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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봉화산(烽火山)은 남녀노소 모두 오를 수 있는 유순한 山… 문배마을과 구곡폭포는 보~너스

↑ 폭포수가 꽝꽝 얼어붙어 빙폭으로 변한 구곡폭포

 

by 김지지

 

2021년 1월 고교산악회의 새해 첫 산행지는 경춘선 강촌역에서 멀지 않은 강원 춘천의 봉화산이다. 2021년 1월 16일 산행에는 철호(회장), 남수(대장), 상호(사무총장)를 비롯 성철 부부, 건, 익환, 상록, 태훈, 정형 이렇게 10인이 참석했다.

 

■봉화산은 이런 山

 

경춘선 강변역에서 내려 쉽게 오를 수 있어

봉화산은 경춘선 강촌역에서 지척이다. 해서 검봉산, 삼악산 등과 함께 강촌역에서 내려 쉽게 오를 수 있다. 봉화산과 검봉산은 능선이 이어져 있어 두 산을 한꺼번에 오르는 등산객도 많다. 다만 봉화산보다는 검봉산이 더 인기가 있는 듯 인터넷에서는 검봉산 기행이 더 많이 눈에 띈다.

높이는 봉화산이 526m, 검봉산이 530m다. 봉화산이든 검봉산이든 전국에 같은 이름의 산이 많다. 다만 높지는 않아서 전반적으로 둘레길 수준이다. 봉화산은 강원도에만 춘천, 원주, 양구에 있고 전북 익산, 전남 순천, 경남 고령에도 있다. 검봉산은 강원 춘천과 삼척 그리고 충남 보령에 같은 이름이 있다.

이번에 봉화산에 올라보니 봉화산과 검봉산 주능선 가운데로 또 다른 능선이 같은 방향으로 흘러 계곡을 만든 뒤 북한강으로 흐른다. ‘E자’ 형태인데 오른쪽 끝부분이 E자와 달리 좁아진다는 차이가 있다. 봉화산과 검봉산 사이에는 문배마을과 구곡폭포도 있어 등산객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검봉산행의 주요 코스는 약 7km에 3시간 30분~4시간 정도 걸린다. 봉화산까지 연계한다면 약 12km의 거리에 5시간 이상 소요된다.

봉화산 등산로 안내도

 

■우리의 봉화산행

 

겨울산행은 출발 전에는 귀찮아도 친구들을 만나면 엔돌핀 생겨나는 묘한 매력 있어

오전 9시 40분, 서울에서 경춘선을 타고 강촌역에 내렸을 때 우리를 반긴 것은 강촌역에서 바라보이는 삼악산과 우리가 곧 오르게 될 봉화산 만이 아니었다. 영하 10도의 날씨인데도 큰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박영민도 우리를 반겼다. 영민은 무릎이 좋지 않아 함께 산에는 오르지 못하지만 늘 그래왔듯 따듯한 차를 가지고 와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온기까지 전해지는 듯 했다. 겨울산행은 기온 때문에 출발하기 전까지는 귀찮아도 막상 친구들을 만나면 갑자기 엔돌핀이 생겨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우리는 강촌역 동쪽 도로변 등산기점을 들머리로 삼았다. 월 1회 있을 우리의 산행이 내내 무탈하게 진행되기를 기원하면서 코스를 이끌어줄 남수 대장을 따라 나섰다. 대열의 맨 뒤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올라가는데 영민의 빈자리가 새삼 크게 느껴졌다. 영민이 평소 산행시 앞뒤를 오가면서 사진을 찍고 간식을 나눠주었기 때문이다.

남수 대장이 “산행 초반에만 급경사이고 그 뒤로는 경사가 완만하다”며 산행을 독려한다. 남수 말 대로 등산기점에서 196m봉 오르막길이 다소 힘든 건 맞는데 막판에 또다시 경사가 높아져 남수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것을 확인했다. 박건은 가도가도 경사가 급하다며 투덜거린다. 학창 시절 투스 마운드에 올라 강속구를 내리꽃던 천하의 박건도 세월 앞에선 어쩔 수 없나보다.

