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박스

저작권 만료(2024년)되는 ‘미키마우스’의 탄생 과정과 산파였던 월트 디즈니의 삶

↑ ‘증기선 윌리’ 개봉(1928년) 당시 포스터와 월트 디즈니

 

by 김지지

 

미국 디즈니가 벌어들이는 수익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캐릭터는 ‘미키마우스’다. 문제는 미국 저작권법이 인정한 미키마우스 저작권이 2024년 만료된다는 것이다. 미키마우스가 1928년 첫 유성 애니메이션 단편 ‘증기선 윌리’로 세상에 탄생했을 때 미국 저작권법이 인정하는 출판 저작물의 저작권은 56년이었다. 그런데 1976년 미 의회가 법을 개정해 미키마우스의 저작권을 75년으로 연장했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1998년에는 미키마우스의 저작권 보호 기간을 최대 95년으로 늘린 이른바 ‘미키마우스법’(정식 명칭은 ‘소니 보노 저작권 기간 연장법’)을 통과시켜 저작권을 2023년으로 연장했다. 미 의회가 또 다시 법을 개정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키마우스의 탄생과정과 산파인 월트 디즈니의 일생을 살펴본다.

 

캐릭터 산업이라는 새로운 사업 영역의 개척자

월트 디즈니(1901~1966)는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혁신적인 변화를 주도하고 이를 문화 상품과 작품으로 승화시킨 ‘애니메이션의 대명사’다. 연출자, 제작자, 사업가였으며 캐릭터 산업이라는 새로운 사업 영역의 개척자였다.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백설공주), 최초의 유성 애니메이션(증기선 윌리), 최고의 인기 캐릭터(미키마우스, 도널드 덕, 구피, 플루토 등)로 시대를 풍미했다.

디즈니는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고교 시절에는 학원에서 펜화와 풍자화를 배우고 학교 신문의 미술기자로 활동했다. 1920년 입사한 광고회사의 도안사로 활동하면서 애니메이션의 세계에 눈을 뜨고 평생의 친구이자 동지가 될 어브 아이웍스를 만났다. 1922년 5월 아이웍스와 함께 ‘래프 오 그램’이라는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지역 극장에서 상영할 1~2분짜리 만화 상업광고를 제작했으나 파산하는 바람에 1923년 8월 할리우드로 활동지를 옮겼다. 그곳에는 형 로이 디즈니가 있고 메이저 영화사가 즐비했다.

디즈니 형제는 1923년 10월 할리우드 최초의 여성 배급자인 마거릿 윈클러를 만나 ‘앨리스와 만화왕국’ 시리즈를 제작하기로 계약을 체결하고 그해 10월 16일,  ‘디즈니 브러더스 스튜디오’를 설립한 뒤 아이웍스를 끌어들였다. 형제가 제작한 실사와 애니메이션이 혼합된 7분짜리 ‘앨리스와 만화왕국’은 1924년 3월 워너브러더스 배급망을 통해 미국의 몇몇 극장에서 개봉했다. 하지만 제작비를 건지지 못해 재정적으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월트 디즈니는 파산 신고를 할 정도로 궁지에 몰렸다.

그러자 윈클러의 남편인 찰스 민츠가 새로운 주인공을 개발하도록 권유하고 디즈니에게 유니버설 영화사를 소개해주었다. 당시 유니버설은 경쟁사인 패러마운트가 최고의 인기 캐릭터인 ‘고양이 펠릭스’로 흥행에 성공하자 이에 필적할 캐릭터와 애니메이션을 찾고 있었다. 디즈니는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섞어놓은 당시의 만화영화 패턴과 달리 ‘토끼 오즈월드’를 100% 순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다. 오즈월드 캐릭터는 1927년 ‘토끼 오즈월드’의 첫 시리즈인 ‘전차 사건’이 공개된 후 서서히 인기를 끌어모았다. 성공이 눈앞에 보였으나 1928년 2월 찰스 민츠에게 ‘토끼 오즈월드’의 소유권을 빼앗기는 쓰라린 경험을 맛보았다.

디즈니는 심기일전해 한 편의 짧은 시나리오를 썼다. 제목은 당시 미국의 영웅이던 찰스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 비행 성공에서 모티브를 얻어 ‘미친 비행기’로 정했다. 주인공은 쥐였다. 디즈니는 시나리오를 아이웍스에게 보여주었고 아이웍스는 둥근 눈에 길게 늘어진 귀를 가진 귀여운 모습의 생쥐로 이미지화했다. 처음 정한 쥐의 캐릭터 이름은 모티머였으나 몇 차례의 회의를 거쳐 ‘미키마우스’로 바꿨다. 진정한 의미의 세계 최초 애니메이션 ‘미키마우스’가 탄생한 것이다.

월트 디즈니

 

미키마우스가 등장한 최초의 유성 애니메이션 영화는 1928년 ‘증기선 윌리’

미키마우스의 데뷔작은 당초 구상 대로 ‘미친 비행기’였다. 두 번째 작품 ‘갤러핀 가우초’도 만들었지만 두 애니메이션 모두 시사용으로만 공개했을 뿐 제작자의 배급 거부로 개봉되지 못했다. 두 번의 실패를 경험한 디즈니는 당시 최고의 코미디언인 버스터 키턴의 인기 영화 ‘증기선 빌’의 인기에 편승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1년 전 최초의 유성(토키) 영화 ‘재즈 싱어’가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사실을 떠올리며 미키마우스에 소리를 입혔다. 그림에 단순히 소리를 입히는 수준이 아니라 그림과 소리가 동시에 움직이도록 정교하게 제작했다.

미키마우스가 등장하는 최초의 유성 애니메이션 영화 ‘증기선 윌리’는 1928년 11월 18일 뉴욕 콜로니 극장에서 개봉했다. 디즈니가 제작과 각본을 맡고 아이웍스가 감독한 7분짜리 ‘증기선 윌리’에서 귀여운 생쥐 한 마리가 휘파람을 불고 염소를 손풍금처럼 연주하고 빨래판, 냄비, 프라이팬, 고양이, 오리, 하마의 이빨 등을 이용한 배경음악이 연주되자 관객도 덩달아 휘파람을 불며 환호했다. ‘증기선 윌리’는 영화 ‘갱들의 전쟁’의 상영에 앞서 오프닝 프로그램으로 선보였으나 본 영화보다 더 큰 인기를 끌었다. 미키마우스는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었다. 이후 100편도 넘는 만화영화에 등장하며 ‘만화의 찰리 채플린’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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