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美 CNN 개국… 24시간동안 뉴스만 방송하는 케이블 방송의 등장

↑ 1980년 6월 1일 CNN 개국 첫 방송 모습

 

사례 하나. 1989년 파나마에 머물던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이 호텔방을 나설 때 강건너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상황이 궁금했던 카터는 다시 호텔방으로 돌아와 CNN을 틀었다. 사례 둘. 1989년 12월 부시와 고르바초프는 몰타에서 미·소정상회담을 하며 CNN을 통해 그들의 회담 상황이 전 세계에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지켜보면서 회담 페이스를 조절했다.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던 때 CNN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가운데 일부이다.

ABC, NBC, CBS 등 3대 네트워크가 사실상 미국의 TV 시장을 장악하고 있을 때 남부의 허풍쟁이 테드 터너가 전혀 새로운 방식의 방송국을 선보였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24시간동안 뉴스만을 방송하는 케이블 방송국이었다. 터너는 아버지의 광고회사를 매각한 자금을 갖고 방송에 뛰어들었지만 기실 그 자신은 뉴스의 문외한이었다. 뉴욕이나 워싱턴같은 정치·경제의 중심지도 아닌 남부 애틀랜타의 지역채널을 인수해 방송국을 개국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는 놀림감이었다.

그러나 터너는 강행했다. 1980년 6월 1일, ‘뉴스 속의 뉴스’를 표방하는 ‘CNN’이 첫 전파를 쏘아올렸다. 대통령 ‘풀’ 취재단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인터뷰 요청을 한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로부터 “무슨 포르노 채널이냐?”며 거절당하는 등 무시와 냉소를 받았다. 예상대로 첫해에만 2억5000만달러의 적자를 냈다. 그러나 CNN에는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터너가 있었다. 영역도 넓혀나갔다. CNN에서 장시간의 특집뉴스를 내보내고 있을 때 그 시간의 주요뉴스를 볼 수 없다는 것이 결점으로 부각되자 1982년에는 항상 주요 뉴스만을 내보내는 ‘CNN2’를 설립해 이듬해 ‘헤드라인 뉴스’로 이름을 바꾸었고, 1985년에는 유럽에 CNN 전파를 내보내는 ‘CNN 인터내셔널(CNN I)’를 만들었다. 생방송의 매력이 점차 시청자들을 끌어모았다. “앵커가 아니라 뉴스 그 자체가 스타가 되어야 한다”는 CNN의 방송철학도 시청자들이 CNN을 찾게 했다.

챌린저호 폭파(1986.1), 천안문사태(1989.6), 미국의 파나마 침공(1989.12) 등이 현장 생방송으로 시시각각 보도되면서 사람들은 CNN에 채널을 고정했다. 1990년의 걸프전은 CNN이 지구촌 뉴스의 열쇠로 자리를 굳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전 세계인들이 마치 영화를 보듯 안방 소파에서 느긋이 영화를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CNN 때문이었다. 비극적인 전쟁 이미지까지 바꿔버린 것이다. 미국의 포탄이 이라크를 초토화시켰다면 CNN은 전파로 전 세계에 융단폭격을 가했다.

방송초기 원래 이름보다는 ‘Chicken Noodle Network’(애송이 멍청이 뉴스)로 불리던 CNN은 어느덧 민첩한 뉴스보도로 머지않아 ‘Crisis News(위기 뉴스) Network’이란 별명을 얻었다. 생중계에는 강하지만 분석적 보도에 약하고 하루종일 같은 내용만 되풀이한다는 지적을 받으면서도 CNN은 24시간 생방송 뉴스의 절대강자로 군림했다. CNN에 경쟁자가 등장한 것은 1996년. 그것도 한꺼번에 둘이었다. 7월 마이크로소프트(MS)사와 NBC가 합작한 ‘MSNBC’가 첫 방송을 시작하고, 10월 ‘미디어 제왕’ 루퍼트 머독이 설립한 ‘폭스 뉴스’가 첫 전파를 쏘았다. 여전히 승승장구하던 CNN이 덜미를 잡힌 것은 2002년 초였다. 그때부터 ‘폭스 뉴스’에 빼앗긴 선두자리를 지금까지도 탈환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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