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유엔 원자력위원회 설치 결정

1946년 1월 24일, 런던에서 열린 제1차 유엔총회에서 ‘원자력위원회(UNAEC)’ 설치가 결정됐다. 6월24일 뉴욕에서 첫 회의가 열렸으나 ‘국제원자력개발기관(IADA)’으로 명칭만 바뀌었을 뿐 소련이 원자력 관리에 대한 미국의 제안을 거부하는 바람에 아무런 결론도 맺지 못하고 폐회돼 순탄치 않은 앞날을 예고했다. 미국의 안(案)은 “세계각국이 원자력을 무기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보유하고 있는 원자폭탄을 파기할 용의가 있고, 이를 담보하기 위해 원자력개발에 관한 모든 과정을 ‘IADA’ 관리 하에 두자”는 것이었으나, 소련 입장에서는 미국이 사찰 명목으로 소련의 원폭 제조상황을 파악하려한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소련이 미국의 안을 거부하자 미국은 일주일 뒤인 7월 1일, 남태평양 비키니섬에서 공개적으로 핵실험을 감행해 소련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유일한 핵보유국 미국이 아직 원폭을 보유하지 못한 소련에 일종의 시위를 한 것이다. 3년간 갑론을박하다 소련이 원폭실험에 성공(1949.8.29)하자 유엔 안보리는 1949년 11월 미국의 안을 부결시켜 약화된 미국의 위상을 깨닫게 해주었다.

6·25 발발도 미국으로 하여금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명분을 포기하게 했다. 이런 가운데 1952년 10월 영국의 원폭실험 성공으로 원자력이 더이상 미룰 수 없는 미·소 양국의 중요한 현안으로 떠오르자 핵보유국 소련은 과거 미국의 안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바꿨다.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1957년 7월에 발족된 것이 오늘날의 ‘국제원자력기구(IAEA)’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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