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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바우길 제3구간] ‘어명을 받은 소나무길’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명품숲길… 오솔길을 걸으며 금강소나무와 대화해보세요

↑ 어명정(御命亭)

 

☞ 클릭! 강릉바우길 제1구간(선자령 풍차길)

☞ 클릭! 강릉바우길 제2구간(대관령옛길)

 

 

by 김정형

 

☞ 종주 거리 11.7㎞  

☞ 4~5시간

 

■‘어명을 받은 소나무길’ 탐방 재촉한 ‘강릉시 콘텐츠 공모전’

개인적으로 2020년 한 해는 강릉바우길과 인연이 깊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강릉바우길 제1구간(선자령 풍차길)은 1월과 2월, 제2구간(대관령옛길)은 8월, 제3구간(어명을 받은 소나무길)은 10월에 다녀왔으니 1년 동안 네 번이나 만난 셈이다. 세 번은 아내가, 나머지 한 번은 고교 동창들이 동행했다.

2020년 8월 대관령옛길(제2구간)을 다녀왔을 때 탐방 중 알게된 ‘어명을 받은 소나무길’(제3구간)이라는 이름이 독특해 호기심이 발동했다. 언젠가 다녀올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2020 강릉시 SNS 콘텐츠 공모전’ 안내문이 떴다. 동영상, 포스터, 블로그 3개 부문에서 ‘강릉시 내 나만 아는 미래의 핫플레이스를 소개하는 콘텐츠’를 공모한다는 것이다.

‘밑져야 본전’ 아니 ‘밑져야 건강 챙기기’라는 생각에 제3구간을 다녀와 블로그 부문에 응모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마감일이 10월 15일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고 마음이 급해졌다. 11월 초까지 산행 일정이 꽉 찼기 때문인데 고심 끝에 한글날(2020년 10월 9일)에 잡혀있던 다른 일정을 포기하고 이날을 탐방일로 잡았다. 더구나 다음날(10일) 빡센 일정인 북한산 숨은벽~영봉 산행이 예정되어 있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런데 응모 신청서를 이메일로 보내기 위해 마감일(15일)에 강릉시에 문의 전화를 거니 마감일이 10월 말로 연기되었단다. 원고를 털어버리려 했는데 또 손을 봐야 했다.

올림픽 아리바우길 7코스 지도. 강릉바우길 제3구간(어명을 받은 소나무길)과 이름만 다를 뿐 코스는 같다.

 

 

■떠나기 전 알아두자

▲공식 출발지는 에른스트국제학교

강릉바우길 제3구간은 강릉시 성산면 내 에른스트국제학교에서 명주군왕릉까지 11.7㎞의 산길과 임도를 걷는 길이다. ‘어명을 받은 소나무길’이라는 이름부터가 매력적이다. ‘어명(御命)’이라는 다소 독특한 이름이 붙여진 것은 이 구간에서 자라던 몇 그루의 아름드리 소나무를 2007년 11월 “어명이오!”라고 외치고 나서 광화문 복원을 위해 베어냈기 때문이다.

떠나기 전, 탐방에 도움이 될만한 관련 기사를 찾아보는데 공교롭게도 참고할 만한 기사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만큼 언론의 관심을 끌지 않았다는 얘기다. 블로그가 있긴 하나 사진 위주여서 11.7㎞나 되는 길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결국 이거저거 짜깁기한 안(案)을 가지고 아내에게 동행을 요청하니 ‘OK!’다. 하지만 탐방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떠나는 산행이다. 혹시 코스가 마음에 들지 않아 아내가 실망할까봐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건 기우였다. 길안내도 코스도 모두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강릉바우길 제3구간의 소요시간은 4∼5시간이다.

이 글을 읽고 탐방을 떠나는 분을 위해 교통편과 출발지를 안내한다. 교통편은 승용차와 시내버스 모두 가능하다. 강릉 시내버스(502번)를 이용할 경우 정류장은 ‘가족관광농원역’이다. 그곳에 에른스트국제학교가 있다. 한 정류장 위가 종점인데 이름은 ‘보현사 종점역’이다. 502번이 좋은 것은 종착지(명주군왕릉)에서 이곳(보현사 종점역)까지 노선이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승용차를 이곳에 주차하고 종주 후 버스를 타고 이곳으로 원점회귀해도 택시비가 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보현사 종점역에서 명주군왕릉이 있는 삼왕역으로는 가지 않는다.