내 체력을 기준하면 이날 코스의 난도는 둘레길보다 약간 높은 정도다. 땀도 흘리지 않고 숨도 차지 않는다. 내가 대열 후미를 맡아 천천히 걸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산세가 유순하다. 초반과 후반을 빼고는 능선길 대부분이 완만해 유유자적 걷는데 최적의 길이다. 지금은 한겨울이라 나뭇가지는 앙상하고 산세는 황량하지만 나뭇잎이 무성한 계절이라면 걷는 맛이 쏠쏠할 것이다.

1월과 2월 산행은, 산에 눈이 없다면 1년 중 가장 재미없는 산행이지만 좋은 점도 있다. 숲에 가려 보이지 않던 주변의 산악 지형들이 잘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산행지 대부분이 그러하듯 봉화산의 거리표시 안내판도 위치에 따라 달리 표시되어 있어 답답하다. 그나마 국립공원 산이 낫긴 하나 국립공원도 잘못된 거리표시가 적지 않다.

봉화산 정상을 향해 오르는 친구들

 

쉴멍놀멍 올라가니 정상까지 2시간 40분 걸려

강촌역에서 봉화산 정상까지는 4.6㎞다. 10시 10분 강촌역을 출발해 정상에 오른 시간이 12시 50분이니 2시간 40분이 걸렸다. 주말 등산객 기준 2시간 정도면 오를 수 있는 거리가 2시간 40분이나 걸렸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쉴멍놀멍 올라갔다는 것을 설명한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산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만족스러운 시간이다.

산행 중 두런두런 얘기하다보니 작년에 이어 올해도 직장 생활을 끝내는 친구들이 있음을 알게되었다. 오늘 산행을 함께 한 친구 중 성철이는 작년 말에, 상록과 건이는 올해를 끝으로 자유인이 된다. 삼십 몇 년간 조직 생활을 하다가 떠난다니 아쉬움과 기쁨이 교차할 것이다. 1992년 북한 김정일이 북조선 인민군에게 했던 말을 건네주고 싶다. “앞날에 영광 있으라!”

봉화산 정상에서 바라본 검봉산(가운데)과 강선봉(우측). 왼쪽은 문배마을

 

정상에 서니 저 멀리 검봉산과 강선봉이 희미하게 보인다. 그 오른쪽으로는 삼악산이 우리를 향해 손짓하는데 미세먼지 때문에 선명치 않다. 왼쪽에는 우리가 곧 내려갈 문배마을이 산 속에 자리잡고 있다. 봉화산의 한자가 ‘烽火山’이니 당연히 봉화대가 있어야 하는데 봉화를 연상시킬만한 흔적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 성철 마나님이 실망하는 눈치다. 봉화산 정상에서 검봉산 정상까지는 능선길로 4.7㎞다. 검봉산에서 강선봉을 지나 하산할 수도 있고 우리가 하산하는 곳에 있는 문배마을로도 내려갈 수 있다.

봉화산 정상에서 카톡을 확인하니 강원도, 서울, 경기도에서 산에 오른 친구들의 사진이 속속 올라온다. 정구승이 마나님과 함께 원주 봉화산에 올랐다며 단톡에 사진을 올렸는데 둘의 다정한 모습이 활활 타오르는 봉화처럼 느껴졌다. 박창민 홍창화 정규철 임종근도 관악산 날다람쥐답게 관악산 등정 사진을 올렸다. 김석범은 경기도 평택시 청북읍 무성산 둘레길을 7㎞ 걸었다며 사진을 올렸는데 무성산의 높이가 산이라고 하기에는 민망스러울 정도로 낮은 114m여서 옐로우카드를 주고 싶다. 주말이면 전국을 주유하는 ‘한삿갓’ 한진수도 어느곳에선가 봉화산을 향해 봉화를 피울 것 같았다. 결정적으로는 코로나 때문이지만 우리의 산행지가 이렇데 뿔뿔이 찢어지니 아쉬움이 크다.

