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박스

[인천농민 신형준의 ‘세상 바투보기’] ‘아이’보다는 ‘아해’라는 표현을 고집하는 이유

↑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

 

‘아해’라는 표현은 최소한 11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나이가 어린 사람을 ‘아이’라고 합니다. 한데 저는 ‘아해’라는 표현을 고집합니다. 잘 아시듯, 아해는 아이의 옛 말입니다. 아해라는 표현이 말하거나 들을 때 정감이 있고 편해서이기도 하지만, 말에서 느껴지는 역사성을 내가 굳이 버릴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종종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 민족의 원류는 청동기시대부터였다는데(‘민족’에 대한 정교한 의미를 따지는 논쟁을 여기서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 지금 우리가 쓰는 말과, 당시의 말은 얼마나 같고 달랐을까?

아쉽게도, 우리 말을 기록한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한글 창제 이전에 우리 말을 기록한 것은 한자로 음역한 것이 극히 일부 남았을 뿐입니다. 그중 하나가 ‘아해’입니다. 그리고 ‘아해’라는 표현은 최소한 11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신라 말기 승려 낭혜화상 무염(無染· 801~888년)을 기리기 위해 왕명을 받아 최치원이 쓴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890년 작성 추정)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대사는 아해 때에도 반드시 합장과 가부좌를 했다. 그런데 ‘아해(阿孩)’는 신라 말로 어린아이를 말하며, 중국 말과 다르지 않다(阿孩 方言謂兒 與華無異). 이제는 ‘아이’에 밀려 고어가 돼버린 ‘아해’라는 말을 최소한 9세기 말 신라에서는 쓰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기록입니다. ‘아해’라는 순우리말의 가장 오래된 용례가 낭혜화상탑비에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 자료를 읽으면서 저는 요즘 표준말인 아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최소한 1200년 가까이 지속돼온 우리 말을 제가 왜 버려야 하는지요.

 

‘허락’을 뜻하는 “에” 발음, 신라 때도 있어

낭혜화상탑비에는 당시 신라말이 하나 더 기록돼 있습니다. 낭혜화상께서 어린 나이에 승려가 될 것을 어머니께 말하자, 어머니가 울면서 허락하는 장면을 최치원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울면서 “예”라고 했다. 그런데 ‘예’는 신라 말로 허락을 뜻한다(泣曰’䚷‘ 方言許諾).

한자 자전에는 ‘䚷’의 발음으로 ‘(그러할) 예’와 ‘(진실할 말) 혜’가 제시돼 있습니다. 서기 9세기 말 신라인들이 요즘처럼 허락을 뜻할 때 ‘예’라고 말했을지, ‘혜’라고 말했을지, 아니면 ‘해도 돼!’라는 의미의 ‘해’로 발음했을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어찌 됐든 요즘 한국어와 비슷한 발음으로 ‘허락’을 나타낸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저의 과문 탓이겠지만, ‘예’라는 허락을 뜻하는 ‘말’이 최치원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이 문장을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신라인이 자신들이 이룬 ‘통일’을 어찌 생각했는지를 알기 위해 신라 몰락 이전까지 신라인은 물론 고구려인과 백제인들이 남긴 모든 우리의 옛 기록을 전수조사하면서, 이런 부수적인 사실을 알게 됐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혹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 고려 시대 이후의 기록 말고, 신라와 발해 이전 시대의 기록 중에 등장하는 순 우리말 중 명확하게 뜻이 파악되는 것을 더 아시는 분이 있다면, 여기에 출전과 용례를 알려주시옵기를…. 미리 고개 조아려 감사 올립니다.

 

<추신>

이 글에 언급된 낭혜화상탑비의 판독문과 번역문은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을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바투보기’는
‘가까이에서 정밀하게 바라본다’는 뜻이다. 고유어 ‘바투'(두 대상이나 물체의 사이가 썩 가깝게)와 ‘보기’를 합친 필자의 造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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