다음은 승용차를 이용하는 방법. 에른스트국제학교나 보현사 종점역 부근에는 마땅한 주차 공간이 없어 더 올라가야 한다. 주차 장소는 크게 두 곳이다. 한 곳은 에른스트국제학교에서 도로를 따라 직진하면 상공에 높이 떠있는 영동고속도로 아래에 마련된 대형 주차장이고 다른 한 곳은 그곳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나오는 보현사 입구 주차장이다.

대형 주차장

 

에른스트국제학교에서 보현사 입구까지는 아스팔트길이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한쪽에는 늘푸른 소나무들이 도열하고 있고 다른 한쪽으로는 계곡이 발달한 1차선 좁은 길이어서 걷는데 쾌적하기 때문이다. 거리는 1.7㎞다. 보현사 입구에 산길이 있고 그 옆에 임도도 있다. 산길은 우리가 걸어갈 길이다. 산길과 임도는 종착지인 명주군왕릉까지 세 차례 만나고 헤어진다.

 

■‘어명을 받은 소나무길’을 걷다

▲일정과 코스

우리 일정은 보현사 입구에 주차하고 산길로 올라가 명주군왕릉까지 10㎞를 걸어간 후 하루 7~8차례 밖에 없는 502번 시내버스를 타고 출발지로 돌아오는 것이다. 에른스트국제학교~보현사 입구 코스는 나중에 출발지로 돌아와 걸을 예정이다. 보현사 입구 주차장에 ‘보현성지(普賢聖地)’라고 쓰여 있는 대형 바위가 우뚝 서 있다. 10여 대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에 2~3대 정도의 공간만 남아있다. 오른쪽으로 임도가 나있고 직진하면 보현사다. 산악자전거를 타고 임도로 올라가려는 사람이 워밍업을 하고 있다.

보현사 입구에서 올라가는 입구

 

바우길 탐방객의 들머리는 주차장 입구 부근의 산길이다. 영동고속도로는 그곳에서도 하늘 높이 떠있다. 서울에서 오는데 고속도로가 막혀 5시간이나 걸렸다. 시간은 오후 12시 30분을 가리킨다. 출발이 늦어졌다. 명주군왕릉에서 보현사 종점역으로 오는 시내버스는 오후 4시와 오후 6시 명주군왕릉 부근의 삼왕역에서 출발한다. 6시 차는 어둑해질 때여서 4시 차 시간에 맞출 생각이다. 그래야 돌아와 나머지 구간(에른스트국제학교~보현사 입구)을 걷는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는다. 결국 명주군왕릉까지 3시간 30분밖에 남아있지 않다. 그런데 강릉바우길 홈페이지에는 4~5시간 소용되는 것으로 나온다. 서둘러야 한다.

오늘 코스는 보현사 입구 →(2.71㎞)← 어명정 →(1.04㎞)← 술잔바위 →(2.3㎞)← 임도 →(3.7㎞)← 명주군왕릉 →(0.3㎞)← 버스 정류장(삼왕역)이다. 전체 거리는 대충 10㎞ 정도다. 하산 후 돌아와 걸을 에른스트국제학교~보현사 입구를 포함하면 11.7㎞다. 자세한 코스와 대중교통에 관해서는 강릉바우길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 클릭! 강릉바우길 제3구간 지도와 안내

 

▲초입에서 어명정까지

초반은 구불구불 굽은 오르막 산길이다. 사실상 등산이다. 초반 산길을 약간은 헉헉 대며 10분 정도 오르니 소나무가 빼곡한 순한 길이다. 이후에도 산길은 있지만 전반적으로 오솔길의 연속이다. 그래도 이곳을 걸을 때는 트래킹화보다는 등산화가 적합하다. 그래야 발이 덜 피곤하다.

