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성전환자, 미국에서 첫 ‘커밍아웃’

1952년 12월 1일자 뉴욕 데일리신문을 펼쳐든 독자들은 믿기지 않는 뉴스에 아연실색했다. ‘EX-GI BECOMES BLOND BEAUTY(전 미군 장병, 금발의 미인되다)’라는 굵은 글씨의 기사제목이 신문 첫 장을 장식했기 때문이다. 기사는 성전환 수술을 했다는 한 청년의 ‘커밍아웃’을 소개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처음 공표된 성전환 사실은 보수적인 1950년대 미국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당시 성적 관심은 터부시되었고 성은 숨겨야할 비밀스런 존재였다. 의학적으로 성전환 사실이 새롭거나 특별한 일은 아니었지만 언론의 센세이셔널한 보도가 더해지면서 청년은 이듬해 미국 최고의 화제 인물로 떠올랐다. 한국전에 참전한 미군들은 그를 ‘1953년의 미스 중립지역’으로 선정하는 등 화제가 만발했다.

마르고 허약했지만 그는 행복한 소년시절을 보냈고 14개월 간의 군대 생활도 무난히 마쳤다. 그러나 점차 자신의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면서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1950년, 성전환 수술이 불법으로 간주되고 있는 미국을 떠나 덴마크로 향했다. 그곳에서 남성의 상징을 제거하고 여성의 질을 만들었다. 2년 동안 여성호르몬을 주입받고 성형수술까지 받으면서 청년은 점점 여성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세 번의 수술 가운데 두 번째 수술이 있기 전날, 그때까지도 비밀에 부쳤던 부모에게 편지를 썼다. “자연이 실수한 것을 내가 바로잡았습니다. 나는 당신의 딸입니다.”

1952년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이름은 조지 조겐슨이 아니라 크리스틴 조겐슨(당시 26세)이었다. 이후 그녀는 성전환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대변자였고 길잡이였다. 결혼할 상대가 있어 결혼신청을 했으나 당시 그가 거주하고 있던 뉴욕주가 “여자임을 입증할 수 없다”며 혼인신고를 거부해 혼인이 무산되기도 했다. 결국 약혼만 두 번 했다. 훗날 그는 자서전(1967년)에서 ‘커밍아웃’의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나는 나에 대한 뉴스가 전 세계 신문의 1면에 실린 에니웨톡 환초섬의 수소폭탄 실험과 같은 충격적 뉴스였음을 뒤늦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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