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제시 오웬스 1936년 베를린올림픽 육상 4관왕에 올라

1935년 5월 25일, 제시 오웬스가 ‘빅 텐’(주요 10개 대학간 경기)에서 불과 45분만에 3개의 세계 신기록과 1개의 세계 타이기록을 세워 일약 미 육상계 최고의 유망주로 떠오른다. 이날 이후 오웬스는 ‘검은 탄환’으로 불리며 이듬해에 있을 베를린 올림픽 참가를 예약한다. 1936년의 베를린 올림픽은 히틀러가 아리안 민족의 우월성을 세계에 과시할 목적으로 치러졌다. 유대인을 경멸하고 흑인들을 조소한 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오웬스는 4개의 금메달을 땄다. 100m(8월3일), 멀리뛰기(4일), 200m(5일)에서 3개의 금메달을 따더니 8월 9일에는 400m 계주에서도 우승을 차지해 올림픽 역사상 육상부문 최초의 4관왕이 된다.

오웬스는 미국 등 반 나치 블록의 환호 속에 반 인종주의 상징이자 영웅으로 부상했다. 히틀러가 오웬스와의 악수를 피했다는 소문이 퍼진 것도 이 무렵이었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소문의 사연은 이랬다. 대회 첫 날인 8월 2일 오후, 히틀러는 독일의 육상 금메달리스트를 비롯 몇몇의 우승자를 VIP석으로 초대해 악수를 하고는 스타디움을 떠났다. 다른 스케줄 때문에 자리를 뜬 것이지만 미 언론들은 높이뛰기 정상에 오른 미국의 흑인 선수와 악수하기 싫어 자리를 떴다는 기사를 준비했다. 히틀러는 “올림픽 정신에 위배된다”는 올림픽위원회의 지적을 받고서 더 이상 선수들을 불러 악수를 청하지 않았으나 이것은 오웬스와 악수를 거절했다는 소문으로 증폭됐다. 훗날 오웬스가 자서전을 통해 “내가 VIP석 앞을 지날 때 히틀러가 일어나 자신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어 자신도 히틀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고 밝혔음에도 소문은 오래도록 사실인 양 돌아다녔다. 오웬스는 베를린 시민들로부터도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미국의 인종차별은 여전했고, 오웬스는 이미 이용 가치가 없는 영웅일 뿐이었다. 호텔 환영식에 참석할 때는 화물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고, 루스벨트 대통령은 백악관 초청은커녕 축하의 말조차 건네지 않았다. 영웅은 말, 개, 오토바이 등과 달리기 경주 흥행을 벌여 생계를 꾸려나갈 정도로 생활에 쪼들렸다. 흑인이 진정한 스포츠 영웅으로 평가받기까지에는 좀더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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