봉화산에서 문배마을까지는 2.2㎞이지만 1㎞만 내려가면 임도와 연결되므로 나머지 1㎞ 정도는 임도를 걷는 평지길이다. 임도에서 문배마을 반대 방향으로 내려가면 구곡폭포 주차장까지 1.6㎞다.

봉화산 정상

 

■문배마을

 

고개에서 내려다보면 움푹 팬 그릇에 담긴 분지 형세

임도를 따라 마지막 고개를 넘어서자 해발 400m에 위치한 문배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문배마을 한가운데로 들어가니 이용화가 기다린다. 사정상 함께 산에 오르지는 못했으나 반가운 얼굴들을 보기 위함이다.

안내판 설명에 따르면 문배마을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예전에 많았던 문배나무에서 이름이 붙여졌다. 문배는 돌배보다는 조금 크고 일반 배보다는 작고 맛은 달착지근하다고 한다. 고개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움푹 팬 그릇에 담긴 분지 형세다. 넓이가 2만여평이라는데 산 속에 이런 분지가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필시 화전민 마을이었을 이곳은 워낙에 오지여서 6·25전쟁 때 남침한 인민군들도 마을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는 얘기가 있지만 포탄에 부상했다는 주민의 증언도 있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외부와 동떨어진 산속 마을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문배마을은 유학자이자 구한말 의병장이었던 이소응의 문집에 수록된 한시에도 등장한다. “계곡물 따라 끝까지 가보면(逐流到窮源)/ 마을이 평지에 펼쳐진다(有村開平疇)/ 샘물은 달고 토지는 비옥하며(泉甘而土肥)/ 산은 거룻배처럼 둥글게 둘러쳤다(山環似巨舟)/”는 내용이다. 그는 산이 거룻배(돛이 없는 작은 배)처럼 둥글게 둘러쳐진 곳에 마을이 펼쳐있다고 노래했다.

문배마을 안내도

 

딱히 볼거리는 없지만 오지의 정취를 느끼기 위해 한겨울에도 주말이면 수백명씩 다녀가

이곳은 원래 몇몇 초가집만 있던 마을이었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등산객을 상대로 두부나 산채비빔밥 같은 음식을 팔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외지인들도 들어와 식당을 차리고 영업하고 있다. 그렇게 모인 가구가 10가구 정도다. 신기한 것은 집집마다 일반적인 상호 대신 장씨네, 신씨네, 김가네, 이씨네, 한씨네 등을 상호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문배집, 통나무집, 촌집 같은 상호가 있긴 하다. 마을 전체가 비슷한 차림상으로 식당을 하니 굳이 특별한 상호를 짓기보다는 부르기 편한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다만 상호 간판이나 현수막 등이 멀리서도 잘 보이라고 대형에 형형색색이어서 눈에 거슬린다. 산속 오지이니 좀더 고풍스럽고 세련되고 작은 간판으로 바꿔달았으면 좋을 것 같다. 가게들을 안내하는 지도를 지금보다 조금 더 상세하게 만들어 마을 요소에 세워두면 알아서 찾아갈 것이다. ‘00씨(氏)’ 혹은 ‘00가(家)’ 하면 일반적으로 ‘00家’가 더 높임말로 느껴지는데 익환이가 자신의 강원도 고향에서는 ‘00氏’는 남을 올려서 부르는 호칭이고 ‘00家’는 남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낮춰 부르는 호칭이라고 귀띰한다.

