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2차대전 연합군, 덩케르크 해안에서 철수

1939년 9월 폴란드를 전격 침공한 히틀러는 서유럽과의 전면전에 앞서 침공시기와 루트를 저울질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 북쪽을 공략하는 북쪽 루트, 아르덴 삼림지대를 뚫는 중앙 루트, 마지노선을 지나는 남쪽 루트, 히틀러의 선택지는 이렇게 세 가지였다. 마지노선은 난공불락의 요새였으나 독일과의 국경에서만 장벽이었을 뿐 독일이 북쪽 벨기에를 거쳐 남하할 경우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독일과 벨기에 경계에는 울창한 아르덴 삼림지대가 가로막고 있어 프랑스·영국·벨기에군으로 구성된 연합군은 주병력을 북쪽 방비에 집중 배치했다. 그러나 히틀러가 북쪽 루트와 아르덴 삼림지대까지 침공 루트로 선택하면서 연합군은 혼란에 빠졌다.

1940년 5월 10일 아르덴으로 진격한 독일 기갑부대는 이틀 만에 아르덴 지역을 돌파하고 빠른 속도로 서진, 20일쯤 프랑스 해안에 다다랐다. 결국 남북의 두 독일군 세력에 의해 두동강난 연합군은 좁혀오는 독일군을 피해 프랑스 해안 덩케르크로 집결했다. 3면으로 포위된 가운데 영국으로의 탈출을 시도했으나 마땅한 엄호물과 은폐물이 없어 성공 가능성은 희박해보였다. 그러나 5월 24일 히틀러가 진격 중지 명령을 내리면서 기적이 일어났다. 기갑사단의 지나치게 빠른 진격속도와 넓어지는 전선 확대가 히틀러의 오판을 부른 것이다. “마무리를 공군에 맡겨달라”는 공군원수 헤르만 괴링의 설득도 오판을 부채질했다.

영국 전투기들이 상공에서 독일 전투기의 공습을 막는 동안 구축함과 여객선 등 700여 척의 잡동사니 배들이 군인들을 부지런히 영국으로 실어날랐다. 5월 26일 오후 4시쯤 “전군은 즉각 공격을 재개하라”는 히틀러의 전문이 날아들었으나 이미 때가 늦었다. 결과는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19만8000명의 영국군을 포함, 34만 명의 연합군은 6월 4일 덩케르크가 함락될 때까지 무사히 영국으로 빠져나왔다. 패전 후 독일 장군들은 이구동성으로 증언한다. “독일은 히틀러가 진격중지 명령을 내린 그날 전쟁에 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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