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신금단 부녀 14년만에 도쿄에서 눈물의 상봉

“아버지…” “금단아…” 1964년 10월 9일 오후 4시55분. 남북으로 헤어져 살았던 신금단 부녀가 도쿄의 하늘 아래서 만나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신문주가 1950년 12월에 함남 이원에서 단신으로 월남하고 14년 만이었다. 아버지가 없는 동안 금단은 세계적인 육상선수로 성장했다. 부녀를 연결해 준 것도 육상대회였다. 1년 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제1회 가네포(신생국 경기대회)에서 금단이 육상 400m와 800m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워 그의 얼굴이 언론에 알려진 것이 계기가 됐다.

1년 후 금단이 도쿄올림픽에 참가한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올림픽 개막 이틀 전 부랴부랴 딸을 만나기 위해 일본 땅을 밟았다. 그러나 금단은 올림픽에 참가도 못하고 곧 도쿄를 떠나야할 운명에 처해 있었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가 신금단 등 가네포에 참가했던 북한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권을 박탈하자 북한이 개막식을 하루 앞두고 대회를 보이콧했기 때문이다.

가네포는 신생국경기연맹 주최로 신생 국가들이 벌이는 국제적인 스포츠대회다. 신생국경기연맹은 1962년 8월 자카르타에서 열린 제4회 아시아경기대회 주최국인 인도네시아가 이스라엘과 대만의 참가를 거부해 IOC(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제명당하자 이에 대항해 아시아·유럽·아프리카 12개국으로 결성된 조직이다. 제1회 대회는 51개국에서 2,000여 명의 선수가 참가한 가운데 1963년 11월 10일부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렸으나 출발부터 정치색을 띨 수밖에 없어 IOC는 회원국들에 대회에 참가하지 말 것을 누차 경고했었다. 이같은 배경 하에서 신금단은 도쿄에까지 가 놓고도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고 대회 하루 전 도쿄를 떠나야 했던 것이다.

이처럼 험악한 분위기에서 아버지와 만난 자리, 그러나 두 사람은 정을 나눌 겨를도 없이 헤어짐을 재촉하는 감시원의 싸늘한 감시를 거역하지 못하고 7분 만에 서둘러 자리를 떠야했다. 조총련계 청년들의 억센 팔에 끌려가면서도 시선을 떼지 않았던 금단을 향해 아버지는 신음하듯 “금단아…”를 되뇔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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