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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이 정도는 알고 떠나자⑥] 로마(3) : 미켈란젤로, 로마 대약탈, 스위스 근위대, 로마 4대 성당

by 김지지

 

<미켈란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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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4대 성당>과 <로마 약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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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예술가들이 본받아야 할 전형적인 모범으로 신이 세상에 내려준 자”

 

조르조 바사리가 르네상스 시기를 기록한 ‘미술가 열전’에 미켈란젤로에 대한 이런 찬사가 나온다. “미켈란젤로는 예술가들이 본받아야 할 전형적인 모범으로 신이 세상에 내려준 자이다. 예술가들은 미켈란젤로의 행동으로부터 삶의 방법을 배우고, 그의 작품을 통해 진정으로 훌륭한 장인 역할을 어떻게 수행할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미켈란젤로 자화상

 

미켈란젤로는 피렌체에서 동쪽으로 약 100㎞ 정도 떨어진 카센티노의 카프레세에서 퇴락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미켈란젤로가 태어난 것을 기념해 이 지역의 지금 이름은 카프레세 미켈란젤로다. 미켈란젤로는 어머니가 6살 때 병사해 유모의 손에 키워졌다. 유모의 남편이 석수여서 어려서부터 조각과 친숙하고 그림에도 재주가 있어 틈만 나면 그림을 그렸다.

아버지는 미켈란젤로가 13살 때 피렌체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도메니코 기를란다요(1449~1494)의 공방에 아들을 맡겼다. 미켈란젤로는 15살 때인 1490년 그의 재능을 알아본 메디치 가의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발탁되어 메디치 가문이 설립한 예술 아카데미를 드나들었다. 로렌초는 메디치 궁에 거처를 마련해주고 자기 아들들과 함께 생활하도록 했다. 아들 중에는 훗날 교황 레오 10세가 될 조반니도 있었다.

당시 로렌초는 플라톤 학파를 부활하기 위해 예술 아카데미를 운영했다. 플라톤에 심취한 인문주의자들과 예술가들을 수시로 초대해 토론을 하고 만찬을 즐겼다. 미켈란젤로는 로렌초를 따라 모임에 참석, 당대 최고의 인문학자, 철학자들과 함께 식사하고 대화하고 토론했다. 틈틈이 메디치 궁 정원에 있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조각상들을 감상하면서 조각에 대한 안목을 넓히고 실력을 연마했다.

하지만 로렌초 데 메디치가 1492년에 죽고 그의 무능한 아들 피에로 데 메디치가 실권을 잡아 피렌체의 정국이 불안해지자 21살이던 1496년 6월 로마로 갔다. 그리고 ‘피에타’(174㎝×195㎝·1498~1499) 조각상을 완성했다. ‘피에타’는 미켈란젤로를 르네상스 최고의 조각가로 우뚝 서게 한 출세작이 되었다. 피에타는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슬퍼하는 모습을 묘사한 작품을 통칭한다. 조르조 바사리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보고 “조각이라는 예술의 모든 가능성과 힘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그런데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피에타는 하나 더 있다. 현재 밀라노 스포르체스코 성에 있는 ‘론다니니 피에타’인데 마리아가 의자에 앉아 있는 좌상 피에타가 아니라 몸을 세운 입상 조각이다. 이 피에타는 미켈란젤로가 70대 초반에 시작했으나 작업을 자주 중단하다가 1564년 89세로 숨져 결국 완성되지 못했다. 이 피에타는 미켈란젤로가 로마에서 숨진 뒤 당시 예술품 수집가이던 마르키스 론다니니에게 넘어갔다가 이후 밀라노로 팔려가 지금은 ‘론다니니 피에타’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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