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최초 영세자 이승훈 순교

1801년 2월 26일, 이승훈·정약종 등 초창기 천주교 지도자 6명이 신유박해(辛酉迫害)로 서소문 밖 네거리(지금의 서소문공원)에서 참수됐다. 청나라에서 한국인 최초로 영세(1784년)를 받고, 국내에서도 최초의 천주교회를 설립(1785년)한 이승훈은 태어난 곳도 반석골(지금의 중구 중림동)이었고 세례명도 반석(베드로)이었다. 탄압이 거세질 때마다 잠시 배교(背敎)로 위험을 피해갔지만 결국 그에게 주어진 운명은 한국 천주교의 반석이 되는 것이었다. 아들 신규와 손자 재의가 1866년에, 증손 연구와 균구가 1871년에 순교해 4대에 걸친 순교자 집안이 됐다.

천주교가 전래된 이후 첫 대규모 박해로 기록된 신유박해는 천주신앙을 중심으로 신서파(信西派)와 공서파(攻西派)가 대립하던 민감한 시기에 정약종이 천주교 서적과 성물 등을 옮기다 발각된 것이 발단이 됐지만, 남인 시파의 기세를 꺾으려는 노론 벽파의 정치적 공세 성격도 짙었다. 신서파에 온건한 정책을 펴오던 정조가 1800년 죽고 벽파에 치우친 영조비 정순왕후가 어린 순조의 수렴청정을 막 시작한 것도 박해를 부추겼다. 300여 명의 순교로 천주교는 큰 타격을 입었지만, 살아남은 신도들이 산간 벽지로 숨어들어 오히려 천주신앙의 전국적인 확산을 촉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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