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일본, 대만을 완전 점령

중국과 대만은 구성원 다수가 한인(漢人)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엄연히 역사와 전통이 다른 별개의 나라다. 17세기부터 한인들이 대거 대만으로 이주하면서 숫자가 역전됐지만 그 전까지 대만에는 남방계 원주민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만 역사에서 중국의 직접지배를 받은 것은 200여 년에 불과하다. 1683년 청(淸)의 수중에 떨어져 1895년 일본의 식민지가 되기 전까지가 중국의 실효지배 기간이다.

청일전쟁 이후 체결된 시모노세키조약(1895년 4월)은 대만 근대사에 또 하나의 비극적 운명을 불러왔다. 조약에 따라 일본이 조선에 마수를 뻗칠 여지가 마련됐고, 대만 역시 인근 팽호 열도와 함께 일본에 할양되면서 50년 식민지 생활이 시작됐다. 그러나 일본이 대만 전역을 장악하기까지에는 6개월이란 순탄치 않은 과정을 겪어야 했다. 1895년 5월 말 대만 북쪽에 처음 상륙한 일본은 6월 17일 타이베이(臺北)에서 시정식(始政式)을 거행함으로써 정식으로 대만 땅을 일본 소유로 삼았다. 대만인들의 결사항전으로 잠시 주춤하긴 했으나 10월 21일 마지막으로 남부 타이난(臺南)에 입성함으로써 대만 전역을 점령하게 됐다.

그러나 50년 동안 이어진 대만의 식민지 역사가 우리와는 다르게 전개돼 대만인은 한국인, 중국인과 달리 일본에 대해 복잡하고 애매한 감정에 놓여있다. 분명 식민지 경험은 부정적인 일이지만 근대화를 인정해야 하는 이중적 감정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일본 역시 대만인의 본토 분리운동을 유발하는 정책으로 대만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정착시켰다. 전쟁 말기에 몰아친 황민화(皇民化) 정책도 우리와는 다르게 시행돼 창씨개명은 강제규정이 아니라 허가제였고, 지원병 제도 역시 전쟁 막판 8개월 전까지는 사실상 허가제였다. 1944년 대만 어린이의 취학률이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71.1%라는 사실도 근대화를 인정하는 근거로 작용했다. 역대 중국의 정치인도 대만을 자기 나라로 여기지 않아 카이로선언(1943년 11월) 전까지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은 국제사회에 대만 반환을 요구하지 않았고 마오쩌둥과 장제스 역시대만을 별개 국가로 여겼다. 대만은, 대만인가 중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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