이곳 소나무는 우리가 흔히 보는 굽은 소나무가 아니다. 곧게 뻗어 늠름한 자태를 자랑한다. 이름에 ‘소나무길’을 괜히 붙인게 아니다. 숲의 이곳저곳에서 심심치 않게 만나는 구절초 등 야생화마다 생기가 돌고 대관령 산바람에도 꿋꿋하다. 그런 숲길을 25분 정도 오르니 보현사 입구에서 출발한 임도와 만난다. 임도를 가로질러 다시 숲에 드니 멀리 대관령과 그 위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오솔길이다. 한동안 길 왼편으로 소나무가, 오른편으로 굴참나무·갈참나무 등 참나무가 도열한 상태에서 오솔길을 지나는 외지인을 환영한다. 이곳의 소나무 중 일부는 초입에서 보았던 소나무와는 격이 다르다. 백두대간에서 뻗어나온 산자락에 반듯하게 서식한다는 금강소나무다. 경북 울진의 금강소나무길을 연상시킨다. 자세는 꼿꼿하고 색깔은 가을인데도 푸르다. 나무 껍질도 각각 개성이 있다. 어떤 것은 골이 깊고 거칠고 어떤 것은 골이 얕고 매끄럽다. 가히 소나무 백화점이다. 가을 하늘까지 맑고 청명하다. 이런 자연환경 덕에 오솔길은 그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을만큼 호젓하다. 고승 한 분이 마치 뒷짐을 지고 오솔길을 걸어갈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오솔길을 걷는 것은 평소 나의 로망이다.

오솔길이 자주 나타난다. 오른쪽은 어명정 가는 임도다.

 

소나무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다. 한국갤럽이 2003년 국민을 대상으로 가장 선호하는 나무를 조사했을 때, 소나무 43.8%, 은행나무 4.4%, 단풍나무 3.6%, 벚나무 3.4%, 느티나무 2.8% 순으로 나타났다. 한국갤럽이 2006년 국민을 대상으로 100대 민족문화상징을 조사했을 때는 진돗개, 호랑이, 한우와 함께 나무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길을 따라가다보면 곳곳에 강릉바우길을 안내하는 리본이 나무에 매여있고 가끔은 올림픽 아리바우길 팻말도 보인다. 따라서 길이 헷갈리면 리본을 찾아 따라가면 된다. 올림픽 아리바우길 강릉 구간은 강릉바우길과 일부 길을 공유한다. 코스로는 6코스에서 9코스까지다. 올림픽 아리바우길 6코스는 강릉바우길 2구간, 7코스는 강릉바우길 3구간, 8코스는 10구간, 9코스는 11구간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곳 강릉바우길 3구간은 올림픽 아리바우길 7코스다.

나무에 표시된 강릉바우길 리본. 가운데와 오른쪽도 길을 안내하는 표식이다.

 

▲어명정(御命亭)

보현사 입구에서 40여분을 오르면 바위틈에서 자라는 소나무가 길가에 있다. 그곳에서 다시 10분을 가면 굵직하면서도 곧추 자란 소나무 두 그루가 이웃처럼 자라고 있다. 팔을 벌려 안아보니 반 정도 밖에 감기지 않는다. 동양화에서나 볼 법한 굽은 소나무에서는 윤기가 난다. 이렇게 송림 사이를 지나 10분쯤 걸었을까. 헤어졌던 임도가 다시 나타나 어명정까지 0.6㎞ 전임을 알려준다. 그곳 안내판이 가리키는 대로 임도를 따라가자 멀리 숲 사이로 고고하게 자리잡은 정자가 보인다. 어명정(御命亭)이다.

어명정

 

어명정 한 복판에 금강소나무 그루터기가 있다. 밑동 지름이 90㎝나 되는 대경목(줄기의 가슴높이 지름이 30㎝ 이상인 큰 나무)이다. 안내문에 ‘금강소나무 벌채를 위해 역사상 처음 교지를 내리고 위령제와 진혼굿을 올린 뒤 대경목을 베고 묘목을 심었다’고 적혀 있다. 2007년 11월 29일 경복궁을 복원할 때 기둥으로 쓰인 금강소나무를 베어낸 그루터기 위에 세운 정자가 어명정이다.

금강소나무 위령제 사진. 어명정 안에 걸려있다.

 

당시 신문 기사를 보자.

