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美 텍사스 스핀들톱에서 로터리 굴착법으로 대량 석유 시추에 성공

↑ 텍사스 스핀들톱에서 처음 대량 석유 시추에 성공하는 모습(1901.1.10)

 

석유의 상업적 이용 가능성이 처음 확인된 곳은 1859년 8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소도시 타이터스빌이다. 1851년 이곳 노천에서 처음 석유가 발견되자 뉴욕의 법률가 조지 비셀이 주변 땅을 매입해 은행가인 제임스 타운센드와 함께 코네티컷 석유회사를 세웠다. 그러나 그 정도의 분량으로는 채산성을 맞출 수 없었다. 결국 지하의 석유를 지상으로 퍼올려야 했는데 설사 퍼올리더라도 당시는 석탄을 증류해 등유를 뽑아내고 있어 석탄등유와 가격경쟁을 벌이려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퍼올려야 했다.

타운센드는 경제성 있는 석유를 퍼올리는 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전직 철도원 에드윈 드레이크를 고용했다. 드레이크는 1858년 파이프를 연결하는 방법으로 굴착기를 만들어 1859년 8월 28일 지하 23m 석유 지층에서 원유를 땅 위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 굴착 방식은 노천 유전에서 이뤄지던 단순 소량 채취가 시추공을 뚫어 지하의 석유를 끌어올리는 대량생산으로 바뀌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후 석유에 대한 관심이 급속히 확대되어 땅값이 상승하는 등 투기 열풍이 불었다. 석유는 미국 내 수요를 채우고도 남아 1861년 12월 영국으로 처음 수출된 것을 시작으로 19세기 말까지 미국 전체 산유랑의 3분의 1이 영국·프랑스·독일 등에 수출되었다. 문제는 드레이크의 굴착기 기술로는 땅속 깊숙이까지 파 들어가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었다. 하루 1m밖에 파 들어가지 못했고 배출량도 30배럴에 불과했다. 지하 수백 수천m까지 파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 봉착하자 완전히 새롭고 획기적인 굴착 방법이 필요했다.

그 무렵 미국 텍사스주 버몬트 마을의 파틸로 히긴스가 10년간의 노력 끝에 시추공 3개를 뚫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굴착 파이프는 지하 100m 정도에서 압반에 막혀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히긴스는 새로운 굴착법을 찾는다는 신문광고를 냈다. 이 광고를 보고 찾아온 전문가가 전 오스트리아 해군 함장이며 광산 전문가 앤서니 루카스였다. 루카스는 로터리 굴착법으로 땅 주인의 고민을 해결해주었다. 종래의 굴착기와 달리 파이프 끝에 분쇄기를 달아 이것을 회전시키면서 지하에 박아넣는 방식의 로터리 굴착법이었다. 이 굴착법은 석유 개발 사상 최대 발명으로 꼽힐 만큼 획기적이었다.

로터리 굴착법으로 땅을 파 들어가던 1901년 1월 10일, 버몬트 남쪽 유전지역인 스핀들톱(spindletop) 땅속 깊숙이 박혀 있던 굴착 파이프가 폭발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땅 위로 튕겨 올랐다. 뒤이어 시커먼 석유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이 분출은 20세기 현대 문명의 밑거름이 되어 20세기 굴뚝산업을 급속도로 발전시켰다. 굴착 파이프 끝에 달린 회전 비트 덕에 현장의 암반층이 돌파되자 파이프는 길이 130m에서 ‘검은 황금’을 담아 올렸다. 남부에서도 이렇게 거대 유전이 발견됨으로써 ‘걸프’와 ‘텍사코’라는 2개의 메이저 석유회사가 탄생하고 미국 석유의 주도권이 북부에서 남부로 옮겨져 미국 석유 역사를 다시 써야 했다. 스핀들톱 유전은 1년 8개월 만에 자연 분출이 끝나 생산량이 감소했지만 이후 30년간 미국 땅에 엄청난 부를 쌓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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