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미군, 베트남에서 완전 철수… 베트남전쟁 사실상 막 내려

1973년 3월 29일, 마침내 미군이 떠났다. 이날 2501명의 미 해병대가 19대의 비행기에 실려 마지막으로 베트남 땅을 떠남으로써 길게는 28년 짧게는 10년에 걸친 베트남 전쟁이 사실상 막을 내렸다. 그러나 남·북 베트남인은 2년간 더 총부리를 겨눠야 했고 이로 인해 더 많은 사람이 죽어야 했다. 미국의 베트남전 패배는 미 정부와 국민이 너나없이 전쟁을 정당화하고 승리를 자신한 데서 온 오판의 결과다. 미국은 베트남을 시작으로 동남아시아 전체가 빨개질 것을 우려했고, 미 국민은 정부의 과장되거나 축소된 발표만 믿고 정부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나 “자유세계의 수호자가 되겠노라”는 미 정부의 빗나간 자부심은 결국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수백만 베트남인의 목숨만 앗아간 채 끝을 맺었다.

소련의 팽창정책에 맞서야 했던 미·소 냉전기라 해서, 또 도미노이론이 신주처럼 받들어졌던 그런 시대였다고 해서 전쟁의 모든 것이 합리화될 수는 없다. 어찌 보면 동남아시아의 일개 변방국이 초강대국 미국의 뜻을 거스른 것부터가 화근이었는지 모른다. 100년간의 프랑스 식민지배를 이겨낸 자존심 강한 베트남인이었지만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무력 앞에선 초토화를 피할 수 없었다.

미국과 호찌민이 처음부터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니다. 1945년 9월 베트남민주공화국의 독립식 때 미국 대표가 축하 연설을 하고 호찌민 역시 미국에 원조를 구할 만큼 양국은 서로를 필요로 했다. 그러나 중국에서 마오쩌둥이 승리하고 한국에 전쟁이 발발하면서 자칫 동남아까지 소련의 수중에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유령처럼 미국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구체적인 목표나 결정적인 참전의 계기 없이 시작한 모험은 결국 미국을 수렁 속으로 빠뜨려 5만7000명의 미국 젊은이들을 불귀의 객으로 만들고 말았다. 5명의 대통령도 방향감각을 잃고 베트남전에 휘둘렸다.

전쟁은 1964년 8월 미국이 통킹만을 폭격하고 이듬해 미 해병여단이 베트남에 상륙하면서 본격화됐다. 미국인은 연일 이어지는 승전보에 승리를 낙관했다. 그러나 1968년 1월의 케산전투와 구정공세를 계기로 여론이 돌변하면서 결국 미국은 베트남으로부터 황망하게 빠져나와야 했다. 베트남에 가해진 상처가 너무 크고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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