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구석구석

[오대산 국립공원] 오대산 소금강(小金剛) 계곡… 연이어 펼쳐지는 비경들이 도무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네요

↑ 만물상 모습

 

by 김지지

 

2019년 10월 12일의 산행지는 오대산 국립공원의 소금강 지구다. 강원도 평창군 소재 진고개탐방지원센터(960m)에서 출발해 최고봉인 노인봉(1338m)을 지나 무릉계곡(소금강계곡)을 따라 내려가 소금강 분소에서 끝나는 코스다. 진고개가 워낙에 높아 노인봉까지는 378m만 고도를 높이면 된다. 이동거리와 시간도 4㎞ 남짓에 2시간이면 족하지만 노인봉을 지나 소금강 분소까지의 총거리는 13㎞ 내외이고 산행시간은 5~6시간으로 예상된다. 일행은 고교 동기인 규철 선근 영민 정형 종서 창민 태훈 7명이다.

노인봉과 무릉계곡 개념도

 

※ 오대산 국립공원 상세 안내도 클릭

 

등산이든 여행이든 만족도를 결정하는 최대 변수는 날씨

문제는 날씨다. 등산이든 여행이든 만족도를 결정하는 최대 변수가 날씨인데 전날 기상청에서 새벽부터 오대산에 비가 내린다고 예보했다. 1주일 전에도 강원도 홍천군 가리산에 갔다가 들머리부터 정상까지 계속 비가 내려 아쉬움이 컸다. 그런데 출발 당일 아침 6시 서울을 떠난 승용차 안에서 기상예보를 살펴보니 구름만 있을 뿐 비 소식이 없다. 심지어 일부 시간대는 맑기까지 하다. 전날 기상예보에서 태풍을 동반한 강풍과 비가 내린다고 해 무거웠던 마음이 언제 그랬냐는 듯 가벼워진다. 오늘은 가을의 초입이다. 날씨가 좋다니 하늘은 청명할 것이고 햇볕은 따사로울 것이다. 정상 부근에서는 탁트인 조망과 초가을 단풍이 우리를 반겨 맞을 것이다.

서울을 출발해 경기도를 지나는데 기상예보대로 날씨가 좋다. 가끔은 구름 속에 가려진 하늘이 나타나 우리를 향해 손짓도 한다. 그런데 강원도 원주를 지날 무렵 먹구름이 몰려오고 나뭇가지들이 심하게 흔들린다. 진고개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어느덧 하늘은 시커멓고 날씨는 음산하고 기온은 초겨울처럼 뚝 떨어졌다. 오늘이 아니라 어제 기상청 예보가 맞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 속에서 단단히 무장했다.

진고개는 태백산맥을 동서로 넘는 주요 고개 중 하나다.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과 강릉시 연곡면을 연결한다. 진고개 지명은 비가 오면 땅이 질어져서 지어졌다고도 하고 긴 고개의 구개음화 현상이라고도 한다. 진고개탐방지원센터에 조성한 주차장은 960m 고지인데도 엄청나게 넓다.

오대산 국립공원의 오대산지구와 소금강지구 개념도

 

오대산 국립공원은 진고개를 기준으로 오대산지구와 소금강지구로 나뉜다. 오대산지구는 월정사, 상원사 등 명찰과 비로봉, 상왕봉, 두로봉, 동대산의 연꽃 모양 산세를 자랑하고, 소금강 지구는 노인봉을 중심으로 소금강 계곡을 관통하는 소(沼)와 폭(瀑) 산행이 유명하다.

 

수목들은 누런색과 주황색 옷으로 갈아입는 환복(換服) 작업으로 분주해

진고개 주차장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산행 들머리로 올라서니 곧바로 고위평탄면이다. 이름처럼 고지의 평평한 터인데 과거 화전민이 살았던 곳이다. 진행 방향 뒤쪽으로 오대산의 한 봉인 동대산(1433m) 정상이 구름에 가려있다.

고위평탄면

 

고위평탄면을 지나 숲속으로 들어서니 수목들이 초록색 옷을 벗고 누런색과 주황색 옷으로 갈아입는 환복(換服) 작업으로 분주하다. 2~3주 지나면 노인봉 일대가 빨갛게 물들 것이다. 다들 단풍하면 붉은빛을 연상하지만 나는 누렇거나 주황의 단풍이 좋다. 우리나라 수목도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는지 누런빛 단풍이 많아졌다.