사실 문배마을에는 딱히 볼거리가 없다. 음식점에서 허기를 달래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내려가는 게 전부인데도 정취를 느끼려고 한겨울에도 주말이면 수백명씩 다녀간다고 한다. 산속 오지라는 지형적 특성 말고 마을 자체에 볼거리가 없어서인지 인공호수를 새로 조성했다. 저 아래 구곡폭포의 수원지 역할을 하는 생태연못이다. 서울의 석촌호수보다는 작은 생태연못 주변에는 잘 꾸며놓은 산책로도 있다. 봄에는 벚꽃이 만발한다.

문배마을 생태연못

 

■구곡폭포

 

겨울이면 폭포수가 꽝꽝 얼어붙은 빙폭으로 변해 빙벽 등반가들을 유혹

문배마을은 구곡폭포를 거쳐 주차장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그 길을 따라 내려갔지만 이 글에서는 주차장에서 출발해 봉화산으로 올라가는 등산객이나 구곡폭포~문배마을로 올라가는 관광객을 위해 역순으로 코스를 소개한다.

주차장은 내비게이션에서 ‘구곡폭포 주차장’을 검색하거나 강촌역에서 버스를 타고 서너개 정거장을 10분 정도 지나면 접근할 수 있다. 강촌역에서 내려 타박타박 걸어도 주차장(구곡폭포 관광지 입구)까지 30~40분이면 닿는다. 강원 춘천시 남산면 강촌리에 조성된 주차장에는 입장료를 내는 매표소가 두 곳 있다. 봉화산행 매표소와 구곡폭포행 매표소다. 봉화산행 길은 문배마을로 바로 이어지고, 구곡폭포 길은 구곡폭포를 거쳐 문배마을로 연결된다. 주차장에서 검봉산으로도 올라갈 수 있다. 봉화산행 길은 문배마을을 지나 우리가 봉화산에서 내려왔을 때 만났던 임도로 연결된다.

봉화산, 구곡폭포, 문배마을, 검봉산 안내도

 

주차장에서 구곡폭포까지는 20여 분간 호젓하고 평탄한 산책로가 이어진다. 폭포로 가는 길에는 ‘끼, 꾀, 깡’ 등 9개의 글귀를 테마로 한 이정표가 있어 산책의 재미를 더해준다. 길 왼편으로 기암절벽들이 병풍을 이루고, 수목들은 하늘로 곧게 뻗어있다. 구곡폭포에서 내려온 계곡물은 하얗게 얼어있다. 산책로를 따라 1㎞ 정도 걸어가면 구곡폭포가 보이는 삼거리다. 왼쪽 길은 구곡폭포로, 오른쪽 길은 문배마을로 이어진다.

구곡폭포는 산꼭대기에서 흘러내린 물이 아홉 번을 굽이돌다 계곡으로 떨어진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하늘벽 바위와 짙은 숲이 어우러져 절경을 자랑한다. 높이는 50m다. 특히 겨울이면 폭포수가 꽝꽝 얼어붙은 빙폭으로 변해 빙벽 등반가들을 유혹하지만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빙벽 등반이 금지되었다. 다행히 폭포 앞 계단을 오르면 거대한 얼음 절벽을 코앞에서 감상하는 전망대가 있어 겨울 빙벽을 감상할 수 있다. 우리나라 폭포 대부분은 수량이 풍부하지 않다. 그래서 물이 얼고 얼어 거대한 빙폭을 만드는 겨울이 차라리 좋을 수도 있다.

문배마을로 가려면 조금전 삼거리에서 20분 정도 걸리는 0.5㎞ 거리의 가파른 깔딱고개를 넘어가야 한다. 고개에는 야자매트가 깔려있고 계곡 쪽으로 소나무, 잣나무, 낙엽수 등이 빼곡이 들어서 있다. 몸에 땀이 살짝 날 무렵 깔딱고개에 올라서는데 직진하면 0.3㎞ 거리에 문배마을이 자리잡고 있고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1.9㎞ 거리의 검봉산으로 이어진다.

봉화산 산행 중 쉼터에서 쉬고 있는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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