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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농민 신형준의 ‘세상 바투보기’] 재수 권하는 사회

↑ 재수학원 모습 (출처 솜마투스 학원)

 

입시만큼, 사회 방향을 알려주는 지표는 없어

입시와 관련한 뉴스를 잘 살펴보는 편입니다. 입시만큼, 한 사회의 방향을 알려주는 지표는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대학과 학과 커트라인은 20~30년 뒤 그 사회를 이끌 인재가 어디로 나아가는지, 하여 그 사회의 발전이 어느 쪽으로 이뤄질지 알려줍니다.

현재 삼성을 있게 한 것은 누가 뭐래도 1970년대와 80년대에 서울대 물리학과나 전자공학과 등을 갔던 우수한 인재들 덕분일 것이라고 봅니다. 그때 서울대 자연계열에서 가장 커트라인이 높았던 학과였지요. 지금이야 대학을 가릴 것 없이, 의대가 가장 높게 됐지만. 제가 삼성의 미래, 아니 대한민국 공학 분야의 미래를 그리 좋게 보지 않는 것도 이런 까닭이고요.

대입 수능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2021학년도 수능 결과를 분석한 자료를 지난해 12월 중순에 냈습니다. 그래서 찬찬히 자료를 살피니 예상대로 2021학년도 수능에서 재수생 비율이 늘었네요. 예년에는 20%대 초반이었는데, 올해는 26%를 넘었습니다. 강의실에 굳이 안 가도 되는 비대면 수업이 이뤄졌으니, 재수하기가 쉬웠겠지요. 수능 최상위 등급에서도 재수생 성적이 압도적인 것은 예년과 다를 바 없고요. 하긴, 같은 내용을 한 번 더 공부한 친구들이니 유리할 수밖에요.

예를 들지요. 1등급 비율은 4%로 한정돼 있습니다. 그런데, 국어 같은 경우, 재학생은 전체 재학생 중 3.4%만이 1등급을 맞은 데 반해 재수생은 전체 재수생 중 8.7%가 1등급을 맞았습니다. 이과 수학에 해당하는 수학 가형에서 재학생은 3.4%, 재수생은 9.6%가 1등급입니다. 문과 수학인 수학 나형은 재학생 3.5% 재수생 10.4%입니다. 아무리 입사 과정에서 ‘블라인드’ 채용을 한다 한들, 대한민국 사회에서 ‘학벌’이 주는 의미가 퇴색될까요. 이러니 재수는 ‘미래를 위한 투자’ 소리를 듣는 게 아닐지요.

 

정시 확대하면 지역 간 대입 격차 더 벌어질 것

제 아해가 대입을 준비하던 2014년, 입시학원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서울 강남지역은 고교졸업자 중 재수생 비율이 70% 대라고. 반면 지방은 20%도 안 된다고. 재수를 지원할 경제적 여력이 안 되니 이런 차이가 벌어졌겠지요.

해법은 과연 뭘까요? 적지 않은 분들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따님 입시’를 지켜보면서, ‘정시 확대’ 혹은 ‘정시 100%’를 주장하시지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정시를 확대하면 할수록 지역 간 대입 격차는 더 벌어질 것입니다. 수능에서 ‘질 높은 사교육’으로 무장한 학생을 당해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조국 사태’를 재현할 수도 있는 ‘학종 폐지’를 외치고, 고교 내신만으로 입학하는 ‘학생부 교과’ 비율 확대를 외치는 것은 그런 까닭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서울과 여타 지역의 차이를 좁힐 수 있는 방법이 나올 것 같지가 않습니다.

고백하자면, 제 아해는 고교를 1학년 때 자퇴하고 대입 학원에서 공부했습니다. 내신 때문에 막말로 좋은 대학 가기는 글렀기에, 수능 성적 올리는 데는 학원에서 ‘정시 몰빵’을 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방식이 절대로 권장할만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찌 됐든, 그 과정에서 왜 서울 강남지역의 재수생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지 알았습니다.

대한민국은 ‘재수 권하는 사회’입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자료를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바투보기’는
‘가까이에서 정밀하게 바라본다’는 뜻이다. 고유어 ‘바투'(두 대상이나 물체의 사이가 썩 가깝게)와 ‘보기’를 합친 필자의 造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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