진고개에서 노인봉까지의 등정길은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흙길에 완만하다. 종서가 “노인봉이라는 이름은 노인도 쉽게 올라가서 붙여진 것 같다”고 한마디 할 정도로 지세가 유순하다. 사실 노인과 연관이 있긴 하다. 두 가지 설이 있다. 옛날 어느 심마니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산삼이 있는 곳을 알려 주었는데 그곳에서 산삼을 캐 이후 노인봉으로 불렸다는 설이 있고, 노인봉 정상의 화강암 봉우리가 강릉 방면에서 보면 백발노인을 닮았다 하여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노인봉 올라가는 길(왼쪽)과 가을 단풍을 준비하는 나무들

 

산행 중 술 얘기가 나왔다. 일행 중 몇몇이 어젯밤 술을 마셨다며 창민에게 “어제 술을 마시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창민은 “산행 대장으로 일정 전체를 살펴야하므로 산행 전날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말해 대장의 권위를 슬그머니 드러낸다. “역시 대장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종서가 치켜세운다. 산 중턱 즈음 결국 비가 내려 우비를 꺼내 입었다. 나중 노인봉 정상에서 찍은 일행 사진을 보니 빨강 파랑 노랑 등 형형색색이다. 오늘 산행도 날씨가 심술을 부릴 모양이다.

진고개에서 노인봉을 향해 오르고 있다. 선두는 창민

 

태훈이 초입부터 치고 올라가더니 내려갈 때도 홀로 속도를 낸다. 결국 점심을 함께 할 때 말고는 하산 때까지 태훈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태훈은 요즘 산에 재미를 붙여 단독산행을 많이 하는데 그럴 때는 다리 근력을 강화하기 위해 무지하게도 모레주머니를 차고 오른다고 한다. 중년의 나이라 무릎에 좋지 않을텐데도 끈덕지다. 태훈은 친구들과 함께 산에 갈 때는 각종 먹거리를 바리바리 싸들고 와 늘 일행으로부터 감사 인사를 받는 정이 많은 친구다.

 

비 그치자 비로소 계곡의 비경들이 눈에 들어와

노인봉 정상에 도착하니 빗줄기가 더 굵어졌다. 바람도 거세다. 그런데도 정상석 주변은 사진을 찍으려는 등산객들로 북적거린다. 노인봉 주변은 사방이 구름 속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는 “노인봉이 다음에 또 오라는구나”하고 위안을 삼아야 속이 편하다. 올해는 주말에 비가 내리는 날이 많아 주말 산행에 재미를 붙인 나로서는 속이 상했지만 “노인봉이여! 기꺼이 다시 오마” 속으로 중얼거렸다. 비록 우리는 볼 수 없었지만 날씨 좋은날 노인봉 정상에 서면 동해 주문진 앞바다와 오대산으로 이어진 백두대간 줄기가 펼쳐진다. 남쪽으로는 백두대간의 황병산, 서쪽 가까운 곳에는 오대산, 멀리 북쪽에는 설악산이 보인다.

노인봉 정상(왼쪽)과 소금강 분소 입구에 놓여있는 표지석

 

하산길은 처음부터 2.5㎞의 급경사다. 이후 낙영폭포 즈음부터 종착지인 소금강 분소까지 7㎞ 정도는 완만한 계곡길의 연속이다. 계곡까지 내려가는 길은 워낙에 급경사여서 우리 코스와 반대로 계곡에서 치고 올라오면 힘들 것 같다. 대부분 나무 데크가 잘 되어 있어 위험하지는 않다. 급경사 중간중간에서 노랗고 빨강 단풍들이 맵시를 뽐내고 있지만 운무에 막혀 흐릿하다.

마침내 계곡으로 내려오니 ‘폭포수가 그림자처럼 떨어진다’는 시적(詩的)인 이름의 낙영(落影)폭포가 반긴다. 이곳은 폭포로도 명성이 높지만 무릉계곡 하산 코스의 이정표 구실도 한다. 그런데 낙영폭포는 상하 2개 폭이다. 국립공원 측에서 이런 사실을 안내하지 않아 각종 글마다 서로 다른 사진을 올려놓고 낙영폭포라고 하는데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왕이면 상단과 하단으로 나누어 설명해주면 좋을 것이다.

