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구 소련, KGB 전신 ‘체카’ 창설

74년 동안 소련을 동토(凍土)로 만들고 국민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었던 KGB였으나 그 시작은 초라했다. 조직원은 24명에 불과했고 자체 건물도 없었다. 그러나 폴란드 출신의 팰릭스 제르진스키라는 창설자로 인해 KGB는 머지않아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과 동의어로 쓰이게 된다. 1917년 11월, 혁명을 성공시켰다고는 하나 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었다. 막강한 반(反)볼셰비키 세력은 러시아 영토의 대부분을 장악한 채 ‘볼셰비키 타도’를 외쳤고 주변 국가들은 노골적으로 혁명을 간섭하고 위협했다.

레닌은 제르진스키에게 이같은 위협의 제거를 명령했고, 제르진스키는 1917년 12월 20일 KGB를 창설함으로써 기대에 부응했다. ‘체카(CHEKA)’ 즉 ‘반혁명과 사보타주 퇴치를 위한 전러시아 특별위원회’가 KGB의 첫 이름이었다. 제르진스키는 비좁은 사무실에 틀어박혀 금욕적인 수도승처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더미에 파묻혀 살았다. 그것은 모스크바 루비얀카 거리의 체카 본부가 공포의 상징물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건물에 들어선 사람은 소리소문 없이 건물 벽 뒤로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의 기만작전은 반볼셰비키 조직을 사실상 궤멸시켰고 첩보원을 노출당한 서방국가의 정보망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고삐 풀린 권력의 횡포로 원성과 비난이 쏟아지자 뒤늦게 레닌이 제동을 걸었다. 결국 체카는 폐지(1922년 2월)되고 GPU(국가정치보안부)를 거쳐 OGPU(통일국가정치보안부)로 바뀌었다. 체카가 KGB로 바뀐 것은 1954년이다. 이름이 바뀌고 권력이 축소되었지만 제르진스키는 여전히 막강한 권한을 쥔 저승사자였다. 1926년 그가 병사했다고 해서 공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 악명을 떨친 베리야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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