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영국 여성참정권운동론자, 국왕 소유의 말고삐를 잡으려다 말발굽에 밟혀 사망

영국의 여성참정권운동은 1903년 팽크허스트가 ‘여성사회정치연맹(WSPU)’을 결성하면서 점잖던 토론의 시대를 끝내고 과격한 투쟁방식으로 전개된다. 여성들은 화랑에 침입해 그림을 훼손하고 전신용 전선을 절단하고 철도역과 축구장에 불을 질렀다. 교회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이들의 요구는 “남성이 누리는 것만큼의 권리를 여성에게도 달라”는 것이었지만 남성들이 조용히 있을 리 없었다. 남성들은 신문과 교회 설교 등을 이용해 “여성은 비논리적이고 변덕스러우며 투표에 따르는 무거운 책임을 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부도 곤혹스러웠다. 관대하면 약해보였고 탄압하면 영국의 양심이 아팠다.

여성참정권운동은 1913년 6월 4일 7만5000여 명의 관중이 운집한 런던 남부 앱섬다운스 경마장에서 절정을 이뤘다. 말들이 마지막 코너를 돌아 결승점을 향해 질주하고 있을 때 갑자기 팽크허스트의 열렬한 추종자 에밀리 와일딩 데이비슨이 질풍처럼 내달리는 국왕 소유의 말고삐를 잡으려다 발굽에 밟혀 4일 뒤 숨진 것이다. 소지품에서 왕복 기차표가 발견되고 오빠가 법정에서 “사고였다”고 진술하는 등 자살 여부에 대해 논란이 없진 않았지만 여성들은 데이비슨을 순교자로 추앙했다.

여성들의 성난 외침은 데이비슨의 죽음으로 활화산처럼 폭발했다. 그러나 참정권을 쟁취하는 데는 1차대전이라는 큰 변화가 필요했다. 이듬해 전쟁이 발발하자 운동가들은 전진을 중단하고 전쟁 지원에 나섰다. 전쟁기금을 모금하고 여성의 전시산업체 동원을 독려하는 등 어려움에 처한 조국을 구하려는 그들의 노력이 남성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1918년 1월 마침내 영국 정부가 30세, 중산층 이상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했다. 그러나 남성과 동등한 투표권을 보장받기까지는 1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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