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광부 123명 서독에 첫 파견

1963년 12월 21일, 서독 루르탄광지대에서 일할 우리나라 광부 123명이 에어프랑스 전세기편으로 김포공항을 떠났다. 광부들 얼굴에는 낯선 땅에 대한 두려움과 설레임이 교차했지만, 남편을, 자식을, 아버지를 이국땅으로 보내야 하는 가족들은 눈물을 삼키며 웃는 낯으로 보내야했다. 약속한 월급은 162달러50센트(기본급)였다. 1인당 GNP가 87달러(1962년)에 불과하고 경제가 침체했던 당시로서는 적지않은 돈이었다. 실업율이 8.1%(63년)에 달하고, 200명 이상의 종업원을 둔 기업이 54개(1961년)에 불과해 변변한 일자리 하나 찾기어려운 시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광부 파견은 국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분명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돌파구였다.

중졸 이상의 학력과 20세이상 30세 미만, 그리고 탄광근무 경험이 있는 광부를 선발하는데 2874명이 응시했다. 8대1의 경쟁률을 뚫고 최종 합격한 사람은 367명. 대학 졸업자가 20%나 됐다. 합격자는 20일 간의 탄광훈련, 20일간의 독일어강습을 거친 후 다시 서독현지에서 3개월의 적응훈련을 받아야 했다. 힘들게 작업장을 배정받았지만 작업도 간단치 않았다. 지하 1000m에서 뿜어나오는 30도의 지열과 50㎏이나 되는 작업도구로 3년 뒤 고국으로 돌아올 때는 대부분 한 번이상 골절상을 경험했다. 우려했던 탄광사고도 이듬해 11월부터 발생하기 시작, 돌에 깔려 죽거나 탄차에 부딪혀 현장에서 즉사했다.

1964년 12월 차관을 구하기 위해 서독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인 광부와 1964년 11월부터 파견된 간호사를 찾아 위로의 말을 전하다 “조국이 가난해서…”라는 대목에서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할 때는 장내가 온통 울음바다로 변하기도 했다. 이렇게 파견된 광부는 1978년 서독정부가 광부수입을 중단할 때까지 줄잡아 7800명이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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