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남북 예멘, 분단 150년만에 통일

아라비아 남서부에 위치한 예멘의 분단 역사는 1839년 영국이 예멘의 동서무역 중계항 아덴을 점령하면서 시작된다. 이때부터 영국의 점령지가 된 남예멘과, 그로부터 300년 전인 1517년부터 예멘을 지배해온 오스만투르크의 북예멘으로 갈렸기 때문이다. 북예멘은 터키가 1차대전에서 패함에 따라 1918년 독립 후 왕정을 유지하다가 1962년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젊은 장교들의 쿠데타로 자본주의 국가 ‘예멘아랍공화국’이 됐고, 남예멘은 1967년 11월 영국이 이 지역에서 철수하고 ‘민족자유전선’이 권력을 잡으면서 사회주의 국가 ‘남예멘 인민공화국’이 됐다.

남북예멘에 통일논의가 시작된 것은 1972년 10월 카이로에서 남북예멘 정상이 만나면서였다. 이후 18년간 이어질 통일 논의의 첫 단추였다. 그러나 남북예멘 정치인들의 이해 대립과 사우디아라비아·소련의 개입으로 통일은 요원하게 느껴졌다. 남북 예멘 양쪽에서 쿠데타가 일어나고 대통령이 피살되는 등 정정이 불안한 가운데에서도 양국은 1977년까지 5차례 정상회담을 가졌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전기가 마련된 것은 1979년이었다. 양측이 국경분쟁을 일으키자 아랍연맹이 중재에 나선 것이다. 그 결과 1979년 3월 압둘라 살레흐 북예멘 대통령과 이스마일 남예멘 대통령이 아랍연맹에 떠밀려 쿠웨이트에서 얼굴을 맞대고 앉았다. 양 정상은 통일국가 헌법안을 마련하자는 데까지 합의, 통일 논의를 가속화했다. 이후 특사의 상호방문이 이뤄지고 급기야 1981년 살레흐 대통령이 남예멘을 방문하면서 통일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2년 전 협상테이블에 함께 앉았던 이스마일 남예멘 대통령은 이미 권력투쟁에 밀려 모스크바로 떠나고 없었지만 남예멘의 새로운 파트너 역시 통일 논의에 열의를 보였다. 대규모 석유가 국경지역에 매장된 사실이 알려진 것도 통일논의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1988년 5월 양국은 정상회담을 통해 국경지대의 석유를 공동개발하기로 합의하기에 이르렀고 이는 2년 뒤 실질적인 통일로 이어지는 이정표가 됐다.

그리고 1990년 5월 22일 양국은 마침내 분단 150년만에 통일을 일궈냈다. 남북예멘 모두 경제적 궁핍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 통일의 1차 목표였지만 특히 남예멘은 유력한 후견자였던 소련이 붕괴되고 사회주의 정책이 실패하면서 통일이 절실했다. 통일국가 이름은 ‘예멘 공화국’으로 정해졌고 대통령은 ‘통일의 주역’ 북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흐가 맡았다. 그러나 남북의 기계적인 권력배분은 지도부의 분열상을 노출시켰고 상대적 빈곤에 시달려온 남쪽 주민들이 경제적 불만을 표출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통일 4년만인 1994년 5월, 남예멘이 북예멘을 공격하고 분리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7월 7일 북예멘이 남예멘의 아덴을 점령함으로써 다시 통일을 이뤘다. 내전 후 대통령 살레흐는 1999년 최초의 국민투표로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96.3%의 득표율로 재선되었고, 2001년 2월 헌법을 개정하여 대통령 임기를 5년에서 7년으로, 국회의원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연장하는 등 집권기반을 강화하였다. 하지만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내전이 끊이지 않아 예멘의 완전한 통일은 아직은 미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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