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2차대전 개전 후 독일·이탈리아·일본, 추축국 동맹

↑ 히틀러(오른쪽)와 무솔리니

 

2차대전이 발발하고 1년이 지난 1940년 9월 27일 히틀러가 또 다시 세계에 충격을 던져주었다.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 등 3국이 ‘유럽의 전쟁이나 중일전쟁에 관련되지 않은 어떤 국가에 의한 공격이 있을 경우 모든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수단을 동원해 상호지원할 것’을 공약하는 3국동맹에 서명한 것이다. ‘어떤 국가’란 미국을 지칭하는 표현이었다. 독일은 3국동맹 수년 전부터 이탈리아·일본과 각각의 협정을 맺었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동맹은 1936년 10월 25일에 서명된 ‘10월 의정서’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솔리니는 이 의정서를 가리켜 “협동과 평화의 의지에 고무된 전 유럽 국가들이 함께 협동할 수 있는 추축(樞軸·Axis)”이라고 언급함으로써 이후 독일․이탈리아 양국의 제휴관계는 ‘베를린·로마 추축’으로 불렸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1939년 5월 양국간의 관계를 10년 군사동맹 즉 ‘강철동맹’으로 발전시켰다. 무솔리니는 히틀러의 유럽 정복이 확실해진 1940년 6월에야 전쟁에 끼어들었지만 그래도 남쪽 방어에 한시름 놓게 되었다는 점에서 무솔리니는 히틀러에게 반가운 존재였다. 무솔리니 역시 히틀러로부터 큰 혜택을 입었다. 1943년 7월 연합군의 시칠리아섬 점령으로 감금되었을 때 히틀러 덕에 구출되어 북부 이탈리아에 세워진 허수아비 권좌에나마 다시 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과 일본의 동맹은 이탈리아와 양상이 달랐다. 양국의 동맹관계는 양국 사이에 가로놓인 소련에 대한 공동의 혐오에 의해서 비롯되었다. 1936년 로마·베를린 추축이 형성된지 1개월 후에 독일과 일본이 맺은 방공협정도 겉으로는 공산당의 파괴공작에 저항할 것을 다짐하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소련의 침공에 대항해 상호 지원하기로 한 약속이었다. 소련을 공동의 적으로 삼았으면서도 히틀러는 1939년 8월 일본과 상의도 없이 독·소불가침조약을 체결해 일본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1940년 9월 추축국 동맹을 맺을 때 일본은 히틀러의 성공을 이용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와 네덜란드령 동인도제도를 장악하려 했고, 히틀러는 일본이 싱가포르와 그밖의 영국 속령들을 공격함으로써 영국에 압력을 가해주기를 원했다. 일본은 1941년 5월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독소불가침조약에 대응했다. 히틀러가 소련과 전쟁을 시작했을 때 히틀러는 소련의 동쪽 국경을 공략해달라고 수차 요청했으나 일본은 미국과의 태평양전쟁을 우선해 일소불가침조약을 준수했다. 히틀러는 일본에게 소련 침공계획을 알려주지 않았고 일본 역시 진주만 공격을 독일에 사전 통보하지 않았음에도 일본이 진주만 공격을 개시했을 때 독일과 이탈리아는 3국동맹에 따라 1941년 12월 11일 미국에 선전포고했다. 그러나 이 결정 역시 소련침공 때보다 더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