 중앙무대에 선 것 같다.

남연군묘 (출처 가야산역사문화연구소)

 

남연군묘 옆에는 요즘은 쉽게 볼 수 없는 상여가 보호각에 보관되어 있다. 과거 남연군묘를 경기 연천에서 이곳으로 이장할 때 상여가 지나는 지역의 주민들이 운구를 했는데, 마지막에 상여를 운구한 남은들 마을(현재 덕산면 광천리)에 고마움의 표시로 대원군이 하사한 것이다. 이후 마을 이름을 따서 ‘남은들 상여’라고 불렀다. 1974년 국가민속문화재 제31호로 지정되었다. 2005년 12월 도난되었다가 이듬해 3월 되찾은 후 진품은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으로 보내져 보관되고 있다. 이곳 복제품은 국립고궁박물관 진품 실측과 정밀 실측 보고서를 근거로 2012년 전흥수 대목장(중요무형문화재 74호)이 제작한 것이다.

문제는 복제품인데도 사방이 막혀있고 자물쇠로 잠가놓은 보호각 안에 보관해 상여를 제대로 살펴볼 수 없다는 것이다. 창문 틈 사이로 사진을 찍어도 상여 전체가 나오지 않아 답답하다. 과도한 행정의 표본으로 보인다.

남은들상여 (출처 예산군청)

 

남연군묘와 남은들상여 그리고 가야사터에 대해서는 아래 산행기에 자세히 소개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 가야산 겨울 산행기(가야봉~석문봉)를 보려면 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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