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대원군의 서장자(庶長子) 이재선 역모사건 발각

대원군이 물러나고 민씨정권이 득세한 후, 개방과 개화가 어느덧 조선의 대세로 자리잡혀갈 즈음 대원군을 실각시켰던 양반 사대부들은 예기치 않은 사태 전개에 크게 당황했다. 조·일수호조약 체결을 계기로 “바른것은 지키고(衛正) 옳지않은 것은 물리친다(斥邪)”는 ‘위정척사(衛正斥邪)운동’이 다시 전국적으로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민씨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위정척사파와 탄압으로 맞서는 고종·민씨정권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을 즈음, 그동안 은둔하고 있던 대원군파가 비로소 몸을 움직였다. 고종을 폐위시키고 이재선을 왕으로 추대하는 역모를 꾸민 것이다. 이재선은 대원군의 서장자(庶長子·서출의 맏아들)라는 이유로 나이 40에도 별군직이란 하위직 벼슬에 머물러 늘 불만을 품어온 고종의 이복형이었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실패를 예상한 대원군은 역모 세력의 입막음을 시도했다. 이들에게 다른 죄명을 씌워 형조에 넘긴 것이다. 그러나 비밀은 곧 들통나 1881년 8월 29일, 이재선을 비롯한 관련자 30여 명이 체포됐다. 모두 능지처참됐고, 이재선은 유배 2개월 뒤 사사됐다. 민씨정권에게는 위정척사파와 대원군파를 일거에 제압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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