낙영폭포 상단(왼쪽)과 하단

 

낙영폭포에서 광폭포로 내려오는데 굵었던 빗방울이 가늘어지더니 마침내 그쳤다. 비로소 계곡의 비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하늘엔 여전히 비구름이 한가득이다. 햇살을 받는 단풍은 눈이 부시지만 습기 머금은 단풍은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낙영폭포에서 하산길 계곡을 한 굽이 돌아설 때마다 기묘한 협곡과 멋드러진 폭포가 연이어 나타나 눈을 즐겁게 해준다. 낙영폭포, 광폭포, 삼폭포, 세심폭포, 구룡폭포 등 다양하지만 삼폭포와 세심폭포는 보기는 했어도 이름은 모르고 그냥 지나쳤다.

 

만물상은 소금강의 절경과 심산유곡의 분위기를 자랑하는 명소 중 명소

폭포 중 등산객을 가장 나를 압도하는 것은 ‘소금강의 백미’인 구룡폭포다. 금강산의 구룡폭포와 견줄 만하다고 해서 이름을 따왔다. 구룡폭포는 9개의 크고 작은 폭포로 이뤄져있지만 등산로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가장 아래에 자리한 8폭과 9폭이다. 거대한 바위를 타고 힘차게 휘어져 떨어지는 물줄기는 이름 그대로 꿈틀대는 용의 몸짓을 연상시킨다. 조금 전까지 비가 내려 수량도 풍부하다.

구룡폭포 8폭(왼쪽)과 9폭

 

소금강 계곡 전체적으로는 화강암 사이로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계류가 흐르고, 주변에는 낙락장송들이 우거져 있다. 백운대, 만물상, 선녀탕, 식당암, 삼선암, 연화담 등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어 거리는 길어도 심심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중 소금강의 절경과 심산유곡의 분위기를 자랑하는 최고 명소는 만물상이다. 금강산의 만물상을 옮겨놓았다고 해서 오대산 만물상으로 불리는 이곳에서는 조각상처럼 솟아있는 기암기봉이 병풍처럼 계곡을 호위하고 있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노송들도 인상적이다. 그것을 본 선근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제각각의 형상을 한 암봉들은 귀면암, 촛대봉, 거인봉, 향로암, 백마봉, 일월암 등 저마다 이름이 있지만 그것을 알려주는 안내판은 없다. 그럼에도 가장 눈에 띄는 암봉이 있는데 귀면암(鬼面岩)이다. 귀신 얼굴을 닮고,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얼굴로 변해 그리 불린다.

만물상의 귀면암(왼쪽)과 바위 틈에서 자라는 소나무 모습

 

전국의 산에 오를 때마다 느끼는 게 있다. 소금강의 구룡폭포, 만물상, 식당암처럼 대표적 명소 이름은 알아둘 필요가 있겠으나 장소 이름을 모른 채 지나쳤다고 애석해 하지 말자는 것이다. 우리가 그 이름을 굳이 알려고 하는 것은 고교시절 시 한 편에서 행과 연을 분리해 각각의 행과 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부질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시를 전체적으로 이해해야 시의 감흥이 온전하게 살아있듯 명승지나 명산도 전체적으로 감상하자는 취지다.

 

율곡 이이, ‘금강산을 축소해 놓은 것 같다’며 소금강(小金剛)이라 이름 붙여

1569년, 율곡 이이가 생가인 강릉 오죽헌에 머물다가 연곡천을 거슬러 올라가 이 계곡에 들어섰다. 그는 오묘한 풍경의 계곡에 반해 그날의 기록을 ‘유청학산기(游靑鶴山記)’라는 기행문으로 남겼다. 그러면서 ‘빼어난 산세가 금강산을 축소해 놓은 것 같다’며 소금강(小金剛)이라 이름 붙였다.

참고로 우리나라엔 크게 3개의 금강이 있다. 원조 금강산, 거제 해금강, 오대산 소금강이다. 물론 전국 산 중에 수십 곳이 금강을 차용하고 있으나 고유명사로 정착된 곳은 이 세 곳뿐이다. 무릉계곡(소금강계곡)은 오대산 국립공원에서 첫손 꼽히는 명소다. 이곳은 국립공원 지정 5년 전인 1970년 이미 명승지 제1호로 지정되었다. 명승지 제2호는 경남 거제의 해금강이다. 소금강에는 금강산과 같은 지명이 많다. 귀면암, 만물상, 구룡폭포가 금강산에서 딴 이름이고 소금강 연화담은 금강산 연주담과 흡사하다.

