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중앙정보부, 위장간첩 이수근 체포

콧수염과 가발, 위조여권을 소지한 이수근이 처조카인 배경옥과 함께 김포공항을 빠져나간 것은 1969년 1월 27일이었다. 직항로가 없어 일본과 대만을 거쳐 홍콩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이 다 되어서였다. 이틀후인 1월 29일, 홍콩 카이탁 공항에서 캄보디아로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탑승하려했으나 수명의 한국인들에게 붙잡혀 홍콩 경찰에 넘겨졌다. 탈출 다음날에야 이 사실을 안 중앙정보부가 부랴부랴 재외 공관에 보낸 긴급전문을 받고 공항에서 이수근을 기다리고 있던 한국 영사관 직원들이었다.

그러나 홍콩 경찰이 홍콩법을 어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수근을 강제출국(31일)시키는 바람에 체포 장소는 베트남 사이공으로 변경됐고, 사이공 주재 이대용 공사가 그 역을 맡았다. 결국 1월 31일 사이공 탄손누트공항의 캐세이 퍼시픽 항공기 안에서 체포돼 다시 서울로 끌려온 이수근은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스스로 항소를 포기, 두달도 채 안돼 사형에 처해졌다. 고문을 못이긴 배경옥은 북의 지령을 받아 공작활동을 한 간첩으로 둔갑, 무기형을 선고받았다.

이에앞서 이수근은 2년 전 1967년 3월 22일, 판문점에서 군사정전위 회의를 마치고 귀환하려는 유엔군측 대표의 차에 뛰어올라 귀순했었다. 북한 경비병이 쏘는 총격을 뒤로한 채 불과 15초만에 극적으로 탈출한 이수근을, 우리 언론은 ‘자유대한의 승리’라며 치켜세웠고, 시민들도 환영대회를 열어 성금을 모아주었다. 그러나 이수근은 귀순 678일 만에 다시 남에서의 탈출을 시도했다. 중정의 발표로 ‘이수근은 위장간첩’이라는 도식이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됐지만 1989년 월간조선 조갑제 기자가 기사를 통해 “이수근은 남도, 북도 아닌 제3국으로 가기를 희망했다”고 주장하고 기사는 곧 사실로 판명되었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