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가 처음 천연두 접종법을 발견한 이래 최대 업적
소아마비는 폴리오 바이러스가 사람의 운동 영역을 지배하는 신경 부위에 침범한 뒤 근육기능장애와 사지마비 등을 동반하는 질환이다. 자연계에서 사람만이 유일한 숙주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접종을 받으면 사실상 지구상에서 완전히 멸종시킬 수 있는 질병이기도 하다.
소아마비의 원인과 증상은 많은 연구자의 노력에 힘입어 20세기 중반까지 대부분 밝혀졌으나 소아마비를 예방하는 백신 개발은 몇몇 장애물이 가로막았다. 그 중에서도 세균과는 달리 값비싼 실험용 영장류의 신경조직에서만 바이러스를 배양해야 한다는 게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다행히 1948년 하버드대 의과대 교수 존 엔더스를 비롯해 토머스 웰러, 프레드릭 로빈스 등 3명이 폴리오 바이러스가 신경조직이 아닌 다른 조직에서도 성장․발육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시험관 속에서 폴리오 바이러스를 배양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백신 개발은 탄력을 받았다. 이들 3명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공 바이러스 배양법을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아 195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폴리오 바이러스의 배양이 가능해지자 백신 개발은 막대한 연구비와 훌륭한 동물실험실이 없어도 누구나 가능하게 되었다. 당시 백신 연구에 뛰어든 연구자 중에는 조너스 소크(1914~1995)와 앨버트 세이빈(1906~1993)도 있었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았다. 러시아에 뿌리를 둔 유대인의 후손이고, 뉴욕대를 졸업하고 임상의사의 길을 걷다가 바이러스 연구로 진로를 바꾼 게 같았다. 차이가 있다면 소크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세이빈은 러시아(지금의 폴란드령)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성장했다는 정도다.
194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 두 사람의 연구 경쟁은 부작용이 없진 않았지만 백신 개발 시기를 앞당겼다는 점에서 인류에게는 다행이었다. 당시 백신 개발은 사균(死菌) 방식과 약독화한 생균(生菌) 방식의 두 갈래로 진행되었다.
접종 받으면 사실상 지구상에서 완전히 멸종시킬 수 있는 질병
소크는 사균 방식을 선택했다. 폴리오 바이러스를 배양·증식시켜 다량의 바이러스를 확보한 다음, 포르말린을 이용해 바이러스를 불활성화시켜 백신을 제조하는 방법이었다. 소크가 마침내 사균 방식의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 것은 1952년 3월이었다.
그는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 성공을 확신한 후 공개적으로 지원자를 모집해 효과를 검증했다. 1952년 미국에서만 5만 8,000여 명의 폴리오 감염자가 발생했는데, 이 가운데 3,100여 명이 사망하고 2만 1,200여 명이 마비 증세를 보일 정도로 소아마비가 기승을 부렸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어린이였다.
다급해진 미국의 국립소아마비재단은 소크 백신의 안정성과 유효성을 입증하기 위해 전국의 어린이 1만 여 명에게 소크 백신을 접종했다. 1954년 4월부터는 6~9세의 어린이 180만 명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접종을 실시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임상실험이었다.
실험 결과는 소아마비를 앓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서거 10주기일인 1955년 4월 12일 발표되었다. 발표에 따르면 효과는 전반적으로 성공적이었다. 일부 백신 제조소에서 잘못 만든 백신 때문에 200명 이상이 폴리오에 걸려 그 중 150명에게 마비 증세가 나타나고 1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으나 전체적으로는 ‘안전하면서도 효과가 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언론은 ‘150년 전 제너가 처음 천연두 접종법을 발견한 이래 최대 업적’이라고 평가했고 소크는 하루아침에 소아마비를 정복한 위대한 영웅 대접을 받았다.
문제는 소크 백신이 사균 방식이어서 면역 효과가 떨어지고 주사 방식이어서 사용이 불편하다는 점이었다. 앨버트 세이빈은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구원투수 같은 존재였다. 세이빈은 폴리오 바이러스가 입을 통해 들어와 소화 계통으로 침입한다는 기존의 연구성과에 착안해 살아 있는 백신, 즉 생균 백신 개발에 매달렸다.
그 결과 소화 계통을 통해 흡수되는 살아있는 경구용 백신의 면역력이 평생 지속되고 더 강력한 효과를 지닌다는 사실을 알아내 1955년 살아 있는 바이러스의 독성을 약화시킨 ‘약독화한 생균’ 방식으로 새로운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했다. ‘세이빈 백신’은 정기적으로 주사를 접종해야 하는 ‘소크 백신’과 달리 시럽과 과자 모양의 먹는 백신이어서 사용이 간편하고 면역 효과가 크다는 게 장점이었다. 하지만 이미 소크의 사백신 접종 캠페인이 미국에서 대대적으로 추진 중이었기 때문에 생백신은 설 자리가 없었다. 게다가 생백신은 사백신보다 더 위험해 보였고 미 정부로서는 소크 백신이 준비되어 있으니 급할 것도 없었다.
생백신도 안전하고 효과가 높은 것으로 밝혀져
세이빈은 1956년 자신이 개발한 백신을 원숭이와 100명이 넘는 지원자를 상대로 실험했다. 그 결과 소아마비 항체가 증가하고 불필요한 감염은 관찰되지 않았다. 1958년에는 소아마비 발병이 심각한 콩고에서 성능실험을 하고, 소련 과학자들의 협조를 얻어 소련에서도 백신의 효능과 안정성을 검증했다. 미국에서는 1960년 신시내티에서 어린이를 상대로 효과 검증을 받았다.
임상실험을 통해 생백신도 안전하고 효과가 높은 것으로 밝혀지자 미 정부는 소크 백신과 세이빈 백신 사이의 우위를 비교해야 하는 고민에 빠졌다. 그런 와중에 2,500여 명(1957)으로 바닥을 친 마비환자가 5,500명(1959)으로 급증했다. 그러자 편리성과 효과면에서 호평을 받은 세이빈의 백신이 주목을 끌었다.
1961년 세이빈 백신이 소크 백신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판정을 받고 1962년 미국 내에서 시판이 허용된 후부터는 가격이 비싸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소크 백신보다 널리 보급되었다. 1970년대에는 국제적 표준으로도 자리를 잡았다. 소크도 세이빈도 최종 승자로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두 사람 모두 백신에 대한 특허를 내지 않은 덕에 전 세계 어린이는 백신을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1950년대까지는 매년 2,000여 명의 환자가 발생했으나 백신을 접종하기 시작한 1960년대 후반부터 연간 200명 정도로 감소하다가 1984년부터는 단 한 명의 환자도 발생하지 않아 2000년 10월, 소아마비 종식을 공식 선언했다. 전 세계적으로는 2012년 현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세 나라만 제외하고 소아마비가 종식된 상태다. 세 나라에서 완전 접종이 이뤄지고 환자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게 되면 폴리오는 천연두에 이어 지구상에서 인간이 퇴치하는 두 번째 질병이 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