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엘리자베스1세,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英 여왕 즉위

↑ 엘리자베스 1세

 

20세기 마지막 해인 1999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지난 1000년 간의 최고지도자’에 당당히 1위로 올랐던 엘리자베스가 영국 여왕으로 등극하기까지에는 그 시대 최고 인물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등장한다. 헨리8세(1491~1547). 멋지고 당당하나 호색한이고 다혈질인 영국 왕이다. 아라곤 출신의 캐서린(1485~1536). 오랜 분열에 종지부를 찍고 780여년 만에 스페인을 정치적·종교적으로 통일시킨 스페인의 이사벨1세와 페르난도의 딸이다. 헨리8세의 형과 결혼했으나 형이 죽자 6살 연하의 동생 헨리8세와 재혼한다. 순탄한 결혼이었으나 어느날부턴가 헨리8세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왕위를 계승할 적자(嫡子)가 없었기 때문이다. 캐서린이 낳은 자녀들은 딸(메리1세)만 남고 모두 요절했다.

아들을 얻기 위해 이혼을 고려하고 있던 헨리8세에게 성경 레위기 20장21절이 눈에 띤다. ‘형제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것은 추한 짓이다.… 후손을 보지 못하리라.’ 이혼은 쉽지 않았다. 유럽 최강국이던 스페인의 카를로스1세(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5세)가 캐서린의 조카인데다 사실상 스페인의 포로나 다름없던 교황 클레멘스 7세도 순순히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헨리8세는 난감했다. 결국 가톨릭을 버리고 영국 국교회를 설립, 영국을 개신교 국가로 만들어 이혼을 합법화시켰다. 마침 앤 불린(1507~1536)이라는 젊은 아가씨가 눈에 든 것도 이혼을 부추겼다. 1533년 헨리8세는 앤 불린과 결혼해 자식을 낳았으나 또 딸이었다. 엘리자베스1세(1533~1603)가 그 딸이다.

헨리8세

 

메리1세(1516~1558). 엘리자베스보다 17년 먼저 공주로 태어났으나 어머니 캐서린이 근친상간으로 몰려 졸지에 사생아가 된다. 게다가 계모 앤 불린은 메리의 왕위계승자격을 박탈하게 하고 괴롭힌다. 그러나 엘리자베스1세 역시 세살 때 헨리8세가 앤을 간통죄로 몰아 처형하는 바람에 메리1세와 같은 신세가 된다. 더 이상 왕위계승자도 아니었다. 캐서린과 앤 불린은 1536년 같은 해 죽는다. 헨리8세는 세 번째 결혼에서 비로소 아들(에드워드6세)을 낳아 소원을 풀었으나 이후에도 3번이나 더 결혼한 뒤에야 여성 편력을 끝낸다. 재미있는 것은 헨리8세의 여섯 왕비 중 캐서린이라는 이름만 3명이다.

메리1세와 엘리자베스1세는 다행히 6번째 왕비의 도움을 받아 왕위계승자로 인정받는다. 1547년, 헨리8세 사후 에드워드6세가 왕위에 오르지만 6년만에 요절하고 만다. 메리1세가 뒤를 이었고, 공식적으로는 영국 최초의 여왕이 됐다. 에드워드6세 사후, 그의 왕비가 잠시 여왕이 되었으나 주위의 압력으로 불과 9일만에 하야했다가 몇 년뒤 메리1세에게 참수당했다. 메리1세는 영국을 다시 가톨릭으로 만드는데 혈안이 됐다. 300여명을 이단으로 화형하는 잔인한 신교도 박해로 그녀는 ‘블러드 메리(Blood Mary, 피의 메리)’로 불렸다. 1554년 스페인의 펠리페2세와 결혼, 영국을 다시 가톨릭 국가로 만들었으나 이 때문에 국민들과는 사이가 더욱 악화됐다. 메리는 5년간의 치세 만에 1558년 11월 17일 암으로 세상을 등졌다. 바통을 이은 인물이 오랜 세월 숨죽이며 힘들게 살아남은 엘리자베스였다. 메리1세가 죽고 30년 뒤, 펠리페2세의 무적함대는 엘리자베스의 해군에 대패, 스페인의 대항해시대를 접는 악연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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