<“어명(御命)이오.” 29일 낮 12시쯤 백두대간 허리에 자리 잡은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의 한 임도(林道). 강릉국유림관리소 직원이 아름드리 소나무 앞에서 외쳤다. 그는 어명을 알리며 손도끼로 나무를 내리찍는 의식을 세 번 반복했다. 이어 큰톱을 양쪽에서 맞잡고 소나무를 베어내는 전통 벌목방식을 선보였고, 마무리로 기계톱이 투입되면서 키 20m에 이르는 소나무가 바닥에 쓰러졌다. 산림청·문화재청 주최로 서울 광화문 복원에 사용할 금강소나무를 벌목하는 행사였다. 시범 벌목된 소나무는 수령 150년에 지름이 94㎝에 이른다. 앞으로 강릉과 양양 일대에서 수령 80~250년, 지름 56~94㎝ 소나무 26그루를 베어내 광화문 기둥과 보 등에 사용할 예정이다.(중략) 이날 벌목에 앞서 소나무를 위로하는 고사도 펼쳐졌다. 서승진 산림청장,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술잔을 올렸다. 강릉단오제보존회 주관으로 대관령 산신에게 바치는 제례에 이어 헌시 낭송, 산신굿도 펼쳐졌다.(후략)…> (조선일보 2020년 11월 30일)

어명정 주변에서 바라보는 강릉시내가 그렇게 멋질 수 없다. 주변 하늘에는 구름이 낮고 짙게 깔려있는데 강릉 시내에만 밝은 햇살이 비쳐 마치 선택받은 땅처럼 보인다. 2개월 전 1박을 했던 숙소 부근도 보이니 아내가 반가워한다.

어명정에서 바라본 강릉시내

 

▲어명정에서 임도까지

어명정과 헤어져 술잔바위(1.04㎞)를 가리키는 산길로 오른다. 초반에는 경사가 있으나 이내 호젓한 오솔길이다. 바닥은 진흙 섞인 흙길이어서 푹신푹신하기까지 하다. 아내 뒤를 졸졸 따라가며 뒷모습을 찍고 있으니 아내가 다가와 평소 하고 싶은 얘기를 꺼낸다. 그동안 뒤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자신의 다리가 벌어지고 어깨가 굽어진 모습이어서 보기에 좋지 않았다며 자신이 꼿꼿하게 걸을 때 사진을 찍으란다. 이후 사진을 찍기 전 내가 뒤에서 “꼿꼿!” 외치면 아내가 꼿꼿한 자세를 취한다. 사진을 찍어도 좋다는 신호다.

어명정에서 25분 정도 지나면 멧돼지들이 진흙 목욕을 한다는 멧돼지 쉼터이고 곧 이어서 산림청이 지정한 산림습지다. 비탈을 따라 늘어선 금강소나무 군락지를 지나면 펑퍼짐한 바위가 나타난다. 어명정에서 1.04㎞ 거리에 있는 술잔바위다. 바위 위에 술잔처럼 생긴 동그란 구멍이 세 개 파여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술잔이 연상되지는 않는다. 술잔바위에서도 선자령 북쪽 백두대간이 보인다. 왼쪽의 봉우리가 곤신봉(1131m)이고, 풍력발전기 늘어선 능선의 봉우리가 매봉(1173m)이다. 매봉 너머에 대관령 삼양목장이 있다.

아름드리 소나무들

 

술잔바위부터 완만한 내리막이다. 사실상 숲길 후반부다. 이곳 역시 송림의 연속이지만 앞서 지나온 소나무와는 달리 평범한 모습이다. 이 대목에서 생각해볼 게 있다. 즉 그곳부터 종착지인 명주군왕릉까지는 평범한 내리막길이거나 임도 뿐이므로 보현사 입구에 주차한 탐방객이라면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원점회귀하는 것을 고려해봄직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산에서 만난 두 쌍의 부부 역시 어명정과 술잔바위에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나는 종주에 안달이 난 사람이다. 종주해야 산이든 길이든 전모를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계속 직진이다. 아내의 막판 발걸음이 급하다. 그저그러한 경관이어서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천천히 감상하며 가는 게 좋지 않냐고 물으니 “4시 버스를 놓치면 택시를 타야 하고 그러면 비용이 들테니 서둘러 가자”고 한다. 할 수 없이 뒤에서 쫓아가면서도 야생화와 주변 경치를 사진에 남기는 행위는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찍은 야생화가 구절초, 이고들빼기, 마타리, 산박하, 며느리밥풀, 꽃향유 등이다.

같은 임도를 세 번째 만난 것은 출발지에서 2시간 50분이 지난 3시 20분이다. 안내판을 보니 명주군왕릉까지 3.7㎞의 임도를 걸어야 한다. 안내판상으로 출발지인 대관령 유스호스텔로부터는 7.9㎞ 거리다. 물론 나는 보현사 입구에서 출발했으므로 6.3㎞를 걸었다.

