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안와르 엘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아랍 국가 원수로는 최초 이스라엘 방문

아랍은 1948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에 독립의 깃발을 올린 이래 4차례나 전쟁을 치르며 이스라엘과 유혈투쟁을 불사해왔다. 이집트 역시 19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에 시나이 반도를 빼앗기고 1973년 제4차 중동전에서도 패배,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에 있었다. 1977년 초강경 테러리스트 출신의 메나햄 베긴이 이스라엘 총리에 오르면서 양국 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무렵 아랍인들 사이에는 피비린내 가시지 않는 30년 무력충돌에 대한 싫증이 확산되고 있었고, 이스라엘은 무력으로 점령한 땅을 반환하라는 UN 결의안을 마냥 무시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었다.

이같은 상황 하에서 1977년 11월 9일 안와르 엘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이 자국 의회에 나가 “필요하다면 이스라엘 의회라도 가겠다”며 이스라엘과의 평화공존을 위한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베긴이 초청장을 보내 화답하자 1977년 11월 19일 사다트가 아랍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이스라엘에 도착, 평화를 향한 역사적인 첫 발을 내디뎠다. 사다트와 베긴은 2박 3일 동안 3차례 회담을 갖고 이견을 좁혀갔으나 30년 간의 해묵은 갈등이 하루아침에 해소될 리 없었다. 베긴은 평화보장을 전제로 시나이반도 반환은 받아들였지만 팔레스타인의 지위와 관련해서는 한치도 양보하지 않았다. 그래도 세계는 사다트의 용기와 결단력에 경탄했고 이집트 국민들은 사다트의 귀국을 열렬히 환영했다. 한편으로는 ‘아랍의 배신자’로 낙인찍혔고 리비아, 시리아로부터는 단교 통보를 받았다.

이후 양국이 좀처럼 결실을 맺지 못하자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이 중재에 나섰다. 1978년 9월 17일 양국 정상이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나 ‘시나이 반도를 이집트에 반환하고 5년 내 요르단강 서안 및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의 자치를 보장한다’는 중동평화협정에 서명함으로써 양국에는 비로소 평화의 서광이 비쳤다. 두 사람은 그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이집트 내에서 사다트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면서 이집트는 격랑에 휩싸였다. 결국 1981년 10월 6일 사다트는 군사퍼레이드를 지켜보다가 이슬람 과격파의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중동평화는 여전히 요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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