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제1차 중동전 발발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포한 그날 밤. 아랍제국이 이스라엘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작전은 그럴 듯했으나 단순했다. 남쪽의 이집트군과 동쪽의 트랜스요르단(요르단강 동쪽 팔레스타인 지역)의 아랍군이 동시에 이스라엘로 진격한다는 계획이었다. 북쪽에서도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군대가 진격을 준비했다. 아랍은 2만 여명의 정예 병력에 보급품·무기까지 충분해 느긋한 입장이었다. 반면 이스라엘은 병사수가 아랍보다 많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장비도 빈약했고 병사도 정예 병력이 아니었다. 믿을 것이라곤 죽음을 무릅쓴 굳은 의지뿐이었다. 승전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으나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결코 물러설 수 없다는 결사항전의 자세, 이스라엘의 힘이었고 각오였다.

5월 14일 밤, 이집트군이 이스라엘 네게브 사막으로 진격했으나 쉽게 승리하리라는 장담과 달리 이스라엘 정착촌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전투는 바로 교착상태에 빠졌다. 동부전선에서는 예루살렘의 신도시를 포위하고 구도시를 점령하는 인상적인 전과를 올렸으나 이마저도 곧 이스라엘에 빼앗겨 전쟁은 1개월간 휴전상태에 들어갔다. 휴전은 이스라엘에 ‘휴전 이후의 전쟁’을 준비할 수 있는 천금 같은 시간이었고 아랍은 내분에 휩싸인 시간이었다. 최신 무기들이 이스라엘에 속속 들어왔고 새로운 부대가 편성됐다.

7월 8일 전투가 재개됐을 때 이스라엘군은 2개월 전의 이스라엘군이 아니었다. 이스라엘군이 진격을 거듭할 즈음 유엔의 휴전 조치로 전투가 다시 중단됐으나 이미 승패가 갈린 뒤였고 이스라엘에는 또 한번 힘을 비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전쟁 이후 이스라엘의 영토는 3분의1이나 늘어났다. 이후 1956년, 1967년, 1973년 3번에 걸친 전쟁도 이스라엘에게는 영토를 늘려준 ‘고마운 전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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