여기서 잠깐. 안내판에 표시된 대관령 유스호스텔은 강릉 힐링리조트로 상호가 바뀐지 오래다. 또한 이런저런 강릉바우길 지도나 안내판에 ‘보광리 게스트하우스’라는 건물명이 드문드문 나오는데 ‘보광리 게스트하우스’는 폐쇄된 지 오래다. 2009년 강릉바우길을 조성할 때 안내판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이해하고 넘어가자. 그래도 2020년 현재에 맞는 안내판을 다시 만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사라진 건물명이 때로는 탐방객을 헷갈리게 하기 때문이다.

임도 옆도 소나무 군락이다.

 

▲버스 놓쳐 대략 난감

임도를 걷는데 한동안 강릉시내가 내려다보이고 흙길에 내리막이어서 그다지 피곤하지 않다. 임도 옆은 여전히 소나무 군락이다. 그 사이에 들어가 소나무 향기에 취하고 싶으나 명주군왕릉에서 보현사 입구로 우리를 데려다 줄 오후 4시5분 발 시내버스(502번)를 타야 하므로 마음이 급하다. 시내버스를 놓쳐도 택시를 탈 수 있기 때문에 급히 갈 필요는 없다. 그래도 비용을 아낄 수 있다면 좋지 않으냐는 것이 아내의 지론이다. 시내버스든 콜택시든 강릉바우길 홈페이지에서 시간과 전화번호를 자세히 안내하고 있다.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에 도착하니 4시 3분이다. 강릉바우길 홈페이지에는 4~5시간 걸린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우리는 3시간 30분 걸렸다. 물론 보현사 입구가 아닌 에른스트국제학교에서 출발했으면 우리도 그 정도 걸렸을 것이다. 502번 버스 정류장이 왕릉 주변에 있는 줄 알고 버스를 기다렸으나 4시 5분이 되어도 오지 않아 주변 행인에게 물어보니 정류장은 왕릉에서 200~300m 아래 지점에 있고 또 몇 분 전 떠났다고 알려준다. 강릉바우길 홈페이지에서 택시회사 전화번호를 안내하고 있어 택시를 타기로 하고 택시를 호출하기 전 틈을 내 멋드러진 소나무가 둘러싸고 있는 명주군왕릉을 둘러보았다.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은 명주군왕의 제사를 봉향하는 능향전이다. 왕릉은 그 오른쪽 위에 있다. 안내문에 따르면 명주군왕릉은 신라 태종무열왕의 6세손이자 강릉김씨 시조인 김주원의 묘다. 김주원의 아버지는 신라 왕족인 김유정이고 어머니는 현재 강릉의 일부인 명주 지방 호족의 딸인 박연화다. 신라 선덕왕 6년(785) 왕이 후계자 없이 죽자 화백회의(신라시대 부족 대표 회의)에서 김주원을 국왕으로 추대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폭우로 강물이 넘쳐 김주원이 화백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러자 상대등 김경신이 왕궁을 점거하고 왕위에 올라 원성왕이 되었다. 이후 김주원이 연고가 있는 강릉으로 내려가자 원성왕이 재위 5년(789)에 김주원을 명주군왕(溟州郡王)에 봉하고 명주 양양 삼척 울진 평해를 식읍으로 하사했다.

명주군왕릉. 왼쪽 건물이 능향전이고 오른쪽 뒤가 왕릉이다.

 

명주군왕릉에서 버스 정류장으로 내려가다 보면 3개의 사당이 있다. 입구의 홍살문을 기준하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청간사다. 명주군왕의 23세손이자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이다. 김시습은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이후 승려가 되어 방랑길을 떠났을 때 명주군왕릉 재실에 기거했다고 한다. 두 번째 사당은 숭열전이다. 명주군왕의 5대조인 신라 29대 태종무열왕의 위패를 봉안한 전각이다. 이곳으로 들어가려면 통삼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3개 사당 모두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세 번째 사당은 위패를 모시고 제례를 지내는 숭의재다. 이곳 역시 들어가려면 삼왕문을 통과해야 하나 역시 내부 출입은 막고 있다.

