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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농민 신형준의 ‘세상 바투보기’] 수긍하기 힘든 맞춤법과 띄어쓰기 정책

↑ 국립국어원 사이트 캡쳐

 

원래 표기는 ‘미류(美柳)나무’… 지금은 많은 이들이 발음한다는 이유로 ‘미루나무’

“미류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이 걸려 있네, 봄 바람이 몰고 와서 걸쳐 놓고 도망갔대요.” 초등학교(저는 여전히 ‘초등학교’보다는 ‘국민학교’라는 표현이 친근합니다.) 3학년 때인가, 음악 시간에 배운 노래입니다.

여기서 질문 하나. 제가 쓴 노래 가사에서 틀린 부분이 있습니다. 뭘까요? 우선, 미류나무는 미루나무로 써야 하며, ‘봄 바람’은 ‘봄바람’으로 붙여써야 합니다. 잘 아시듯, 미루나무는 40년 전만 해도 미류(美柳)나무라는 표기가 맞았습니다. 버드나무(柳)의 한 종류이니까요.

한데 많은 이들이 ‘미류’를 ‘미루’로 발음한다는 이유로, 미루나무를 옳은 표기로 바꿨습니다. 우리 어문 규정을 관장하는 국립국어원이요. 삭월세(朔月貰)를 사글세로 바꾼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봄바람’은 명확히 한 단어로써 쓰이니, 봄과 바람을 띄어 쓰면 안 된답니다. 국립국어원 규정에 따르면요.

하긴 말이나 글이라는 게 언중(言衆)의 언어 사용 문화를 궁극적으로는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니 일단은 받아들이겠습니다. ‘바랄’보다 ‘바다’를 언중 다수가 사용하면 바다로 쓰는 게 당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중의 언어 사용 방식’ 중 어느 단어가, 혹은 어느 표현이 다수인지 소수인지는 과연 정확히 따져보고 정한 것인가요? 예를 들어, 짜장면과 자장면은 복수 표준어입니다. 하지만 압도적으로 많은 이들이 ‘짜장면’을 사용합니다. 수십년 전부터요. 그럼에도, 자장면은 ‘복수 표준어’로 살아남았습니다. 왜 삭월세는 죽고, 자장면은 살아 남았을까요? 도대체 기준이 뭐였을까요?

 

국립국어원의 어문규정, ‘엿장수 마음대로’ 푸념 나올만 해

띄어쓰기 규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문 하나. 띄어쓰기가 맞나요, 띄어 쓰기가 맞나요? 예, 전자가 맞습니다. 띄어쓰기는 명확히 한 단어로 보니, 띄어쓰기라고 적어야 합니다. 그럼 ‘띄어쓰다’가 맞나요, ‘띄어 쓰다’가 맞나요? 띄어쓰기라고 적었으니 띄어쓰다라고 해야겠죠? 땡! 띄어 쓰다로 적어야 합니다. 이 경우는, 띄다와 쓰다라는 동사를 ‘단순히 합친 표현’이기 때문에 띄어 쓰다라고 해야 한답니다.

‘님’도 복잡하기만 합니다. 의존명사로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이니, 띄어쓰기를 해야 합니다. ‘홍길동 님’이라고 적어야지, ‘홍길동님’이라고 하면 틀린 것입니다. 그래서, 사장이나 과장을 높여 부를 때 ‘사장 님’ ‘과장 님’이라고 적어야 합니다.

그럼 남의 부인을 높여 부를 때도 ‘사모 님’이라고 적어야겠지요? 아닙니다. 이 경우는 ‘사모님’입니다. ‘사모님’은 한 단어로 보는 것입니다. 그럼 왜 ‘사장님’은 한 단어로 안 보나요? 요즘은 그 사람을 잘 모르면 대뜸 ‘사장님’이라고 ‘한 단어’로 부르는데! 왜 ‘사장님’은 안 되고 ‘사모님’은 되나요? ‘지난여름’ ‘지난해’는 돼도, ‘지난시간’은 안 됩니다. ‘지난 시간’입니다. 이쯤 되면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푸념이 나올만 하지 않나요? 삼류였지만, 20년 간 기자를 한 탓에,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가능하면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여전한 ‘직업병’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국립국어원의 어문규정을 보면 답답한 경우가 정말로 많습니다. ‘음모론적 발상’인지 모르지만, 그런 어문규정을 지키는 일을 하는 것으로 국립국어원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조차 합니다. 말과 글이 100% 통한다면,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는 이제 ‘놓아주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복수 표준어’를 늘리고, 띄어쓰기 역시 문맥이 명확히 통한다면 어문규정이랍시고 틀렸다, 맞다라고 이야기 말았으면 합니다.

저는 여전히 ‘미류나무 꼭대기에’로 노래를 시작하지 ‘미루나무 꼭대기에’로 노래를 시작하지 않습니다. 사장님은 틀리고, 사모님이 맞는 이유를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지난해나 지난여름은 맞고 ‘지난시간’이 틀린 이유도 그렇고요.

 

※‘바투보기’는
‘가까이에서 정밀하게 바라본다’는 뜻이다. 고유어 ‘바투'(두 대상이나 물체의 사이가 썩 가깝게)와 ‘보기’를 합친 필자의 造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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