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사상 첫 ‘가네포(GANEFO-신생국경기대회)’,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강행

1962년 8월 자카르타에서 열린 제4회 아시아경기대회가 불씨였다. 주최 측 인도네시아가 아랍 국가들과 중국의 압력으로 이스라엘과 대만 선수단에 입국 비자를 거부한 것이 발단이 된 것이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가 인도네시아에 대해 회원국 자격을 박탈하자 수카르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IOC 탈퇴를 선언하고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새로운 경기연맹 창설을 제창했다. 이 과정을 거쳐 신생국경기연맹이 창설됐고, 연맹은 신생국 간의 경기대회를 준비했다.

대회 참가국에는 1964년의 도쿄올림픽 참가를 불허한다는 IOC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1963년 11월 10일, 신생국경기대회 즉 ‘가네포(GANEFO)’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강행됐다. 대회는 22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중국의 일방적인 독주로 진행됐으나 400m와 800m에서 세계신기록을 수립한 북한의 신금단에도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가네포는 국가별 순위를 인정하지 않고 개인순위만 매겼다. 국가에 대한 IOC의 위협을 비껴가려 한 가네포의 회피책이었다. 중국은 애초부터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았으나 인도네시아와 북한은 도쿄올림픽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올림픽 조직위가 가네포 참가선수들의 올림픽 참가불허 입장을 굽히지 않자 결국 두 국가는 참가를 거부하고 선수단을 전격 철수시켰다. 신금단도 남한의 아버지만 만났을 뿐 올림픽에는 참가하지 못한 채 귀국선에 몸을 실어야했다.

가네포가 재기를 시도한 것은 1966년이었다. 그해 11월 25일 제1회 ‘아시아 가네포’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개막한 것이다. ‘미 제국주의 및 그 추종자들과 투쟁하는 모든 나라 간의 우호와 단결을 과시하기 위한 게임’이라는 표어가 말해주듯 대회는 여전히 반서방·반제국주의를 표방했다. 아시아 17개국이 참가한 대회에서 북한의 신금단도 2개의 금메달을 땄으나 수년 간 정치에 휘둘리는 바람에 기록이 좋지 않았다. 1970년의 아시아 가네포는 북한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수카르노의 실각과 함께 유명무실해져 결국 사망신고도 하지못한 채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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