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일본 자위대 발족

2차대전 패배로 무장을 해제당한 일본이 재무장을 하게된 계기는 공교롭게도 6·25전쟁이었다. 일본에 주둔 중이던 미 7개 사단 8만 병력 대부분이 6·25전쟁에 긴급 투입돼 일본 전역이 치안공백과 안보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되자 1950년 7월 8일 맥아더가 일본 총리 요시다 시게루에게 ‘일본 경찰력 증강에 관한 서한’을 보낸 것이 시작이었다. 7만5000명의 경찰예비대를 신설하고 8000명의 해상보안청 요원을 증강하라는 내용이었다. 이를 근거로 일본은 8월 10일 경찰예비대령을 공포·시행하고 8월 23일 7000여 명의 병력을 경찰예비대에 수용함으로써 패전 5년 만에 다시 준(準) 군사력을 갖추게 됐다. 재군비가 시작된 것이다.

1952년 8월 1일 보안청이 설치되자 경찰예비대는 보안대로, 해상보안청 산하에 신설된 해상경비대는 경비대로 이름을 바꿔 보안청 산하에 자리를 잡았다. 1952년 4월 발효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미·일안전보장조약에 따른 결정이었다. 경찰예비대 창설이 방위력 증강을 위한 1단계 조치였다면 보안대로의 개편은 2단계 조치였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재군비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것은 1954년 6월 자위대법과 방위청신설법이 공포되면서였다. 7월 1일, 마침내 육·해·공 3군의 자위대(自衛隊)가 발족되고 상급기관인 방위청이 설치됐다. 육상 12만6487명, 해상 4105명, 항공 5702명으로 구성된 정예부대였다.

그러나 말 그대로 ‘스스로를 지키는 군대’로 출발한 자위대는 창설 60년이 지난 2016년 현재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반세기만에 세계 5대 강군 대열에 올랐다. 숫자상으로는 육상자위대 15만명을 포함해 24만명에 불과하지만 매년 엄청난 비용을 군비확충에 쏟아부어 한반도 정찰위성, 최신예 이지스함, 미사일 방어(MD)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장비성능은 미국 다음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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