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일제 하 한글학자들 ‘조선어연구회’ 조직

1921년 12월 3일 오후2시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의 제자인 최두선·권덕규·장지영·이승규 등이 서울 휘문고보에 모여 ‘조선어연구회’를 조직한다. 나라를 빼앗긴 지식인들에게 모국어는 민족 얼을 지키는 마지만 보루였다. 휘문학교는 주시경이 한때 한글을 가르쳤던 곳이다. 12월 2일자 조선일보는 ‘회원들이 우리 말과 글에 기준이 될 통일성이 없어 유감’이라는 설립이유를 싣고 있다.

한글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는 기관지 ‘한글’(1927.2.10)이 창간되고, 훈민정음 반포 480년을 기념해 1926년 9월 29일(음력) 지금의 한글날인 ‘가갸날’을 정한 것도 이들의 공로였다. 이들은 또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1930.12)하고 조선어사전편찬회(1929.10)도 조직했다. ‘조선어학회’(1931.1.10)로 이름을 바꾼 후에는 조선일보·동아일보에서 벌인 문맹퇴치운동에 발맞춰 우리 글과 말 보급에 진력했다.

1942년 10월 1일, 조선문화 말살정책에 혈안이 된 일제가 눈엣가시와도 같은 조선어학회에 칼을 들이댄다. 일제는 고문으로 받아낸 허위자백을 근거로 조선어학회 회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선풍에 나서 최현배·이극로·이희승 등 33명을 내란죄로 연행하고 이 가운데 10명에게는 각각 2년에서 6년까지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이윤재와 한징은 재판 도중 고문으로 옥사했다. 조선어학회는 1949년 9월 5일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꿔 지금도 한글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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