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3선개헌’ 묻는 국민투표, 65.1%의 국민 찬성으로 통과

1969년 1월 공화당 의장서리 윤치영이 “대통령 연임 금지조항 등을 포함해 헌법개정을 연구할수도 있다”고 했을 때, 보이지않는 곳에서 장기집권 음모가 진행되고 있음을 눈치챘어야 했다. “지금은 개헌할 시기가 아니다”며 숨을 고르던 박정희 대통령이 본심을 드러낸 것은 그 해 7월이었다. “찬반은 국민의 자유의사”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야당과 학생들의 반발을 무력화시키고 또 한편으로는 여당 의원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가운데 50여개 친여 사회단체가 바람잡이로 나섰다. 8월 7일 공화당의원 108명을 비롯, 122명의 의원이 서명한 개헌안이 정식 제출되고, 9월 13일 개헌안이 마침내 국회 본회의에 회부됐다. 야당의원들이 개헌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서 취침 농성을 벌였지만, 장소를 옮기고 새벽의 허점을 노린 신종기법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9월 14일 새벽2시반, 공화당 의원 등 122명이 국회 제3별관으로 장소를 옮겨 참석의원 전원의 찬성으로 3선 개헌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밖에는 기동경찰 1200여 명이 통행을 차단하고 있었다. 마침내 다가온 10월 17일. 국민투표 날이다. 그러나 100만 당원과 일선 공무원 심지어 TV·라디오까지 나서 ‘안정이냐 혼란이냐’를 선택하라는데 누가 혼란을 선택하랴. 이제까지의 국민투표가 늘 그랬듯 이날도 65.1%의 국민이 찬성했다. 국민에게도 박 대통령 자신에게도 불행했던 국민투표였다. 박 대통령은 1972년 유신헌법 개정을 통해 영구집권을 시도했으나 결국 10·26으로 비참한 종말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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