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박스

미국의 코믹 영화 ‘아나스타샤(Anastasia)’가 러시아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는데… 영화의 배경이 된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차르 일가의 총살과 아나스타샤 공주의 거짓 생존 이야기

↑ 니콜라이 2세 일가(1913년 촬영).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올가, 마리아, 니콜라이 2세, 알렉산드라 황후, 아나스타샤, 알렉세이, 타티아나

 

by 김지지

 

제정(帝政) 러시아의 마지막 공주 아나스타샤 로마노바의 일대기를 그린 한 미국 영화가 러시아 국민의 분노를 낳고 있다. 이들은 영화가 공주의 일대기를 10대용 판타지 코믹물로 가공한 데 대해 “9·11 테러를 시트콤으로 만든 격”이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영화는 공주와 동명(同名)의 ‘아나스타샤(Anastasia: Once Upon a Time)’라는 1시간 30분짜리 영화로 2020년 4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개봉했다. 1917년 2월 러시아 혁명 전야, 군중이 황궁에 들이닥칠 때 아나스타샤가 미국으로 탈출, 한 미국인 가정의 도움을 받아 자신을 죽이려는 블라디미르 레닌의 음모에 맞선다는 내용이다.

2020년 9월 중순부터 뒤늦게 러시아 일각에서 이 영화를 “러시아 역사에 대한 모독”이라고 평가하면서, 개봉 5개월 만에 러시아 내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러시아 모스크바타임스는 “기품 있는 아나스타샤를 무식한 야만인으로 그리고, 러시아 혁명 지도자 레닌의 외관은 하층 잡상인처럼 묘사해놨다”고 평했다. 영화의 소재가 된 러시아 차르(황제) 일가는 어떻게 살해되었는지 아나스타샤 공주 역시 함께 살해되었는데 왜 살아남은 것으로 묘사되었는지 그 역사적 배경을 알아본다.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일가는 어떻게 살해되었나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차르(황제) 니콜라이 2세(1868~1918)는 소심하고 무능한 군주였다. 반면 빅토리아 영국 여왕의 외손녀이자 독일 태생의 알렉산드라 황후는 강인하고 당찬 여성이었다. 황후는 무능한 황제를 지배했으나 그녀 역시 주술사 라스푸틴에게 휘둘리면서 러시아에 끼친 폐해가 막심했다.

니콜라이 2세는 1904년 러일전쟁 패배와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 등의 격변을 겪으면서도 시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끌려다녔다. 그 결과는 1917년의 ‘2월 혁명’과 그로 인한 강제 퇴위였다. 2월 혁명이 일어났을 때 니콜라이 2세는 황제직을 포기하고 동생에게 양위했으나, 동생마저 신변에 위협을 느껴 황제직을 거부함으로써 303년 동안 이어온 로마노프 왕조는 1917년 3월 16일 막을 내렸다.

니콜라이 2세는 1917년 2월 혁명 후 출범한 임시정부에 감금되었다가 8개월 후 일어난 볼셰비키의 ‘10월 혁명’으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풍전등화의 운명으로 내몰렸다. 볼셰비키는 당초 황제를 공개재판할 생각이었으나 1918년 백군(반혁명군)이 기세를 떨치자 처형으로 방침을 바꿔 우랄산맥 근처 예카테린부르크(옛 스베르들롭스크)의 한 가옥에 가둬두었다.

그러다가 1918년 7월 17일 늦은 밤, 황제 부부, 황태자 알렉세이, 4명의 공주인 올가·타티아나·마리아·아나스타샤 등 7명의 황제 일가는 주치의와 시종 등 4명과 함께 한 저택의 지하실로 끌려갔다. 곧 볼셰비키 적군 병사들의 총에서 불이 뿜어져나왔고 황제 일가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이로써 1613년부터 300여 년간 이어온 로마노프 왕조의 명줄도 완전히 끊어졌다. 병사들은 11구의 시체를 20㎞ 떨어진 광산으로 싣고 가 불에 태운 뒤 땅에 묻었다. 매장 장소는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다가 소련이 붕괴된 후에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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