하류쪽 식당암(食堂巖) 역시 소금강의 명소다. 장정 100명이 동시에 앉을 정도로 암반이 넓다.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고자 군사를 훈련시키며 이곳에서 밥을 먹었다는 전설이 담겨 있다. 율곡은 멋이 생략되고 실용만 남아 있는 식당암이란 지명이 싫었는지 비선암(秘仙岩)으로 바꿔 불렀으나 세상은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식당암이란 이름을 선호한다.

식당암

 

계곡의 수목들이 울긋불긋 가을옷으로 새롭게 단장하고 있다. 그런데 초가을의 단풍은 완연한 가을 단풍과 다르다. 사람으로 치면 생기와 활력은 넘치나 곧 40~50대 완숙기를 준비해야 하는 30대라고나 할까. 단풍 절정은 곧 쇠락의 시작이므로 화려하긴 하나 불안하다. 마치 봄날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2~3일만 지나면 바닥에 떨어져 누렇게 변색되고 엉망인 몰골로 이리저리 밟히다 생을 다하는 목련꽃에서 처연함이 느껴지는 것처럼 절정의 단풍도 검붉은 색으로 변색되어 오그라졌다가 결국에는 몇 차례 찬서리를 맞고 절정을 마감하니 하는 말이다. 그런점에서 절정을 향해 치닫는 초가을의 단풍이 좋다.

 

어플에 따르면 산행 거리는 12.8㎞, 총 소요시간은 7시간 28분

협곡은 험하지만 계곡 옆이나 계곡을 가로지르는 곳에 나무나 철제로 다리를 만들어놓아 협곡을 감상하는데 불편함이 없다. 안전하고 좋다. 계곡을 보는 맛도 좋고 계곡 한 가운데서 사진 찍기도 좋다. 그러나 비로 인해 바닥의 돌이 미끄러운 것은 인공 다리도 어쩔 수 없나 보다. 돌을 밟았다가 뒤로 넘어져 허리가 바위에 부딪혔으나 다행히 배낭 덕에 다치지는 않았다. 배낭의 소중함을 또 한 번 깨닫는 순간이다. 이상하게 요즘은 산에 올라가면 돌을 밟았다가 넘어지는 일이 잦다. 아무래도 등산화 밑창이 닳아서인 것 같다.

계곡 옆이나 계곡을 가로지르는 곳에 설치한 나무 데크나 철제 다리

 

연이어 펼쳐지는 계곡의 비경들이 도무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설악산 천불동계곡의 비경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천불동계곡 하산길이 지루하고 지겨울 때가 많다는 점에서는 소금강 계곡이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다. 계곡 이름은 무릉계곡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소금강 계곡이라고 한다. 소금강 계곡은 연곡천과 합쳐져 주문진 앞 동해바다로 빠져나간다.

무릉계곡 하류에 물푸레나무를 소개하는 안내판이 있다. 물푸레나무 껍질을 벗겨 물에 담그면 나무껍질에서 푸른 물이 우러나와 물을 푸르게 한다고 해서 ‘물푸레나무’란다. 우리가 계곡에서 가끔 보게되는 초록색 물은 이 물푸레나무 때문이다. 그렇다면 푸른색은 파란색일까 초록색일까. 막연히 파란색으로 알고 있었는데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맑은 가을 하늘이나 깊은 바다, 풀의 빛깔과 같이 밝고 선명하다’라는 뜻이란다. 그렇다면 파란색과 초록색 두 가지 색을 의미한다는 뜻이 된다.

물푸레나무로 인해 초록색을 띠는 계곡

 

소금강 분소에 도착하니 오후 4시 45분이다. 종서의 등산 어플에 의하면 오늘 우리의 산행 거리는 12.8㎞이고 총 소요시간은 7시간 28분이다. 그중 순수 산행시간은 5시간 50분이다. 선근의 어플에서 거리는 13.3㎞, 시간은 7시간으로 찍힌다. 소금강 주차장에서 진고개까지 17㎞ 거리를 택시로 이동하는데 인원수에 관계없이 4만원을 요구한다. 다음날 종아리에 알이 배이고 허벅지 근육이 뻑뻑하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