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조지 거슈인 작곡 오페라 ‘포기와 베스’ 초연

경제공황의 한파가 엄습한 1930년대 미국 남부의 흑인 빈민가. 이곳에서 힘겹게 만나 어렵게 사랑을 나누는 흑인 남여의 이야기가 있다. ‘섬머 타임’ ‘아이 러브 유 포기’ 등이 수록된 조지 거슈인의 오페라 ‘포기와 베스’가 그것이다. 거슈인 스스로 ‘민속 오페라’라고 칭했던 ‘포기와 베스’는 명랑하되 우수가 깃들었고 무겁되 희망적이었다.

1935년 10월 10일 미 브로드웨이 알빈극장에서 초연될 때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끈 ‘포기와 베스’는 형식과 인물 구성에 있어서 여느 오페라와 사뭇 달랐다. 형식면에서는 재즈적 요소가 가미됐고 등장인물은 대부분 흑인들이었다. 때문에 40여 년에 걸친 브로드웨이 역사에서 획기적이라는 평가가 쏟아졌고, 100여 회 이상 상연될 정도로 반응도 좋았다. 거슈인이 작품완성에 쏟아부은 기간은 2년이었지만 실은 10년에 걸친 오랜 기획의 산물이었다. 원작자 듀보스 헤이워드가 소설 ‘포기’를 내놓은 것은 1925년이고, 희곡으로 각색한 것은 1927년이다. 거슈인은 소설과 연극을 보며 오페라의 꿈을 키웠고 10년의 관심 속에 ‘포기와 베스’를 작곡·발표했다. 이때 나이는 37세였지만 그는 이미 20대 중반에 1급 작곡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다만 ‘라 라 루실’ ‘스와니강’ 등을 작곡한 대중가요 작곡가로 알려졌을 뿐 클래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거슈인은 1924년 ‘랩소디 인 블루’를 발표, 그때까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재즈와 고전의 만남을 시도했고, 이후에도 ‘피아노 협주곡 F장조’ ‘파리의 아메리카인’ 등을 발표하며 재즈와 클래식을 넘나드는 작곡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이처럼 젊은 나이에 유명세와 부를 거머쥔 그였지만 더 이상의 재능발휘를 불허한 신의 뜻으로 1937년 7월 뇌종양에 쓰러져 모든 명성을 뒤로한 채 이승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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