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이호왕 박사, 유행성출혈열 병원체 발견

‘유행성출열혈 병원·면역체 규명’ 1976년 4월 30일자 조선일보 사회면은 한 과학자의 기사로 가득 채워졌다. 세계 의학계와 미생물학계가 반세기동안 매달렸으나 아무도 풀지못한 유행성출혈열의 정체를 마침내 한국의 이호왕 박사가 밝혀냈다는 기사였다. 유행성출열혈은 1913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첫 환자가 발생해 1940년경에는 소련군·일본군 수 천명을 한꺼번에 발병시켜 대소동이 벌어지고 1951년 여름 우리나라 철의 삼각지에 주둔한 미군 2000여 명이 감염돼 800여 명이 목숨을 잃은 무서운 전염병이었다.

이호왕은 1969년부터 휴전선 일대를 누비며 들쥐, 두더지, 삵쾡이 등을 닥치는 대로 채집해 숙주로 추정되는 수백 마리의 들쥐를 해부하고 조직 배양을 시도했으나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때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출혈열 병원체는 곰팡이이며 들쥐의 폐장에서 발견된다’는 가설이 소개된 소책자 한 권을 미국의 한 학자가 보내온 것이다. 1975년 12월 20일, 이호왕이 등줄쥐의 폐 조직을 형광현미경으로 관찰하고 있을 때 갑자기 세포핵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무수한 황금빛 바이러스 무리가 눈에 띠었다. 마침내 출혈열병원체가 베일을 벗고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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