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걸프전 발발

1991년 1월 17일 새벽 3시, 달없는 그믐밤에 첫 공습이 시작되면서 걸프전의 막이 올랐다. ‘사막의 폭풍’(작전명)은 1990년 8월 2일 쿠웨이트를 전격 침공한 사담 후세인에 대한 미국의 응징이었다. 유엔 안보리가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철수’를 결의(8월 3일)하고 ‘무역금지 조치’를 선포(8월 6일)하며 압력을 가했으나 후세인은 철수는커녕 쿠웨이트를 이라크의 19번째 주로 통합하며 유엔의 결의를 무시하는 전략을 폈다. 11월 29일 유엔 안보리가 또다시 ‘1991년 1월 15일까지 철수하라’고 최후통첩을 보냈지만 후세인에게는 마이동풍이었다.

전쟁에는 미군 54만 명을 위시해 34개국 70만 명의 다국적군이 투입됐으나 사실상 미국의 전쟁이었다. 개전 초기 미국은 이라크 레이더 시설에 집중적인 미사일 공격을 퍼푸어 방공망을 무력화시킨 뒤 F-15 전투기와 F-117 스텔스 폭격기를 동원한 대량 공중폭격으로 이라크를 초토화했다. 후세인은 간간이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를 향해 소련제 스커드 미사일을 발사했으나 번번이 미국의 패트리어트 미사일에 차단돼 효력이 없었다. 후퇴하면서 700여 개의 유정에 불을 놓으며 저항했으나 100시간에 걸친 미군의 지상공격이 시작되면서 맥도 못추고 패퇴, 결국 전쟁개시 43일 만인 2월 28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걸프전은 역대 전쟁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됐다. 병사들이 컴퓨터 화면 속에 표시된 좌표를 겨냥해 단추를 누르면 미사일이 발사되는 마치 컴퓨터게임같은 전쟁이었고, CNN 피터 아네트의 현장 생중계 보도로 전 세계 사람들은 마치 안방에서 영화를 감상하듯 전쟁을 구경했다. 이라크군 5만명~10만명이 목숨을 잃고 민간인도 오폭으로 다수의 희생자를 낸데 비해 다국적군은 전투병력 130여명을 포함해 230여 명 밖에 죽지 않아 일방적인 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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