 

▲아뿔싸! 휴대폰까지 먹통이라니

사진을 찍고 강릉바우길 홈페이지에서 안내하는 택시회사 세 곳으로 두 차례씩 전화를 걸었는데 세 곳 모두 전화를 받지 않는다. 콜백 전화도 없다. 뭔가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아뿔싸! 하필이면 그때 휴대폰 배터리가 나갔다. 보조 배터리를 준비 못한 상태여서 당황스러웠다. 무엇보다 대명천지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 앞에 무력감을 느꼈다.

마침 마을 주민이 보여 물어보니 1㎞ 정도 내려가면 마을이 나오고 오른쪽 계곡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 다시 1㎞를 가면 보현사 입구에 닿는다고 한다. 버스가 도착하는 6시까지는 2시간이나 기다려야 하지만 주민 말에 따르면 도보로 30분 거리다. 우리는 과거 연애할 때처럼 걷자는데 의견이 모아져 계곡 옆 아스팔트 길을 터덜터덜 걸어갔다. 아내가 산에서 넘어져 무릎이 아프다보니 속도가 더디다.

예상했지만 마을 주민의 1㎞는 도시인의 1㎞와 거리가 다르다. 한참을 걸어도 다리가 나타나지 않아 당황해하고 있던 차에 길가 집 마당에 콜택시가 보인다. 마침 집 주인이 밖에 나와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현사까지 운행할 수 있느냐고 물으니 비번이라 안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포기했다가는 아내의 무릎이 더욱 악화될 것이고 밤에야 도착할 것 같아 최대한 힘든 표정을 지으며 사정했더니 흔쾌히 수락한다. 하늘이 내리신 구세주(콜택시)의 차량번호는 강원2바 3496이고 전화번호는 010-6389-5593이다.

택시를 타고 보현사 입구로 가는데 생각보다 멀다. 1㎞는커녕 3~4㎞는 족히 될 듯 싶다. 보현사 입구에 내려 택시기사께 약간의 사례를 하고 거듭 감사의 말을 전했다. 구세주를 만나지 않았다면 고생은 고생대로 했을 것이고 어두워서 도착했을 것이다.

보현사 입구에 도착하니 다행히 어둡지는 않았다. 해서 차를 이용해 산 속의 보현사로 올라가는데 걸어서 올라가기엔 경사가 있고 거리도 길었다. 물론 옆으로는 계곡이 깊고 주변 풍광이 좋아 도보로 올라가야 몸과 마음이 더 상쾌했을 것이다. 계곡 물 소리가 요란하면서도 청량하다. 해가 저물 때여서 고즈넉하다.

각기 다른 개성을 자랑하는 소나무 수피

 

▲보현사에서 에른스트국제학교까지

보현사는 650년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사찰이 면모를 갖춘 것은 낭원대사 개청스님(834~930년)이 주석하면서다. 이후 보현사는 강원지역의 대표적 사찰로 자리잡았다. 현재 보현사 경내에는 낭원대사 개청스님의 비와 탑비가 보존되어 있다. 각각 보물 제191호와 192호다.

보현사

 

보현사를 둘러보고 에른스트국제학교까지 1.7㎞의 1차선 아스팔트길을 가는데 한쪽엔 송림이 펼쳐있고 다른 쪽엔 계곡이 흐르고 있어 운치와 분위기가 있다. 그렇다면 나처럼 보현사 입구에 주차하기보다는 초입 주차장에서부터 걸어가는 것이 더 좋을 듯 싶다. 에른스트국제학교가 공식 출발지여서 차에서 내려 주변을 살펴보는데 정류장 팻말 아래가 온통 쓰레기다. 곧 치울 쓰레기라면 모를까 오랫동안 방치된 쓰레기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정류장에 이런 쓰레기가 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다녀와 아내가 “기대 이상이었다”며 만족해 하길래 “무엇이 좋았더냐”고 물었더니 첫째는 산길인데도 길이 넓고 편해서, 둘째는 청명한 가을 날씨, 셋째는 탐방길 전체가 깔끔해서란다. 나 역시 공감하며 ‘어명을 받은 소나무길’을 명품숲길로 가꿔도 관광객을 유치하는데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더구나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릴 때 다녀오면 좋을 것 같다. 아쉬운 점이라면 어명정을 빼고 딱히 내세울만한 조망터가 없다는 것인데 이것은 지혜를 모으면 해결책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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